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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낱말산책] '견디다, '무릅쓰다', '소통'
[낱말산책] '견디다, '무릅쓰다', '소통'
  • 교수신문
  • 승인 2020.01.10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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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디다’, ‘무릅쓰다’

어감(語感)이란 말이 있다. 뭐라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말에서 그런 느낌이 나는 경우이다. 논리보다 직관이 통하기도 하고, 엉뚱하지만 일반적으로 범하는 오해가 만들어내는 경우도 있다. 어원을 찾아보면 가끔 짚이는 것도 있지만 전혀 뭔가 들여다볼 구석이 없는 말도 있다. 목을 집어넣어버린 거북과도 같이, 이 생물 활어(活語)의 낌새를 눈치채기 어려운 때도 있다.
'견디다'라는 말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 제대로 해명하고 있는 국어사전은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 옛 용례를 찾아봤자 견듸다, 견대다, 겨내다 정도를 내놓고 있는 이 말에서, 무엇을 분석해내겠는가. 나는 이 말의 '견'을 주목한다. 이것이 어깨를 의미하는 견(肩)일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견디다'라는 말을 생각하노라면 알 수 없이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머리를 숙이며 어떤 동작이나 태도를 유지해야 하는 근육 긴장이 느껴진다. 무엇인가를 견디는 존재는 가슴과 배를 보호하기 위해 저절로 어깨에 힘을 주어 그것들을 감싸게 되고 머리를 숙여 얼굴을 가리려 한다.
견딘다란 말의 심정적인 어감이 어깨에 있다면, 나는 조금 더 스토리를 풀어볼까 한다. 견딘다는 말은, 주인님을 말 위로 올라가도록 인간계단을 놔주는 늙은 노예의 어깨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어깨를 딛는 주인의 무게를 미동도 없이 견뎌내야 하는 미션은, 견디는 일이 무엇인지를 웅변해준다. 어찌 그것만 견디는 일이겠는가. 가마를 떠멘 가맛군들, 상여를 떠멘 상여꾼들, 거대한 바퀴를 굴리기 위해 굵은 밧줄을 떠멘 노역자들. 그들의 어깨가 해내야 하는 인내가 바로 견딤의 정체가 아닌가. 누군가 내 어깨를 딛는 발이 있고, 그 발이 안정감 있게 디딜 수 있도록 온몸으로 버텨줘야 하는 '견딤과 견(肩)댐'의 존재가 있다.
조금 비슷하지만 다른 말에 '무릅쓰다'가 있다. 이때 무릅은 무릎이 아니라, '머리'일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옛말은 ‘무룹스다’나 ‘무롭다’이다. 이 또한 견디는 것이다. 무엇인가를 머리로 떠밀거나 머리에 이거나 머리로 박거나 머리부터 나아가야 할 때, 가능한 한 머리를 보호하기 위해 입은 것을 뒤집어 머리에 대는 행위다. 무릅쓰는 행위는, 머리 앞에 있는 어떤 위험을 각오하면서도 그쪽으로 나아가야 하는 경우이다. 무릅쓸 때까지는 아직 그 위험이 오지 않았지만 생각보다 훨씬 위험할 수도 있다. 고통과 충격이 예견되기에 잔뜩 긴장을 하고 마음을 다잡으며 나아가는 일이 무릅쓰는 일이다.
이 말 속에도, 삶이 지금보다 훨씬 만만찮고 불안하며 리스크가 많던 시절에 그들이 어떻게 결단하고 선택하며 마침내 살아냈는지를 드러내는 말이라고, 혼자 가만히 곱씹어보는 것이다. 

‘소통’

