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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새해의 각오와 기대
2020년 새해의 각오와 기대
  • 교수신문
  • 승인 2020.01.03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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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사] 박남기 한국교육행정학회장(광주교대 교수)

핸드폰을 켜면 첫 화면에 퇴임 며칠 전인지 뜬다. 정년 10년을 앞둔 날부터 이 앱을 가동시켰다. 시렁 위의 곶감 없어지듯 솔솔 빠지더니 이젠 1800 여일 남았다고 뜬다. 요즈음은 늦은 밤 연구실을 나설 때면 연구실과 작별하는 연습도 한다. 

퇴임 후에는 무료라고 해도 내 강의 듣겠다고 찾아오는 젊은이는 별로 없을 것 같다. 학위와 자격 독점권을 가지고 있는 대학의 교수가 된 덕에 젊은이들에게 내 밈(Meme)을 전파하며 오히려 월급까지 받고 있다. 대학의 학위 독점권이 사라지더라도 살아남아 사회의 미래를 선도하는 국제경쟁력을 갖춘 대학이 되도록 돕는 데 남은 시간을 쓰고 싶다.  

정년을 보장받은 국립대 교수는 자신이 옳다고 믿는 바를 좌면우고하지 않고 이야기할 수 있는 특권이 있다. 세상을 향한 목소리를 낼 때 자기검열 하는 사람들이 많은 요즘, 나 같은 사람이라도 제 목소리를 내야만 사회가 바로가지 않을까 착각하며 세상과의 소통을 시도하고 있다. 이때 자기오류가능성을 염두에 두며 생각을 다듬는 데에도 소홀함이 없게 하자. 

이번 신규 공채에 합격한 학과 신임 교수에게 전화하여 축하인사를 건네며 꼰대질을 했다. 교수가 되기 위해 오랫동안 많은 고생을 한 줄은 알지만 이제 다 이뤘다고 생각하며 마음의 긴장을 늦추지는 말길, 오늘의 기쁨을 학생들에게 나눠주고 연구실의 불을 밤늦게까지 밝히는 시대의 등대가 되길 부탁했다. 그러다보니 임용 첫 학기에 퇴임사를 쓰며 대학교수로서 의미 있는 삶을 살겠다고 다짐했던 일이 어제 일처럼 또렷이 눈앞을 스친다. 남은 시간들을 저녁노을처럼 아름답게 불태워보자.

대학이 위기라며 총장들이 정부 정책을 성토하고 나섰다. 동의하면서도 전 총장으로서 부탁을 하나 하고 싶다. 정부 탓만 하지 말고 대학구성원 및 사회와의 공감대를 형성하며, 법에 주어진 권한을 토대로 대학과 사회의 미래를 설계하고 자신 있게 나아가 달라는 것이다. 2008년 10월 총장에 취임하자마자 학생들과 마라톤 토론회를 통해 타 대학에 비해 너무 낮은 교대 기성회비를 대폭 현실화시켰다. 학생들의 동의가 있었기에 등록금 동결령 속에서 장관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총장의 법적 권한을 행사할 수 있었다. 그 결과 우리대학은 등록금 동결 시기를 어느 정도 버틸 수 있게 되었다. 

대학들이 정부 눈치를 볼 수밖에 없게 된 데에는 물론 정부의 탓이 크다. 정부는 이제라도 대학정책 독점의 오만에서 벗어나야 한다. 고등교육 지배구조를 바꾸고, 대학 스스로 제 길을 찾아가도록 돕는 역할을 주로 해야 한다. 수도권 대학 통제에 몰두하는 대신 지역 대학 균형 발전에 예산을 투자해야 한다. 관주도 통제형 개혁 대신 대학 역량을 믿고 일괄 지원 후 책무성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길 바란다. 

우리나라 대학의 비상을 가로막는 또 다른 장애는 국립대 교수 독재다. 대학 총장 선출에서 교수 한 명의 가치와 학생 한 명의 가치가 100배 이상 차이 나는 현실, 정규와 비정규 교수 급여 차이가 최대 네 배 이상 나는 대학의 현실을 어찌 정의롭다 할 수 있을까. 교육비를 부담하는 학생들을 정책 결정과정에서 배제하는 것은 민주주의와 대학 발전에도 보탬이 되지 않는다. 대학이 학생들과 연대하여 바른 길을 찾을 때 국가와 사회는 대학의 목소리를 두려워 할 것이다. 

각오와 기대를 공유하는 것은 제 무덤 파는 일임을 알면서도 새해 첫날 나를 다시 일으켜 세워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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