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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자(庚子)년 ‘흰 쥐의 해’, 쥐에게 묻고 배우자
경자(庚子)년 ‘흰 쥐의 해’, 쥐에게 묻고 배우자
  • 교수신문
  • 승인 2020.01.03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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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교수의 눈으로 본 경자(庚子)년
최재목(영남대 철학과) 교수
최재목 영남대 철학과 교수

■ 아듀! 2019. 그리고 2020년 새해의 의미
잘 가요! 2019, 기해(己亥)년. 지난 한 해는 대내외적으로 참 다사다난했다. 하지만, 모든 건 가면 오는 법. 이제 또다시 시작이다. 
시간은 원래 영원한 것. 우리 인간들이 그것을 멋대로 자르고 마디마디 이러쿵저러쿵 이름 붙여놓는 것이다. 시간의 분절화. 유한한 삶의 불안을 달래는 인간적 형식들 아닌가. 단번에 뚝 부러져 잊히지 않도록, 자신의 현재적 삶을 노크-체크-기억하는 본능인 것이다. 삶의 의미를 과거로 회상-추억하고, 미래로 전망-기획하는 일은 달력 속에서나 사적인 일기 속에서나 각종 기념일 표시로 드러난다. 
하지만 내가 없으면 영원의 시간이 무슨 소용? 시인 진이정이 <지금 이 시간의 이름은 무엇입니까>라는 시에서 말했다. “흐르는 지금 이 시간의 이름은 무엇입니까…아아 당신은 나라는 이름의 불쏘시개로 인해 더욱 세차게 불타오릅니다”라고. 나를 태우면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시간의 불꽃은 눈물겹도록 아름답다. 릴케가 “신이여 내가 죽고 나면, 당신은 혼자서 뭘 하시겠습니까? 무슨 재미가 있겠습니까?”라고 대놓고 물었듯이, 세상은 나라는 ‘인간’이 있어서 의미 있는 것이다. 사람 곁에서, 사람들 속에서,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올해도 뜨겁게 시작되리라.

사진출처 : 픽사베이
사진출처 : 픽사베이

■ 경자년 ‘흰 쥐의 해’의 의미
2020년은 경자년(庚子年)이다. 육십간지의 37번째 해이다. 통상적으로 ‘경’은 오행 가운데 금(金)으로 색깔로는 ‘백(白. 흰색)’이며, ‘자’는 ‘쥐’이다. 여기서 ‘흰 쥐의 해’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우정사업본부에서는 ‘흰쥐의 해’를 맞아 ‘작고 귀여운 쥐의 모습’을 담은 연하우표를 발행하였다. 하트 모양의 장식 속 빨간 열매를 건네주는 흰 쥐와 빛을 잡으려는 쥐의 모습이 디자인돼 있다. “새해의 소망이 이뤄지길 바라는 마음을 표현한 것”이란다. 우리 민담에서 쥐가 “부지런하고 옹골진 생활력을 지닌 동물”로 표현되어왔기에 “다산과 풍요, 번영을 상징하는 동물”로 보고, 경자년을 “희망과 기회의 해”로 규정한 것이다. 
흰 쥐 하면 우리는 여러 실험실에서 희생당하는 불쌍한 쥐들을 떠올린다. 인간들을 대신해서 임상실험을 당하는 작고 귀여운, 불쌍한 포유류에게 이런 기회에 묵념이라도 한번 했으면 좋겠다. 물론 월트 디즈니 만화 영화 가운데 유명한 주인공인 미키마우스 같은 스타 쥐도 있긴 하다. 

■ ‘비판의 차가운 이성’에서 상생의 ‘따뜻한 지혜’로 
그런데, 간지를 음양오행설에 결부시켜 설명하는 경우에는, 천간(天干)을 경금(庚金), 지지(地支)를 자수(子水)로 하여 일단 ‘금생수(金生水)’의 상생관계로 본다. 상생관계이니 겉으로는 좋은 듯하나, 속을 들여다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 
‘경금’은 희고, 차고 단단하며, 딱딱하고 굳은 것, 가을의 서늘한 기운, 철광석, 암석, 돌, 고집, 독설, 권위 등을 상징한다. 이어서 ‘자수’는 야행성인 쥐처럼 밤에 고요히 움직이는 것, 양기가 처음으로 시작되는 시간과 기운(동지, 11월, 겨울, 자정, 북쪽, 얼음), 만물의 생명을 창조하는 약하게 흐르는 차가운 물, 곱고 내성적인 심성 등을 상징한다. 
종합해보면, 밖으로 기운을 펼치기보다는 내면적으로 인내하고 단련하며, 미래에 터올 동쪽의 따뜻한 빛과 사람 살 만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공부해야 하는 형국이다. 외형적, 형식적인 것보다는 실리, 실속을 위해 신중하게 차분히 내공을 쌓고 실력을 다져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개인적으로 사회적으로 대립과 갈등, 불협화음으로 냉각-고립되고 공존-상생-화해의 길이 막힌다. 이런 우환을 피하기 위해서는 ‘비판적인 차가운 머리-이성’의 음기(陰氣)에서 ‘따뜻한 가슴-자비’라는 양기(陽氣)로 방향을 서서히 틀어가는 리더십과 남다른 안목이 필요하다. 이런 지도자는 과거로부터 축적돼온 남녀노소 및 동서남북의 각종 지혜의 씨알(빅데이터, 智-藏)을 싹틔우고, 응축된 기운(水-冬)을 녹여, 봄날의 생명(仁-生-木-春)으로 이어갈 준비를 할 것이다. 그러면 봄은, 반드시, 온다!        