요즘 오남용이 심한 말 중에 '소통'이란 말도 포함된다. 소통이라는 말이 이토록 자주 사람들의 입으로 소환당하는 까닭은, 소통에 뭔가 문제가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소통이란 한자어는 疏通이라고 쓰는데, 뜻은 막힌 통로를 뚫는 것을 의미한다. 앞에 쓰는 소(疏)라는 말이, 꽉 차 있는 것을 성기게 하는 걸 말한다. 그냥 통한다고 말하지 않고 소통이라는 말로 보완한 것은, 통하는 과정 속에 꽉 찬 것을 비워내는 일이 필요하다는 전제조건 같은 것을 말하고자 함이었을 것이다. 막힌 것을 걷어내는 과정이 있어야 통할 수 있다. 소통은 저절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노력이 필요하다는 걸 말하고 있는 셈이다. 요즘의 '소통 인플레'는 소통을 강조하고 있지만 사실은 소통의 과정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에 말들만 무성해지는 현상인지도 모른다. 많은 이들은 소통을 터놓고 하는 말이라고 생각하고 속에 쌓인 말들을 꺼내서 논쟁을 벌이다가 더 마음의 벽이 쌓이는 불통을 초래하기 일쑤다. 그리고 상대 쪽이 소통의 노력이 없어서 결과가 이렇게 되었다고 비난하기 쉽다. 이것이 소통에 대한 무지다. 소통은 아무 말이나 다 꺼내놓고 난상토론을 해야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소통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많이 해서 상대방이 알아듣도록 하고, 상대방이 내 말의 진의를 충분히 알아서 고개 끄덕이게 하는 일이 아니다. 이렇게 생각하게 된 까닭은, 소통의 불능이 내가 무엇인가를 충분히 설명하지 못했기 때문에 생겨난 오해일 뿐이라는 인식에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조근조근 잘 설명하면 소통이 될 거라고 믿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상대방도 그런 준비를 해왔다는 점이다. 상대방도 내게, 충분히 설득하고 설명하지 못해서 소통이 안되었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설득하고 설명하려 든다. 양쪽이 다 그런 방식으로 접근하다 보니, 귀는 닫고 입만 열어서 내 말을 좀 들어보라고 강요하게 된다. 나는 말을 충분히 해야 하는데, 입을 닫고 귀를 열라고 하니 이런 경우가 어디 있는가. 그러니, 소통의 자리는 자주 화가 나가 소리가 커지게 되어 있는 것이다. 물론 양쪽이 충분히 말하고 또 양쪽이 충분히 들었다면 소통이 가능하다는 주장도 할 수 있지만, 많은 소통의 장벽은 충분히 듣지 못해서 몰랐기에 생긴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 중요하다. 문제는 양쪽이 소통하고자 하는 콘텐츠가 다른 것이 아니라, 입장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 입장은 문제를 해석하는 모든 것에 작동하는 관점을 만들어낸다. 서로 관점이 다른 것이다. 이 관점의 차이는, 관점을 조정하지 않는 한 일치를 만들어내기 어렵다. 관점은 같은 내용을 다르게 보이게 하는 힘이 있기 때문에, 소통하고자 만난 사람들이 하는 일은 자기 관점을 역설하며 그 관점에 동의하라고 강요하는 일이 된다. 그러나 그 관점에 동의하는 일은, 자신의 관점을 포기하는 일이 되기에 그리 쉽지도 않으며 때로는 불가능하기까지 하다. 소통은 사실, 이 관점의 차이에 대해 치열하게 인식하고 그 관점을 어떻게 조정할 수 있는지, 그래서 양쪽이 가능한 한 많은 공유점을 확보할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가 필수적이다. 서로 다른 생각의 발생 지점을 들여다 보며, 상대의 관점을 감정이입하고 역지사지하는 것만이 소통을 가능케 한다. 이런 소통을 하기 위해서는, 양쪽이 모두 상대에 대한 상당한 존중과 배려를 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소통은 타협과도 다르면서도 같은 점이 있다. 타협 또한 상대의 입장을 존중하며, 중간 지점을 찾으려는 노력이다. 소통은 중간 지점을 찾는 것 뿐 아니라, 우선 관점을 극복하고 말이 되는 상태까지로 나아가려는 노력이다.이제 어젯밤(2019년 11월19일) 있었던 '2019년 국민과의 대화, 국민이 묻는다'(MBC 특별기획)에서 있었던, 문재인 대통령의 대국민 소통에 관한 얘기를 좀 하자. 대통령이 국민과의 대화를 통해 소통을 했다는 것, 이것은 정확히 말하면 대통령이 국민과 그저 말을 주고받았을 뿐이며, 대통령에게도 국민에게도 어떤 생각의 지점이 바뀌는 변화가 일어난 것은 아니다. 그래서 이걸 소통이라 말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대통령은 그간 스스로의 정책이나 입장에 대해 좀 더 충분히 설명하지 못해 국민이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거나 오해하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이 기회에 말을 많이 하고 싶어했고, 거기에 참여한 국민들은 스스로의 어려움이나 곤란한 처지를 알아달라고 말하고 싶었기에 대통령에게 하소연을 하고 싶어했다. 자신의 입장 천명에 대한 피드백을 듣는 것 정도가 소통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도 이 대화들을 통해 서로의 입장을 바꾸거나 서로 다른 입장을 이해하고 그쪽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이것을 '쇼'라고 말하든, 혹은 '훌륭한 국정 설명'이었다고 말하든, 그와 상관없이 '소통이 이뤄졌다'고 말하기는 곤란하다. 그저 서로 할 말을 조금 했을 뿐이며, 그것을 방송을 통해 전해 들으며 입장과 관점을 거의 수정하지 않고 더욱 열정적으로 설명하려 하는 대통령에게서 소통의 무력감을 느끼는 사람이 많을 수 밖에 없었다. 이 '대화'는 안그래도 인플레를 겪는 '소통'이라는 낱말을 조금 더 본래의 뜻과는 다르게 오염시키기만 했을 뿐이다. 이런 형식적 가짜소통이 갈등과 오해의 골을 더욱 깊게 만드는 게 진짜 문제일지 모른다.

 <시인 빈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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