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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안'의 성폭력친화주의
대학 '안'의 성폭력친화주의
  • 강정구 동국대
  • 승인 2003.09.2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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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논평

90년대 이후 대학안팎에서 여성학 강좌의 봇물, 가부장제도 철폐와 개혁, 성폭력?성차별의 쟁점화와 제재 등 여성해방적 현상이, 비록 아직 갈 길은 멀지만, 활기를 띠고 있다. 이런 신선한 변화의 물결에도 불구하고 정작 대학사회에서 남자교수와 여대생간의 성폭력문제는 별로 수그러지지도 않고 또 그 해결과정이 교육적이거나 도덕적이지도 않다.

최근에 알려진 대학만 하더라도 ㅅ, ㄷ, ㄱ, ㅂ 등 수없이 많다. 더욱 우려스러운 일은 대학사회의 교수공동체, 학교당국, 심지어는 일부 동료여교수까지 문제교수 감싸기, 덮어두기, 미적미적 미루기, 고교나 대학 동창들의 집단적 구원행위, 문제제기 학생들에 대한 은근한 압력과 협박 등이 공공연히 자행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왜 이러한가. 먼저 대학 내의 구조적 경향성부터 보자. 이제 한국사회에서는 여대생의 비율이 현저히 증가해 여자만의 대학에 비해 일반 대학에 수학하는 여학생의 비율이 높아졌다. 또 여자대학의 경우 여교수 비율이 높고 또 여교수와 여대생 중심의 탈 가부장적 대학공동체가 형성되고 있지만 남녀 공학의 경우 그렇지 못하다.

 
사회학적으로는 물질적 밀도가(여대생 수의 증가) 증가되어 상호작용이 확산되는 도덕적 밀도가 높아진 셈이다. 이 변화된 상황에서 일반대학 교수들은 여대 교수들과는 달리 성폭행 예방과 같은 새로운 규범을 제대로 내면화하지 못하는 아노미 상태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여대의 경우 취임 초부터 이에 대한 교육과 동료 여교수들로부터 지침을 접하게 되어 상대적으로 이 내면화가 빠르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탈 가부장적 대학공동체 문화가 형성된 여자대학의 경우 남자교수들의 반윤리적 행위의 발단을 근원적으로 제약하는 요소가 된다. 그러나 남녀공학 경우 가부장적 공동체문화가 여전히 대학사회를 지배하고 있어 이를 기대하기 힘들다.

물론 대학 내의 구조적 동인이 있다고 해서 모든 남자교수들이 성폭행과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니다. 대학이라는 소집단 내의 구조적 동인은 대학 밖 사회전체가 요구하는 도덕율에 따라 당연히 억제되기 마련이다. 또 작은 집단의 구조적 동인을 뛰어 넘는 것이 교육자는 말할 나위도 없고 모든 사회성원에게 부과된 최소한의 윤리-도덕적 책무이다.

기막힌 현실은 성추행 자체에 있기도 하지만 그 이후 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더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먼저 당사자에게 사과는커녕 ‘술이 취해서 기억이 나지 않는데 혹시 실수한 게 없느냐’고 시치미를 뗀다. 다음 사실 인정을 요구하면 ‘기억나지 않는 것을 인정하려면 억지로 자백을 강요하는 짓이다’로 권위주의로 대응한다. 또 ‘평소에 스승으로 제자를 얼마나 아꼈는데’ 등의 온정주의로 유인하기도 한다. 더 나아가 ‘증거를 내놔라’,  ‘법대로 하자’로 기계적 증거제일주의에 매몰된 한국사법계에 의존하겠다면서 막가파로 치 닫는다.

비판적으로 대응하는 동료교수를 지목해서는 ‘비정한 동료’,  ‘평소의 갈등관계’ ‘과 내분’ ‘일부의 선동’으로 몰아붙이면서 자신은 희생양이라고 동정담론을 확산시킨다. 여기에는 고교 및 대학 동창패거리가 전형적으로 동원된다. 심지어 학생과 졸업생까지 동원된다. 이도 저도 안 되면 동료교수나 피해자까지 명예훼손 등으로 역고소하는 데까지 나간다. 원하는 데로 풀리지 않을 것 같으면 재빨리 고소를 취하하고 제3자를 내세워 원만하게 해결하기 위해 고소를 취소했으니까 화해하자면서 병주고 약주는 파렴치한 접근을 한다.

같은 전공의 선후배교수들은 ○○학자연대라는 거창한 이름까지 내세워 교육부나 사법부에 집단적 구명 탄원을 낸다. 평소 민주화 등에 서명 한 번 해 본적 없는 교수들이 동창의 일이라고 줄줄이 동참한다. 술 동무, 테니스동무 등으로 얽힌 대학 내 동료교수들은 동료에게는 당연히 온정주의를 베풀면서 비판적 동료교수에게는 비정주의로 매도한다. 그리고는 정작 온정주의를 베풀어야 할 학생에게는 비정주의로 일관한다. 또 학교당국에는 교권보호라는 압력행사로 학생들의 학습권을 패거리 동료교수들이 스스럼없이 침해한다.

이쯤 되면 대학사회는 성폭력친화주의 소집단으로 분류돼야 하는 게 아닌지 의구심을 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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