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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아야 보이고 상상해야 상상된다
보아야 보이고 상상해야 상상된다
  • 교수신문
  • 승인 2020.01.06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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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희의 박물관 여행
박찬희 박물관 칼럼니스트
백제금동대향로. 국립부여박물관 소장. ⓒ박찬희
백제금동대향로. 국립부여박물관 소장. ⓒ박찬희

느닷없이 세상에 나온 유적과 유물이 역사를 바꾸기도 한다. 배수로 공사를 하다 발견된 무령왕릉, 능산리 고분군 주차장 공사에 앞서 발굴을 하다 나온 백제금동대향로가 그렇다.  1993년 12월 12일 겨울바람 불던 그날 밤, 백제금동대향로가 오랜 잠에서 깨어나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 유물이 세상에 공개되면서 백제 문화에 대한 찬사가 쏟아졌고 이 유물은 단박에 백제를 상징하는 스타로 우뚝 자리 잡았다. 2002년 한일월드컵 기념으로 일본에서 특별전이 열릴 때 일본 측에서 이 유물의 대여를 요청했지만 문화재위원회는 유물의 중요성을 고려해 불가를 결정하였다.  

백제금동대향로는 국립부여박물관의 넓고 둥그런 전시실에 홀로 전시되었다. 국립중앙박물관의 금동반가사유상처럼 따로 전시해 최고의 유물에 걸맞는 대접을 한 것이다. 전시실에 들어서면 잔잔하고 조용한 어둠속에서 빛나는 백제의 걸작을 만난다. 이 유물은 조형성은 물론이고 부분 부분이 뛰어나 눈여겨볼수록 더욱 놀랍다. 문제는 부분 부분이 치밀하고 섬세해 웬만큼 눈여겨보지 않으면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나무만 보지 말고 숲을 봐라.”라는 말이 있다. 작은 부분만 보지 말고 전체를 살펴보라는 뜻이지만 이 유물을 볼 때는 살짝 바꾸어야 한다.

“나무도 잘 봐야하고 숲도 잘 봐야 한다.”

2. 백제금동대향로(체험용 복제품).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박찬희
백제금동대향로(체험용 복제품).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박찬희

먼저 백제금동대향로에서 조금 떨어져 전체적인 윤곽을 살펴본다. 사람들은 대부분 이 유물을 보자마자 가까이서 빨리 보고 싶은 마음에 진열장 앞으로 재빨리 달려간다. 이때 발걸음을 잠시만 멈추면 좋겠다. 가장 위에 있는 봉황, 한 송이 꽃봉오리 같은 향로의 몸체와 뚜껑, 몸체를 받들고 있는 용이 보인다. 마치 용이 한 송이 연꽃을 하늘로 토해내는 모습이다. 좀 더 자세히 보면 몸체는 연꽃이고 뚜껑은 쉼없이 이어진 산이다. 상징의 시각으로 보면 연꽃은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는 불교의 세계이며 산은 신선들이 사는 도교의 세계이다. 음을 상징하는 용과 양을 상징하는 봉황이 위아래로 어우러진 세계이다. 이곳은 사람이 사는 세상과는 다른 특별한 세상으로 아래부터 물, 산, 하늘이 펼쳐진다.

이번에는 진열장 가까이 다가가 부분 부분을 눈여겨볼 차례다. 봉황의 정면에서 시작해도 좋고 측면에서 시작해도 좋다. 다만 전통적인 그림의 전개 방향인 시계 도는 방향에 따라 살펴보면 좋다.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산꼭대기에 있는 봉황이다. 사람의 얼굴처럼 봉황도 어느 면에서 보는가에 따라 인상이 확확 달라진다. 정면의 봉황은 신선의 세상을 지키는 수호신처럼 힘이 넘치고 측면의 봉황은 머리에서 꼬리까지 우아한 곡선으로 이어져 부드럽다. 봉황의 가슴에 난 구멍으로 향이 올라간다.

백제금동대향로(뚜껑). 국립부여박물관 소장. ⓒ박찬희
백제금동대향로(뚜껑). 국립부여박물관 소장. ⓒ박찬희

봉황이 있는 뚜껑은 눈이 어지러울 정도로 복잡하다. 구불구불 이어진 선들은 산을 이루는 선들로 같은 박물관에 있는 백제 벽돌의 산 풍경과 상당히 비슷하다. 산 능선을 따라 작은 선을 촘촘하게 그어 능선의 나무들을 표현하였다. 산은 머리띠처럼 뚜껑을 빙 둘렀으며 정상으로 갈수록 작아진다. 서로 겹쳐진 산들은 작은 공간에 깊은 공간감을 만들어냈다. 이 산 앞에, 또 산과 산 사이에 수많은 조각상들이 쉼 없이 늘어선 환상의 세계가 펼쳐졌다.

어떻게 이 상들을 보면 좋을까? 가장 먼저 사람에 주목해 보자. 가장 위에는 다섯 명의 악사가 연주에 흠뻑 빠졌다. 봉황의 정면 아래부터 시계 도는 방향으로 본다면 악사들은 완함, 종적, 배소, 거문고, 북과 같은 악기를 연주한다. 귀를 기울이면 당장 악기 소리가 날 것처럼 생생하다. 주위의 다섯 마리 새들도 귀 기울여 악기 소리를 듣는 것처럼, 악기 소리에 따라 춤을 추는 것처럼 자세를 잡았다.

