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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은서점'에서 바라본 2019년의 독서/출판계 그리고 전망 
'니은서점'에서 바라본 2019년의 독서/출판계 그리고 전망 
  • 교수신문
  • 승인 2020.01.03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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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은서점이라는 작은 창구를 통해, 2019년의 독서/출판계를 살펴본다. 객관적인 데이터에 기반을 둔 산업분석이라기 보다, 니은서점에서 마스터 북텐더로 일하며 책을 고르고 구매하는 손님들을 관찰한 결과에 대한 기록에 가까움을 미리 밝혀둔다. 주관적인 관찰기록이지만 숫자로 표시되는 통계자료로는 채 담기지 않은 독서/출판계 풍경을 몇 가지 키워드로 제시하고자 한다. 

첫 번째 키워드: 책은 사는 사람만 산다 
2018년 통계청 가계동향조사 분석 결과에 따르면 1인 가구를 포함한 가구당 월평균 서적 구매비는 1만 2054원이다. 오락 문화 부문 지출이 월평균 19만 2천원임을 감안하면, 왜 서점이 점차 사라지고 있는지 분명하게 알 수 있다. 평균이라는 통계숫자는 가끔 착시 현상을 불러일으키기도 하기에 조심해야 한다.  

책은 안 사는 평생 책을 안 사지만, 책을 많이 사는 사람은 정말 많이 산다. 모든 상품이 마찬가지겠지만 책이라는 상품의 경우는 정도가 더 심하다. 서점 근처를 오가는 사람은 매우 많지만, 정작 지나가는 사람 중 서점 안으로 들어오는 사람은 1퍼센트도 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서점 안에 들어오는 사람은 대부분 책을 구매한다. 책을 사겠다고 결심한 사람만이 서점에 들어오고, 서점에 들어온 사람은 서점 안에서 기필코 구매할 책을 찾아내고 만다. 

키워드: 독서계는 다극화되고 있다 
오프라인 서점 수는 2009년에 2,846개에서 2013년엔 2,331개 그리고 2017년엔 2,050개로 줄어들고 있다. 반면 독립서점은 2015년 97개에 불과했는데, 2018년엔 416개로 증가했다. 서점수의 총계는 줄어들고 있는데, 독립서점의 숫자는 늘어나고 있는 역설은 독서/출판계의 성질이 미묘하게 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퍼블리셔스 테이블이라는 행사가 있다. 독립출판물 북마켓인데, 2019년에 5회차를 맞이했다. 2018년 퍼블리셔스 테이블에는 240개 팀, 2만 명이 관람했는데 2019년의 퍼블리셔스 테이블엔 입장하기 위해 줄을 서야 할 정도로 성황을 이루었다. 독립출판물은 점차 강해지고 있다. 2019년의 화제의 책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는 독립출판물로 처음에 출간되었었다. 

독립출판물 페어는 20-30세대에겐 힙 풍경을 구성하는 한 대도시 풍경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는 반면 종이책 독자는 늙어가고 있다. 너무 작은 활자 크기로 인해 독서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시니어 종이책 독자를 위해 이른바 ‘큰 활자본’ 책이 점점 다양해지고 있다. 독서의 경력이 오래된 시니어 독자를 겨냥해 old & wise에 해당되는 책의 재출간도 활발해지고 있다.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 <꼬마 니콜라 오리지널> 등은 시니어 독자의 노스탤지어를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키워드: 제목은 힘이 강하다 

한병철의 <피로사회>는 제목만으로도 호소력이 있는 책이었다. 한 때 인터넷에서 유행했던 ‘제목이 그대로 내용’인 경향은 2019년에도 여전히 강세를 보인다. <우리가 정말 친구일까>라는 제목은 그 자체로 유혹적이다. <회사가 괜찮으면 누가 퇴사해> <90년생이 온다>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왜 아이에게 그런 말을 했을까> <오늘도 나는 디즈니로 출근한다> <나는 내가 잘 살았으면 좋겠다>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 등등 일일이 다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제목의 힘은 한 동안 계속 유지될 것처럼 보인다. 바쁜 현대인은 은유가 비유로 빚어진 제목보다는 ‘제목이 그대로 내용’인 초직설법을 선호한다. 

키워드: 벽돌책은 안 팔린다 
10여년 전만 하더라도 책의 두께에 대한 심리적 마지노 선이 350쪽 정도였다면, 두꺼운 책을 보고 경기를 일으키는 독자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 독자가 두껍다고 느끼지 않는 책의 두께는 200쪽 내외로 쪼그라 들었다. 그러다 보니 책의 판형은 점점 더 작아지고 있고 두께는 얇아지고 있다. 스마트 폰의 크기는 점점 커지는데 책은 점점 작아지고 있다. 예전 같으면 200자 원고자 500매 정도의 분량이면 책 한권을 만들 수 없다고 판단했다면, 요즘엔 원고지 1000매 넘는 책이면 ‘벽돌책’이라고 부른다. 두꺼운 책에 대한 존경심은 어디론가 사라졌다. 두꺼우면 그 자체가 죄가 되는 시대가 열렸다. 교양독자의 입장에서는 못마땅한 세태이겠지만, 불편한 진실은 그렇다. 

키워드: 역시 미디어는 힘이 세다 

베스트셀러는 출판계 자체의 힘 보다는 외부 미디어에 의해 좌우되는 경향은 점점 더 강해지고 있다. 베스트셀러의 목록에 오르려면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 미디어 스타가 책을 쓰는 경우이다. 미디어 스타가 책을 쓰면 책의 깊이 혹은 품질과는 상관이 잘 팔림을 펭수, 곰돌이 푸, 빨간머리 앤, 보노보노가 입증했다. 둘째, 텔레비전에 얼굴을 내미는 작가는 팔린다. 책을 많이 팔고 싶으면 좋은 책을 쓰는 것보다 방송국과 친해지는 게 더 빠른 세상이다. 셋째, 구독자가 많은 유튜브에 소개된 책도 잘 팔린다. 그러나 어떤 유튜브 채널은 책을 소개하는 대가로 돈을 요구하기도 한다는 출판계 ‘대나무 숲’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전하기도 한다. 

노명우 아주대 사회학 교수,
<니은서점> 마스터 북텐더

2020년에도 이런 경향은 크게 달라질 것 같지 않다. 태어나는 사람의 숫자는 줄어들었고, 젊은 세대에게 독서문화는 레트로 취향처럼 느껴지고, 기성의 독자는 늙어가고 있다. 이렇게 써 놓으면 마치 독서계의 종말을 예고하는 묵시록처럼 들리지만, 예나 지금이나 책은 읽는 사람만 읽었다. 세상 사람은 책을 읽는 사람과 책을 읽지 않는 사람 2종류로 구분되고, 다시 책을 읽는 사람은 베스트셀러만 읽는 사람과 베스트셀러는 안 읽는 사람의 2종류로 구분된다. 2020년에도 그럴 것이다. 그러니 독서계의 생태에 대해 절망하거나 저주를 퍼부을 필요는 없다. 각자는 각자 걷고 싶은 길을 걸으면 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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