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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의 독점
말의 독점
  • 김정근/논설위원
  • 승인 2003.09.2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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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

가끔 학술 모임의 공간에서 교수-학생 관계가 몹시 서먹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일체감을 찾기가 어렵다. 나는 그 책임이 우선 교수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학생에게 책임을 돌리기는 어렵다고 본다.

이런 예는 어느 학술 모임에서나  종종 있는 일이다. 발표가 있고나면 교수 몇 사람이 토론 시간을 인정사정없이 다 잡아 먹어버린다. 그들에게 다른 참석자가 주위에 있는지 없는지는 안중에도 없다. 그들은 남들은 알아듣기도 어려운 말로 자기네끼리만 주고받는다. 다수 청중의 입장에서는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아주 지엽적인 문제를 두고 끝까지 서로 물고 늘어진다. 그러는 사이에 아까운 시간은 다 가고 만다. 분위기가 이러하다보니 다른 참석자들은 그저 묵묵히 참고 견딘다. 공연히 왔다고 후회하는 사람도 생긴다.

그런데 이 때 청중석을 가만히 둘러보면 참석자는 대부분 학생이다. 대학생이나 석박사과정의 학생이 주종을 이룬다. 듣기 좋은 말로 학문후속세대라고 하는 사람들이다. 대체로 교수 참석자는 그 수가 별로 많지 않다.

다수의 학생과 소수의 교수가 구성원이 되는 모임에서 교수 몇 사람이 신분과 권력을 이용하여 발언의 기회를 독점해버리는 구조에는 무리가 있다는 것이다. 좀 더 따져가며 생각해보자.

우선 이것은 횡포라고 할 수 있다. 학생들에게도 나름의 생각과 의견이 있을 것이다. 당연히 발언의 기회를 주어야 한다. 질문하고 토론할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 수동적으로 듣고만 있도록 해서는 안된다. 더구나 학생들은 대개의 경우 교수들의 독려를 받고 참석한 사람들이 아닌가.

다음으로 학술 모임은 그 자체가 교육의 장이다. 교수 독점은 교육 서비스의 정신에 맞지 않다. 시대의 흐름과 맞지 않다고 할 수 있다. 한번 생각해보자. 어른이라는 사람들이 잔치상의 음식을 혼자서 다 먹어치운다면 말이 되는가. 그 누구보다 또 다른 손님으로 참석하고 있는 학생들이 재미없다고 할 것이다. 앞으로의 잔치에 손님이 계속 모여들 수 있는 배려도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또 다른 중요한 측면이 있다. 학술 모임을 통해 교수와 학생이 서로 다른 위치에서 연대하며 문제를 구명하기 위해 고심하고 해결책을 찾아내려고 노력할 때 모임의 뜻이 살아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교수 독점 상태는 이와 같은 공동 노력의 화학적 반응과 시너지 효과를 차단한다. 요컨대 교수 독점은 학술 모임의 생산성을 전반적으로 떨어트린다.
교수 측의 성찰이 있어야 한다. 그들의 관용과 배려 정신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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