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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ash-mob'을 아는가
'flash-mob'을 아는가
  • 마정미 경희대
  • 승인 2003.10.0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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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비평

마정미 / 경희대, 언론정보학부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에는 거리의 광고판이나 상점의 전광판들이 그 앞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말을 거는 장면이 나온다. 광고판들은 고객의 이름을 부르며 지난번에 사갔던 상품은 마음에 들었냐고 묻기도 하고, 새로 나온 상품을 추천하기도 한다. 인물정보에 맞춰 그에게 어울릴만한 제품을 광고하는 ‘맞춤형광고’(personalization)다. ‘흥행의 귀재’라는 별칭이 무색치 않게 스필버그 감독은 이 영화를 찍으면서 미래학자, 광고학자, 스폰서들을 불러 모아놓고 미래 광고에 대한 세미나를 열었다고 한다. 덕분에 크랭크인에 들어가기도 전에 제작비의 상당부분을 확보하는 능력을 보여줬다.

영화에서 보듯 모든 상품과 물건이 전산화돼 있고 네트워크로 연결된 상태가 바로 유비쿼터스(ubiquitous)다. 유비쿼터스는 ‘언제 어디서나’ ‘동시에 존재한다’는 뜻이다. 1988년 제록스 팔로알토연구소의 마크 와이저가 처음 제시한 ‘유비쿼터스 컴퓨팅’ 개념이 그 효시다. 실세계의 각종 사물들과 물리적 환경 전반에 걸쳐 컴퓨터들이 편재하게 하되, 이것이 사용자에게는 컴퓨터로서 드러나지 않도록 환경 내에 효과적으로 심어지고 통합된다는 것이 핵심이다.

즉, 물리공간에 존재하는 컵, 화분, 자동차, 벽, 교실이나 사람들의 옷, 안경, 신발, 시계 등의 사물에 컴퓨터장치들이 내장되고, 이들이 네트워크화 되면서 사람-컴퓨터-사물이 하나로 연결되는 것이다. 아직 비현실적인 이론으로 들리지만 PDA와 카메라폰에 열광하는 젊은 세대들을 보면 그리 멀지도 않은 일이다. 유비쿼터스의 세상은 과연 우리 사회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 것인가.

2002년, 우리는 놀라울 만큼 역동적이고 생산적인 힘을 발휘했던 사건들을 목도했다. 명실공히 시민사회, 참여사회로 진입했다는 열에 들뜬 평가도 있었고 감성세대의 열정폭발이라고 보는 인색한 평가도 있었다. 많은 지식인들이 이 역사적인 문화현상을 분석하려 했지만, 가장 정색을 하고 매달린 사람들은 마케팅 회사 사람들이었다. 언론과 마케팅회사에서 이들에게 붙여준 이름은 P세대, 즉 감성세대다. ‘참여’(participation)와 ‘열정’(passion)을 바탕으로 ‘패러다임의 변화를 주도’(Paradigm-shifter)하는 세대라는 설명이 들어있다.

P세대에 대한 연구가 활발한 사이 지난달 명동 한복판에서 아주 해괴한 일이 일어났다. 토요일 저녁 일군의 사람들이 모여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외계인이다!”라고 외치더니 갑자기 그 자리에 풀썩 쓰러졌다. 시체처럼 누워있던 사람들은 곧 일제히 박수를 치며 벌떡 일어났고 환호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사람들 사이로 순식간에 사라졌다. 루브르 박물관을 시끄럽게 했던 플래시 몹(flash mob)의 한국판 해프닝이 벌어진 것이다. 플래시 몹은 이메일과 휴대폰 문자메시지를 통해 특정일시 특정 장소에 모인 익명의 사람들이 몇 분 동안 아무 의미 없는 행동을 하다가 흩어지는 번개모임이다. ‘부조리한’, ‘우스꽝스러운’, ‘엉뚱한’ 혹은 ‘구경거리’ 등으로 묘사되는 새로운 문화다.

플래시 몹은 하워드 라인골드의 저서 ‘스마트 몹’에서 따왔다고 한다. 미래사회와 가상현실에 대해 저술해 온 저자는 이 책에서도 휴대전화와 PDA, 인터넷으로 무장한 군중이 미래를 바꾼다는 메시지를 담았다. 모바일 기기를 휴대하는 한 그들에게 시간이나 장소는 항상 가변적이다. ‘가상’의 세계를 ‘현실’로 만드는 것. 라인골드는 이것을 ‘일시적’인 해프닝과 ‘의도적’인 부조리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플래시 몹은 키치적인 속성이 강하다. 플래시 몹의 주체들은 특정 의미의 부여를 극구 거부한다. 퍼포먼스, 고의적인 엉뚱함이라고 할만한 이 해프닝들에는 어떤 정치적 사회적 주장도 없는 것이 특징이다. 목적은 단지 즐기는 것, 공공장소에서 혼란을 유발하는 것, 깜짝쇼를 연출하는 것이다. 다음카페 동호회에는 ‘일상으로부터의 유쾌한 탈출’이란 부제가 달려있다. ‘신도림역에서 스트립쇼를, 아파트 옥상에서 번지점프를’ 하고 싶은 젊은이들의 일탈 욕구가 무의미와 일상의 파괴라는 축제로 벌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라인골드의 말처럼 드러나지 않는 연대의식과 유동성, 그것이 ‘모바일 군중’의 특징이자 무한한 잠재력이다. 그 잠재력은 때로 사회개혁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때로 깜짝 유희로 나타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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