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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서평 : 『위기 시대의 사회철학-대안적 사회철학의 모색』(선우현 지음, 울력 刊)
본격서평 : 『위기 시대의 사회철학-대안적 사회철학의 모색』(선우현 지음, 울력 刊)
  • 설헌영 조선대
  • 승인 2003.10.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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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 결여된 대안 모색...경험적 검토 부족

설헌영 / 조선대·철학

오늘날 인문학의 위기, 윤리적 위기, 도덕적 혼란 등 그 위기의 징후는 일일이 나열할 수조차 없다. 헤겔의 말대로, 철학이 자신의 시대를 사상으로 파악한 것이라고 한다면 과연 이러한 시대 우리 사회의 현실을 포착해 설명할 수 있는 철학은 어떤 것일까.

저자에 따르면, 80년대의 마르크스주의 철학은 80년대 이후 변화된 우리의 현실을 조망하는 데 이론적·실천적 한계를 여지없이 노정하고 말았고, 현실 사회주의의 붕괴로 인한 진보적 지식인 집단의 좌절과 지적 방황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온 탈근대론의 사회철학도 한국적 특수성을 간과하기는 마찬가지다. 요컨대, 오늘날 우리의 현실을 설명하고 해결해줄 자생적 철학 체계는 존재하지 않으며 앞으로 정립돼야 할 것이다. 그러한 정립의 첫 단계로 위의 책에서 저자가 제시하는 것이 바로 잠정적인 대안적 사회철학이다.

그렇다면 과연 저자의 대안적 사회철학은 우리 시대의 수다한 사회철학적 모색을 대신할 만한 대안인가. 현 한국사회의 문제점을 규명하고 그 해결방안을 강구하는 데 실질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대안적 사회철학의 고유 모델은 첫째 서구의 주요 사회철학 유형들에 대한 주체적 시각에서의 비판적 통찰과 분석, 둘째 우리의 현실에 대한 정확한 분석과 인식이라는 두 차원에서 균형 있게 모색해서 이뤄진 것임을 저자는 강조한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저자가 애써 제시하고자 하는 대안적 사회철학에는 그 의도에 부합할 만한 대안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이 평자의 판단이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다.

첫 번째는 저자가 강조하고 있는 주체적 시각 중에서 황장엽과 관련된 것이다. 이때 주체는 우리의 현실을 규명하여 해결해야할 주체이지만 저자가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주로 황장엽과 하버마스의 시각을 재구성해서 끌어내고자 하는 주체이다. 특히 황장엽이 마르크스주의 철학을 비판적으로 극복하여 제시한 인간중심철학은 한국사회의 고유의 자생적 철학 모델을 확립하는 데 있어 하나의 모범이자 남북한 철학계를 통틀어 20세기에 나온 거의 유일한 철학유형이요, 대안적 사회상을 추구하게 만드는 유력한 차세대 유토피아론이라는 것이 저자의 평가이다. 그러나 이러한 평가는 황장엽의 주장들에 대한 엄밀한 논증에 의거한 것이기보다는 그의 주장의 단순한 나열에 의거하고 있다.

예컨대, 민주화된 시장제도와 의회민주주의가 철저하게 구현된 사회이자 사회성원들 사이의 상호협조와 사랑의 정신이 완벽하게 발휘되는 사회라는 모델이 자유민주주의나 사회주의, 공산주의와 성격이 판이하게 다른 성격의 것이라는 주장은 엄밀한 논증과 역사적이고 경험적인 검토를 거치지 않을 때 소박한 기대나 당위적 요구의 나열에 불과할 뿐이다. 그리고 인간 중심적 이상사회의 구현을 위해서는 자연개조사업, 인간개조사업, 사회관계개조사업이 상호 균형적으로 동시에 전개되어야 한다는 황장엽의 주장도 엄밀한 논증이 필요한 것이다. 아도르노의 계몽의 변증법에 의하면, 그와 같은 세 가지 개조 사업이 인간의 해방은커녕 전체적으로 관리되는 새로운 종류의 야만 사회로 전락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인간 중심 사회가 인간과 자연의 공생과 조화로운 관계를 요구하는 우리 시대의 환경문제와 생태계의 위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도 미지수이다.

두 번째는 하버마스의 재구성에 관련된 것이다. 황장엽 이외에 저자가 기대는 또 하나의 주체적 시각은 하버마스의 재구성 시각이다. 하버마스와 우리를 결합시키는 저자의 시각은 저자 나름의 "우리의 현실에 대한 정확한 분석과 인식"에 기초한 것이다. 저자에 의하면, 현재 우리 사회의 위기는 서구 사회를 비롯한 전 지구적 차원에서 전개되고 있는 위기의 일부를 공유할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가 나아갈 방향이 '기본적으로 서구적 근대(성)'이라는 데에서 기인한다. 다만 현재 한국 사회는 서구 사회와 달리 근대의 과잉이나 남용으로 인한 것이라기보다는 아직 근대성이 충분하게 구현되지 못한 까닭에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하버마스가 재구성한 절차적 합리성은 근대의 과잉이나 과소로 인한 부정적 병리현상뿐만 아니라 근대의 통일성과 탈근대의 차이성의 대립도 성공적으로 통합한다는 긍정적인 평가에 의거하여 저자는 우리를 하버마스와 결합시킨다. 그러나 여기에는 해결해야 할 많은 문제들이 있다. 무엇보다도 저자가 기대하는 것처럼 하버마스가 재구성해 낸 근대적 주체도 결코 "국가와 국가 사이의 상호 호혜성이나 평화적 협조관계를 지향하는 차이성의 국제 정치 혹은 열린 민족주의"를 약속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점은 코소보 사태에 관한 개입을 지지한 하버마스의 입장에서도 잘 드러난다. 정치 과정은 모종의 합의 절차를 필요로 한다 하더라도 모든 문제가 다 합의를 필요로 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우리 사회에서 근대성의 과잉이 초래한 탈근대적 징후들이 사상적·문화적 영역에서 자주 목격되고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 사회에서 근대성이 구현되지 못한 것은 사상의식이나 문화적 차원에서 아직 근대적 주체가 형성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대안적 사회철학'이 과연 "우리의 현실에 대한 정확한 분석과 인식"에 기초한 것인지에 대해 의구심을 갖게 한다.

세 번째는 마르크스 철학에 대한 평가와 관련된 것이다. 저자는 곳곳에서 마르크스 철학과 마르크스주의 철학을 동일시하는 잘못을 거듭한다. 나는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라는 마르크스의 항변이 이유 있다는 것을 이 책에서도 우리는 발견한다. 맑스는 저자가 주장하는 것처럼 의회민주주의의 활용가능성을 폐기처분하지도, 계급투쟁과 계급독재라는 폭력적 방식만을 고집하지도, 전체의 이익을 위해 개인의 권리와 이익을 희생할 것을 주장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현실사회주의를 붕괴시킨 전지구적 자본주의 체계를 분석하는 데에 있어서 그리고 자유로운 개인들이 연대하고 연합하는 공동체를 모색하는 데에 있어서 여전히 유효한 마르크스의 산 철학을 매장해 버려서는 안 될 일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몇 가지 비판적 지적에도 불구하고 우리 시대의 자생적 철학체계를 정립하기 위한 저자의 끈덕진 노력만은 경하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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