■ 간지(干支), 삶의 두려움과 위안의 상징
참고로, 간지(干支)는 ‘십간’(十干: 甲·········癸)과 ‘십이지’(十二支: 子···········亥)를 조합한 60을 주기로 한다. 간지는 역()은 물론 시간, 방위 등에 사용되며, 육십간지(六十干支), 천간지지(天干地支) 또는 십모십이자(十母十二子) 등으로 부른다. 간은 천(天)-간(幹·肝)-모(母)에, 지는 지(地)-지(枝·肢)-자(子)에 연관시켰다. 십간과 십이지의 기원은 상(商)(=殷)대까지 소급되며, 춘추전국시대에 성립하는 ‘음양+오행설’보다 훨씬 앞선다. 은허(殷墟)에서 출토한 귀갑수골(龜甲獸骨)에는 많은 간지가 날짜를 표시하기 위해 사용된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간지를 음양오행설에 결부시켜 설명하는 것은 후대(춘추전국시대 이후)이며, 그 과학적 근거는 불분명하다. 또한 생명의 순환과정에다 짜 맞추는 설명이나 쥐, 소, 호랑이 등 열두 마리 동물과 관련시키는 이유는 명확하지 않다. 그럼에도 간지는 아시아의 문화 속에서 연?월?일?시나 방위, 각도, 사물의 순서를 표시할 때 사용되고, 음양오행설과 결부한 점복(占卜)에도 응용된다. 이처럼 민간의 지지를 얻으며 간지는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의 문화권에 정착했고, 나아가 러시아, 동유럽 등으로까지 전해졌다.  
발터 게를라흐는 자신의 『미신사전』 서문에서 미신이 과거 사람들의 삶에 “두려움만 준 게 아니라 위안도 주었다”는 말을 하고 있다. 그렇듯이, 우리 문화 속의 간지에서 얼굴을 드러내는 동물들의 상징은 우리에게 두려움만이 아니라 위안도 함께 가져다주었다.  

■ 인간의 그림자, ‘쥐’에게 묻고 배우자
십이지라는 서열은 우주동물원의 위계를 보는 듯하다. 동물원 속의 ‘쥐[子]’는 묘하게도 크고 험악한 동물들을 제치고서 서열의 처음을 차지한다. 우리 설화에 보면, 쥐의 앞발가락이 4개, 뒷발가락이 5개인 것을 설명하는 데서 그 이유를 밝혔다. “앞발이 짝수=음(陰), 뒷발이 홀수=양(陽)인 것은 자정을 축으로 앞쪽은 음기의 시간, 뒤쪽은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는 양기의 시간을 가졌다는 뜻! 그래서 열두 때에 자시(子時)가 제 일 앞에 온단다.” 말끝마다 쥐○○라며 쥐를 들먹이는 입이 거친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를 들으며 쥐에게 좀 배워야 한다. 
우리 속담과 민담 속에는 복을 가져오는 쥐가 등장한다. 불경(佛經)에서는 밤낮이라는 시간, 그 넝쿨을 갉아 먹는 두 마리 쥐의 비유도 있다. 아울러 쥐를 보고 배우며 깨달은 동서양의 철인들도 있다. 심지어는 짐승들을 욕으로 사용하지 말라던 사상가도 있다. 쥐나 개만도 못한 인간이 있기 때문이리라. 
그렇다. 동물의 은유나 상징은 인간 자신의 빛과 그림자이다. 쥐 또한 인간 자신을 비춰보는 거울이다. 쥐를 통하여 우리는 자아의 때-얼룩-그늘을 성찰, 극복하는 수행적 통과의례를 거친다. 올 한 해는 다른 생각 말고 흰 쥐에게 많이 묻고, 배우자. 우정사업본부에서 정한 ‘희망과 기회의 해’는 각자의 노력과 공부 여하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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