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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준의 뮤직 톡]음악형식을 통한 감동 전달
[김형준의 뮤직 톡]음악형식을 통한 감동 전달
  • 교수신문
  • 승인 2020.01.21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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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픽사베이)

얼마 전 필자가 의료인 모임에서 ‘음악과 예술경영’이란 제목으로 특강을 한 적이 있다. 여기서 ‘단순하게 나는 소리’와는 달리 ‘소리를 통해 표현하는 음악예술’이 어떻게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게 되는지 이유를 설명하였다. 음악이 오랜 세월을 거쳐 발전해 오면서 형식을 정립하게 되고, 작곡가들이 당대에 정립된 형식에 맞추어 작곡할 때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주게 된다.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 등 세계적인 음악가들의 작품들이 치밀한 형식에 맞추어 작곡되어 있음을 예를 들어 설명하였다. 음악의 많은 형식 중 소나타형식은 가장 발달된 형식이다. 
그리고 음악과 마찬가지로 일상생활에서나 비즈니스 세계에서 많은 일들을 수행해 나가는데 형식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예컨대 누군가가 반사회적인 일을 하더라도 처벌할 법규가 없으면 처벌하지 못하는 것도 법률이라는 형식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기업경영에 있어서도 음악의 악보처럼 매뉴얼을 통한 통일된 업무 수행으로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것과 같다. 특히 안전관리분야에서 매뉴얼의 작성 및 준수는 절대적인 요소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형식이 내용을 지배한다.”라는 경구는 상당한 설득력이 있다 하겠다.
이날 특강에 참석하신 분 중에 중국 문학에 높은 식견을 가지신 분이 계셨다. 이분께서 며칠 후 소감문을 보내 주셨는데 감동적인 내용이라 소개코자 한다.
“음악과 예술경영 강연을 들으면서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 를 새삼 생각해 봤습니다. ‘인간은 생각하는 존재’, ‘인간은 노동하는 존재’, ‘인간은 예술하는 존재 (Homo artex)’ 등의 결합체, 즉 “인간은 이 모든 것이 합쳐진 총체적인 존재‘ 라는 것을 새삼 느꼈습니다. 결국 사업도 예술도 경영도 인간의 모습을 ’총체적인 존재‘로 받아들이고 이해해야 선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다음으로 인간의 예술의 미학은 무질서한 것이 아니라 엄밀한 형식을 갖추되 그 안에서 제시, 이탈, 복귀란 규칙을 갖추고 있다는 것도 재미있었다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신은 인간은 빵만으론 살 수 없고 또 규칙만으론 선을 이룰 수 없게 만드셨나 봅니다. 그러고 보면 심지어 하늘을 나는 새도 한쪽 날개로만은 날 수 없게 만들었나 봅니다. 세상의 이러한 진리를 예술의 미학으로 드러낸 베토벤이 그래서 더 위대하다고 하는 건가 봅니다. 마지막으로 교수님이 연주하는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를 들으면서 지금부터 1,300년 전 당나라 시인 ‘이상은(李商隱)’의 마음이 떠올랐습니다. 
세상이 하 수상해 사랑하는 아내와 천리 길 떨어질 수밖에 없는데, 집 (장안, 지금의 시안)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여전히 해발 2천미터가 넘는 친링산맥이 가로놓여 있고 파산 (지금의 쓰촨 바산)의 늦가을 밤에 비는 추적추적 내리고 가을 달빛은 적막한 밤에 시인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결국 시인을 애타게 기다리는 아내와 시인은 만나지 못했습니다). 늦가을 밤 파산에 내리는 가을비와 적막한 달빛을 보면서 시인은 그 유명한 ‘야우기북 (夜雨寄北) - 밤비 내리는 밤에 북쪽으로 부치는 편지’라는 시를 남깁니다.
베토벤의 미학이 그러하듯 시인의 그리운 마음을 7언 절구, 28글자만으로 절제해 풀어낸 시인의 예술형식은 또 어떻게 천년 후의 베토벤의 예술 형식과 그다지도 같은지요 (이 시의 맨 끝 글자 운율을 보면 제시, 이탈, 복귀 형식입니다).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를 들으시면서 찬찬히 시를 음미해 보면 좋겠습니다.

夜雨寄北(야우기북) 李商隱(이상은)
君問歸期未有期 (군문귀기미유기),
巴山夜雨漲秋池 (파산야우창추지)。
何當共剪西窓燭 (하당공전서창촉),
却話巴山夜雨時 (각화파산야우시)。

당신은 내가 떠나올 때 ‘돌아올 날이 언제일까요.’ 라고 물었지요. 여기서 보니 당신에게 돌아갈 날이 언제일지 기약할 수가 없구려. 
여기 파촉 지방에 지금 밤비가 내린다오. 밤새 내리는 비에 가을날 연못의 물이 잔뜩 불어났구려. 
언제쯤이나 당신 곁으로 돌아가 서쪽 창가에 앉아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며 내가 파산에서 내리는 밤비를 보며 당신을 그리워하던 때가 있었음을 얘기할 수 있을지. 그때가 언제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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