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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월평: 지식인의 허구 다룬 고종석
문학월평: 지식인의 허구 다룬 고종석
  • 남송우 부경대
  • 승인 2003.10.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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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송우 / 부경대·국문학

한국문학이 내보이는 문학적 공간이 한국의 국경을 넘어선 것이 어제오늘은 아니다. 그러나 그 빈도나 정도가 옛날과는 사뭇 다르다. 그만큼 나라와 나라 사이의 교류나 왕래가 잦아 국경의 개념이 엷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이 세계가 하나의 지구촌으로 인식되기 시작한 이후 거리개념의 축소와 정보의 발달로 인한 문화적 교류 역시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는 결과다. 이러한 세계상의 변화가 우리 문학의 안과 밖의 지형을 바꿔 가고 있다.

김정환의 시집 '하노이 서울 시편'(문학동네 刊)과 고종석의 소설 '엘리아의 제야'(문학과지성사 刊)에서 이런 모습을 엿보게 된다.

김정환의 시집은 시인이 베트남을 직접 방문한 후, 그곳에서 보고 느끼고 생각한 바를 연작시 형식으로 풀어놓은 기행시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시편들은 단순한 기행시를 넘어서 있다. 베트남을 방문한 시인이 그곳에서 경험한 바를 단순히 이미지화해서 독자들에게 전해주는 것이 아니라, 베트남의 역사와 풍광, 오늘의 현실을 통해 한국을 바라보고 있으며, 한국과 베트남의 역사 속에 내재한 동질성과 이질성에 주목함으로써 인간 삶의 합목적적 방향을 열어보려는 열망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 열망은 정치적 혹은 문화적 영역에서의 제국주의적 발상에 대한 저항이며, '다시, 하노이로' 향하는 밤에 인식한 사회주의도 자본주의도 없는, 전쟁이 끝나고 안온과 경건만 자리한 마을이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회의 지향이기도 하다. 그러나 20여편의 이 짧은 '하노이 서울 시편' 연작시에서 두 나라간의 동질성과 이질성이 그 깊은 속살까지 만족스럽게 드러난 것은 아니다. 며칠간의 머물음 속에서 시인이 느낄 수 있는 문화적 깊이는 근본적으로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인의 입장에서 베트남을 바라보는 시각을 어찌할 수 없다. 이는 이미 축적된 한국시문학 속에서의 월남전쟁의 의미를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려야 하는 과제가 남겨져 있다는 말이다.

고종석은 사실 에세이스트로서 활동하다가 소설가로 변신했다. 이러한 그의 글쓰기의 출발은 그의 소설이 에세이적인 모습을 띠게 하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엘리아의 제야'에 실린 6편의 중단편들이 1인칭화자로 설정돼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사소설적인 형태를 지니면서, 주로 화자인 나를 중심해 가족과 친구간의 이야기로 한정돼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런데 '엘리아의 제야'와 '카렌'을 제외한 나머지 '누이생각', '피터버갓씨의 한국일기', '파두', '아빠와 크레파스'는 그 이야기 공간이 국경을 넘어서 있어 문학공간의 확대가 돋보인다. '누이생각'은 누이가 처음 이탈리아 남자를 만나 국제결혼을 하고, 남편을 따라 시칠리아로 떠났고, 그곳에서 이혼을 하고 로마로 건너가 일본남자와 만나 다시 결혼을 하고, 그와 다시 헤어져 칠레남자와 결혼을 하고 그와 사별하는 인생여정을 통해 누이가 유명한 화가로 입신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 작품과는 달리 '피터 버갓씨의 한국일기'는 피터버갓이란 한 유명한 미국언어학자의 한국방문기를 일기형식에 담은 소설이다. 국제학술교류가 활발해진 현실 속에서 있음직한 지식인들의 허구성이 상징적으로 처리돼있다. '파두'는 뉴질랜드로 이민을 떠났던 주인공이 10년이 지난 후 이혼을 하고, 서울로 돌아와 유년시절에 희망보육원에서 함께 지냈던 두 친구를 만나 나누는 이야기로 구조화돼 있다. 그런데 이야기의 주된 서술 내용은 이민생활보다는 국내공간에서의 삶에 치중한다. '아빠와 크레파스'는 파리에 있는 친구와 서로 주고받는 편지글 형식이다. 결국 다시 파리로 이민을 갈 수밖에 없는 한 가족의 운명적 삶이 편지형식 속에 자연스럽게 담겨져 있다.

이렇게 한국문학의 문학적 공간이 세계화되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작품 속에서 내보이는 외국 공간들이 국내공간과 같은 차원에서 동질적 형상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이는 문학적 공간의 세계화가 풀어가야 할 어려운 숙제 중의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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