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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트라베이스를 통한 음악 단상 (2)
콘트라베이스를 통한 음악 단상 (2)
  • 교수신문
  • 승인 2020.01.10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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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뒷선에서 최선의 역할을 다하는 평범한 '주인공들'…
사진 출처 : 픽사베이

전에 기고한 내용에 이어 연재한다. 콘트라베이스 저자는 오케스트라의 구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그는 지휘자의 위상에 대해 “그 누구보다도 지휘자의 자리가 높다”라고 표현하고 있다. 

오케스트라나 합창단에 있어 지휘자의 역할은 절대적이다. 물론 단원들의 능력과 자질이 뒷받침 되어야 하지만 다양한 구성 요소를 조화시켜 청중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음악을 만들어 내는 것은 전적으로 지휘자의 역량이다. 음악적인 실력 뿐 아니라 리더십 또한 뛰어나야 한다. 

KBS TV에서 정명훈 지휘자가 도쿄 오케스트라의 지휘를 맡은 후 어떻게 변화되었는지를 방영한 적이 있다. 일본에서는 매년 연말 행사의 하나로 곳곳에서 베토벤 9번 합창교향곡을 공연하는데 이의 연습과정과 공연실황을 통해 오케스트라의 변화 과정을 소개한 것이다. 

이 프로에서 일본 청중들과 도쿄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이구동성으로 정명훈 지휘자의 탁월한 지도력을 높이 평가하고 그들 스스로 오케스트라의 소리가 무척 달라졌다고 고백하였다. 왜 그런 차이가 나게 되었을까?
정명훈 지휘자는 연주곡목에 대해 탁월하게 이해를 하고, 큰 흐름에서부터 작은 부분 하나까지 놓치지 않고 음악을 만들어 가는 정성을 다하고, 최상의 음악을 만들고자 단원들과의 강한 유대감과 공감대를 형성하며, 무대에 서기 직전까지도 악보를 수십 번 반복하여 읽으면서 감각을 놓치지 않는 등 철저하게 준비를 한다. 이러한 지도력이 다른 지휘자들보다 뛰어나기 때문에 오케스트라의 소리를 이전과 달라지게 만드는 것이다.

그가 도쿄오케스트라 부임 시 ‘삽’을 선물함으로써 단원들을 감동시켰다. ‘삽’의 의미는 “진정한 음악을 만들기 위해서는 땅을 파내려 가듯이 음악의 본질을 깊이 파 내려가야 한다”는 뜻이며, 이러한 상징적 의미가 단원들과의 강한 유대감과 공감대를 형성한 것이다. 

연습과정에서 본의 아니게 단원들과 마찰을 빚을 수도 있다. 예컨대 지휘자가 한 연주자에게 반복해서 지적하게 되면 관계가 어려워질 수 있다. 이럴 경우 휴식시간 등을 활용하여 개별적으로 접촉하여 사유를 설명하고 오해를 풀고 격려한다. 그 이후 도쿄오케스트라 공연 시 전 좌석 매진이며 팬클럽도 생겨났다.

오케스트라 운영비용이 막대하므로 제대로 운영해 나가기가 쉽지 않다. 지휘자의 역량을 통해 경쟁력을 확보해야 청중들을 유치하고 발전해 나갈 수 있다. 오케스트라의 속성이 CEO의 역량에 따라 좌우되는 기업 경영과도 흡사하다. 경영학의 구루 피터 드러커는 30년 전에 이미 “미래 기업은 오케스트라와 같은 조직이라야 한다.”라고 설파한 바 있다.

이렇게 보면 회사 구성원들은 각자 다른 악기들을 연주하는 오케스트라 단원들이고 CEO는 이를 총괄하는 지휘자라 할 수 있다. 인기 있는 악기 연주자들도 있지만 콘트라베이스처럼 인기에 연연하지 않고 뒷자리에서 묵묵히 충실히 연주하면서 맡은 바 역할을 감당하는 사람도 있다.

저자는 극중 배우로 콘트라베이스 연주자를 선정, 훌륭한 오케스트라 음악을 만들기 위해 묵묵히 무대 뒷선에서 최선의 역할을 다하는 평범한 - 한편으로는 비범함을 내재한 -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았다. 저자는 이 주인공을 현시대를 살아가는, 사회에서 필요한 진정한 용기 있는 사람의 하나로 삼고자 하였으리라. 이와 관련, 필자가 읽은 책 <이재철, ‘청년아, 울더라도 뿌려야 한다’> 중에 용기와 관련된 내용을 소개코자 한다.
어린아이가 아빠와 함께 오솔길을 걸어가다 불현듯 아빠에게 물었다. “아빠, 용기가 뭐예요?” 아빠가 도로 물었다. “너는 용기를

무엇이라 생각하니?” 아이가 대답했다. “나보다 덩치가 더 큰 아이가 다른 친구를 괴롭힐 때, 내가 나서서 덩치 큰 아이를 혼내 주는 거예요”

“그래, 그것도 용기일 수 있지. 하지만 그건 참된 용기가 아니야” 

그러면서 아빠는 말없이 아이의 손을 잡고 계속 산길을 걸어갔다. 산모퉁이를 돌아설 때 마침 그곳에 제비꽃 한 송이가 아름답게 피어 있었다. 아빠가 그 꽃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용기란 바로 저런 거야”

아무도 보지 않는 산 속에서 그 누구의 갈채도 없지만 생명의 몫을 다하는 것보다 더 큰 용기는 없다. 누가 보든 보지 않든지 관계없이 용기 있게 주어진 생명의 몫을 다하기 때문이다. 콘트라베이스 저자는 우리들에게 진정한 용기가 무엇인지를 안내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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