다음은 한 단 한 단 차례대로 뚜껑을 빙 돌아가며 보면 것도 좋고 특정한 주제를 선택해 보는 것도 좋다. 특정한 주제를 잡으면 그것으로 초점이 맞춰져서 그것이 잘 보이는 경향이 있다. 일단 그나마 정체를 잘 알 수 있는 사람을 중심으로 본다면 곳곳에서 12명을 찾을 수 있다. 말을 탄 사람을 제외하면 다들 바쁠 것 없다는 듯 여유롭다. 명상하고 산책하고 긴 머리를 감는다. 이 세상은 보통 인간의 세상과 달리 아무 걸림이 없고 유유자적하는 세상이다.

깊은 산속 다른 세상답게 이곳에는 수많은 동물들이 곳곳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동물 가운데 현실 세상에서 볼 수 있는 동물과 보기 어려운 동물을 나누어 살펴보면 눈에 잘 들어온다. 현실 세상에서 볼 수 있는 동물인 호랑이, 멧돼지, 원숭이, 사슴, 독수리를 찾을 수 있다. 반면 사람 얼굴에 짐승이나 새의 몸을 한 동물도 볼 수 있고 사람과 비슷하지만 어깨 아래 깃털이 난 상상의 동물이나 머리에 뿔이 난 새와 같은 정체를 알 수 없는 동물도 곳곳에서 만난다. 산에서, 산과 산 사이에서 사람이나 동물을 찾을 때는 마치 오래 동안 숨겨진 보물을 찾는 기분이다. 특히 봉황의 뒷부분 가장 아랫단에 숨은 듯 눈을 번쩍 뜬, 나쁜 기운을 몰아낸다는 포수와 같은 상상의 동물을 찾을 땐 특히 그렇다.

백제금동대향로(몸체). 국립부여박물관 소장. ⓒ박찬희
백제금동대향로(몸체). 국립부여박물관 소장. ⓒ박찬희

몸체는 세상을 넉넉히 담을 수 있는 듬직한 연꽃처럼 생겼다. 뚜껑의 산이 5단으로 이루어진데 비해 몸체의 연꽃은 3단으로 이루어졌다. 연꽃은 가운데 윗부분을 살짝 반전시켜 맵시를 더했고 끝부분에만 잎맥을 표현해 변화를 주었다. 간결하고 선명한 연꽃을 배경으로 삼아 동물이나 인물을 하나씩 표현하였고 가장 윗단만 연잎 사이에 동물들을 추가하였다. 실제로 몸체를 볼 때는 정면이 아니라 시점을 낮추어 올려다보면 이 상들이 마법의 양탄자 같은 연꽃을 타고 하늘을 둥둥 떠다니는 착각에 빠진다.

물에서 자라는 연꽃처럼 이곳에는 물과 관련이 있는 동물들이 많이 등장한다. 물을 주제로 삼아 눈여겨보면 물고기는 물론이고 물을 무대로 살아가는 새, 물고기를 잡아먹는 동물, 몸이 길쭉한 악어까지 눈에 들어온다. 반면 뚜껑에 비해 사람들이 대폭 줄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동물을 타고 가거나 무술을 하는 듯한 사람 정도다.

백제금동대향로(받침). 국립부여박물관 소장. ⓒ박찬희
백제금동대향로(받침). 국립부여박물관 소장. ⓒ박찬희

마지막으로 몸체를 받치고 있는 용을 살펴볼 차례다. 용은 힘차고 복잡하게 묘사되어 먼저 기준점을 잡고 살펴보면 좋다. 일단 용의 측면 얼굴에서 이빨을 찾으면 편하다. 톱니 같은 이빨이 보이고 뒤이어 용의 눈이 보이고 그 위로 길게 늘어선 뿔이 차례로 보인다. 뿔까지 보이면 용의 얼굴이 제대로 눈에 들어온다. 얼굴에서 이어진 몸통은 긴장감 있게 내려오고 왼쪽 앞발은 힘차게 하늘로 내뻗었다. 나머지 몸통과 세 발을 잘 보려면 위쪽에서 봐야한다. 발톱이 인상적이어 나머지 다리들도 쉽게 찾을 수 있다. 다리를 찾아 발목 세 곳을 가상의 선으로 연결하면 정삼각형이 만들어지는데, 삼각형의 꼭지점에 해당하는 이 세 곳이 실제로 바닥과 닿는 곳이어서 안정감이 크다. 바닥 높이에서 보면 바닥에 닿은 면과 살짝 뜬 면이 잘 보인다.

이제 처음처럼 백제금동대향로에서 약간 떨어져 다시 본다. 이 유물은 백제의 왕과 왕족의 무덤인 능산리 고분군 바로 곁에 있던 절에서 이들의 명복을 빌기 위해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봉황 가슴의 구멍, 뚜껑에 난 10곳의 구멍에서 향이 피어오른다. 엄숙한 법당에서 이들의 명복을 비는 향이 신비한 산안개처럼 피어오르고 목탁 소리에 맞춰 스님들의 염불 소리가 울려 퍼지는 상상을 해본다. 이때 지금까지 살펴본 향로의 부분 부분들이 향과 소리를 따라 하나로 이어지는 것 같다.

전시실의 백제금동대향로는 오늘도 자신을 보러온 사람들에게 나지막하게 말한다.

“보아야 보이고 상상해야 상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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