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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성의 시대, 교수다움이라?
다양성의 시대, 교수다움이라?
  • 교수신문
  • 승인 2020.01.03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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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사] 이형철 전국국공립대학교수회연합회 상임회장

이순(耳順)을 바라보는 나이임에도, 어려운 일이 생기면 의견을 여쭈어보던 원로 교수를 찾고 그리워하는 미숙함을 떨쳐 낼 수가 없다. “요즈음 우리 사회에 원로를 찾아볼 수 없다”는 자조 섞인 투정을 자주 듣게 된다. 서로 다름과 자신만의 개성이 강조되는 다양성의 시대에서 ‘타인에게 모범을 보이는 것’ ‘시대정신을 선도하는 날카로운 지성’ 등과 같은 어구들은 이미 색바랜 화석으로 변해버렸는지도 모르겠다.

‘가치와 가격, 자존감과 자존심, 그리고 신념과 고집’을 구별하지 않고 살아간다. 가치 있는 것에 높은 가격이 매겨지는 것은 당연하지만, 비싼 것이 반드시 가치 있는 것은 아니다. 가격은 거래 과정에서 가치를 화폐 단위로 표시한 것에 불과하지만, 가치는 본연의 유의미성을 칭하는 것이다. 자존심은 남에게 자신을 굽히지 않고 스스로를 지키려는 마음으로 남과 나 사이의 갈등 관계 속에서 발현한다. 하지만 자존감은 자신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내면의 가치이다. 고집은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고 자신의 의견을 바꾸거나 고치지 않으려 굳게 버티는 것이라면, 신념은 사상이나 생각을 굳게 믿으며 그것을 실현하려는 의지인 셈이다. 가치와 자존감 그리고 신념이 자신이 풍성해졌을 때 풍겨 나오는 향기라면, 가격과 자존심 그리고 고집은 고단한 삶의 여정에 스며드는 거북한 냄새다. 

교수 업적 평가와 연봉 그리고 연구비 수주에 목메는 나를 발견하고는 발가벗은 내 모습에 밀려드는 부끄러움을 외면할 수 없다. 돌이켜 보면 내가 벌써 존경하는 선배 교수님들의 나이가 되었건만, 여전히 교수다움을 가슴에 새기지 못하고 있다. “붉게 물든 석양을 바라보며 아름다움을 만끽했던 경험이 오래되었다면, 당신은 삶을 잘못 살고 있다”고한 이야기가 떠오른다. 로마 시대 정치가이며 문학가이자 철학자였던 키케로(Marcus Tullius Cicero, BC 106-BC 43)가 남긴 명언인 “네가 왕과 동행할 때 마음이 흔들리지 않으며, 거지와 같이 있을 때 그를 업신여기지 않으면, 너는 인격자다”를 되새겨 본다. 금력과 권력을 탐하고 학생과 강사들 앞에서 거들먹거렸으니 나는 소인배임이 분명하다.

2019년 강사의 신분보장과 처우 개선을 위한 강사법이 시행되었다. 과연 우리가 강사를 학문 공동체의 일원으로 받아들이고 동료 교원으로 인정하고 있는지 반문하게 된다. 강사의 처우 개선에는 반드시 비용이 소요되는데, 어느 누구도 부담이나 희생을 지려고 하지 않는다. 누군가가 또 죽음으로 호소를 해야만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것인가? 강사법이 처우 개선이 아닌 처우 개악의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는 사례를 목도하고 있다. ‘국립대학 선진화 방안’이라는 허울 아래 도입되었던 총장간선제의 폐해에 시달리던 국공립대학교는 총장직선제를 부활시켰다. 하지만 학생과 직원은 총장 선거 참여 비율을 높여달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다양성이 강조되는 시대에서 교수의 독점적 결정권을 계속 고집할 수는 없다. 비교원의 총장선거 참여 비율은 지속적으로 상향 조정될 것이 분명하다. 대학사회의 가장 약자에 해당하는 강사의 참정권 보장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우리가 서로 이해하고 상호존중하며 합의 도출에 주저하지 않을 때, 교수로서 자존감을 회복할 수 있고 대학의 존재 가치를 찾을 수 있다. 

드디어 2020년 새해 붉은 태양이 떠올랐다. 신념과 가치를 지키고 자신을 사랑하는 교수는 존중받는다. 경자년(庚子年) 새해에는 나도 교수답고 싶다. 석양을 관조하는 여유로운 사치도 누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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