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16 17:05 (화)
흐름 : 인터넷 정치논객들의 새로운 글쓰기
흐름 : 인터넷 정치논객들의 새로운 글쓰기
  • 강성민 기자
  • 승인 2003.09.26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심층성 걸고 종횡무진... 사적 감정 노출 비판도

'서프라이즈'에 실린 패러디 삽화 중 하나.

최근 인터넷 정치평론 사이트 '서프라이즈'(www.seoprise.com)에 게재된 칼럼니스트 김동렬의 글은 인터넷신문과 종이신문의 변화된 위상에 대해 충격적인 주장을 펼치고 있다. 그는 "조중동을 위시해 종이신문이 인상주의 소묘를 날리고 있고 네티즌들이 냉철한 자세로 심도있는 분석을 해주고 있다"라고 당당히 말한다. 그는 딴지일보의 '디비주마'(해부하겠다는 의미의 속어) 시리즈를 인터넷 심층분석의 효시로 놓으면서 '오마이'에서 '서프'로 이어지는 칼럼들의 공통점으로 '심층성'과 '후속성'을 제시한다. 지면과 시간의 자유로움을 바탕으로 논리와 사건의 한 꼬투리까지도 파고드는 끈질김과 후속기사를 통한 이슈의 지속적 제련은, 종이신문의 일과성 훑어보기와는 비견할 수 없는 엄청난 후폭풍을 일으킨다는 요지의 주장이다.

문화비평적 글쓰기와도 차별화된 시도
물론 이런 통찰력 넘치는 자화자찬은 모든 분야에 해당하는 건 아니다. 인터넷 정치칼럼에 미쳐서 '정치 폐인'이라는 신조어가 나올 정도로 현재 인터넷 글쓰기는 '정치'의 영역에 집중되고 있기 때문이다. 김동렬의 표현대로라면 이는 '선택과 집중'의 원리에 따른 것이다. 현재 인터넷 글쓰기를 존재하게 하는 가장 강력한 誘因이 바로 정치에 있다는 것이다.

현재 주목할 만한 인터넷 논객으로는 서프라이즈의 민경진과 김동렬, 오마이뉴스에 칼럼을 기고하는 김욱 등의 인사가 꼽힌다. 민경진은 기술 메커니즘에 대한 과학적 이해를 바탕으로 정치쟁점에 육박해오는 글쓰기로, 김욱은 헌법학자 출신이면서 '김철수 발언' 등 사회적 이슈에 새로운 시각을 던지는 필자로 인기를 끌고 있다.

그렇다면, 살펴야 할 건 이들 인터넷 논객들의 논리와 스타일이다. '서프'에서 인기순위 1위인 김동렬의 칼럼이 좋은 대상이 된다. 그는 진중권, 홍세화, 김규항 등이 이끈 인터넷 칼럼의 초기형태인 '문화비평'적 글쓰기와 성공적으로 차별화한 글쓰기 스타일로 독자 공략에 나서고 있다. 그것은 정치비평은 정치비평적 글쓰기, 이에는 이라는 정공법을 떠올리게 한다. 간접적, 우회적으로 독자들에게 암시를 주는 글쓰기가 아니라, 직설적이며, 사안별로 그것을 규정하는 구조 내지는 시스템을 제시하는 역사구조적 분석방법을 채택한다. 가령 아래와 같은 식이다.

"김두관 장관의 해임결의. 노무현이 한방을 먹은 거다. 대통령이 힘이 있는 만큼 의회도 힘이 있다. 문제는 한나라당이 그 힘을 사용했다는 거다. 갑바자랑을 했다. 본질이 아닌 것에 헛힘을 썼다는 거다. 힘은 쓸수록 소진된다. 그 힘이 완전히 소진됐을 때 엎어치든 되치든 하는 것이 맞다."

"환경과 민족은 진보/보수를 초월한 인류공통의 가치인데 이를 진보가 선점한 것이다. 그것은 진보가 외연을 넓히기 위해 전략적으로 선점한 것이지 결코 진보의 본질은 아니다."

위에서 보듯 김동렬의 글에는 전체적으로 도덕적 판단이 배제돼 있다. 그리고 파워게임의 정치공학에 능숙하다. 또한 매듭짓고 판결을 내리는 전형적인 남성적 글쓰기다. 게다가 역사적으로 전개돼온 정치적 사례들을 통해 현재의 상황을 "그 시스템의 연장선상"에서 검증해내면서 유려함의 옷을 걸친다. 기만적인 현실은 이런 몇 번의 그물질 속에서 파편화와 재조립을 거듭하며 나름대로 '알몸'을 보여주기 때문에 독자들이 좋아하는 것이다.

고발과 비판, 배설을 넘어 새로운 분석의 장으로
고발과 비판의 배설적 양상을 넘어서는 새로운 분석의 장을 펼쳐보이는 김동렬의 칼럼에 대해 학계는 명시적인 평가를 주저하고 있다. 개인홈페이지를 통해 대안적인 인문학 공부를 시도해온 김영민 한일장신대 교수(철학)는 인터넷이 심층적이라는 김동렬의 주장에 반대의견을 표한다. 김 교수의 비판은 그런 심층분석이 형성하는 논쟁의 구도가 잘못됐다는 것이다.. 문인/무인론으로 접근하는 그의 분석이 재미있다. "전통 시대를 볼 때 무인들은 칼을 들고 있으니 상대방을 무시하지 못했지만, 문인들은 글로써 싸우다보니 相輕하는 경향이 강했다"는 요지다. 요즘의 인터넷 논쟁도 "결국 사람끼리 잘 살자는 문제인데, 인간적인 유대는 온데간데 없고 서로 상처주고 거의 원수가 돼버리는 걸 보면 안타깝다"고 덧붙인다.

김 교수의 논평은 "상처보다 빠른 것은 없다"라는 지점에서 설득력을 갖는다. 동정적 혜안이 사라진 논의의 극한대립이 인터넷의 한계로 지적되는 한, 심층성은 폐쇄적 자기방어 논리와 결합돼 빛을 잃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또 한가지, 비교적 퍼스펙티브가 명확한 '서프', '프레시안', '오마이'의 칼럼들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내지 않는(못하는) 학계의 주저에는 신뢰할 수 없다는 거의 본능에 가까운 거리낌이 가로놓인다. 커뮤니티를 통해 동료교수들과 인터넷 철학하기를 실천하고 있는 장은주 영산대 교수(철학)의 지적처럼 "극히 일부의 예를 제외하고는 도무지 신뢰를 가질 수 없게, 논리로 둔갑한 사적 감정이 많다"는 게 문제다. 이를테면 '진보누리'라는 진보적 칼럼사이트가 요즘 그런 비판의 중심표적이 되고 있는데, 여기서 자유로운 칼럼사이트는 별로 없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인터넷 매체의 주장이 오프라인으로 표절되고 있다는 것이다. 단지 온라인 필자라는 이유로 전거를 밝히기 꺼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터넷과 종이매체의 상호작용의 결과도 무시할 수 없다. 가령 한국일보에 연재하는 고종석 편집위원의 칼럼은 인터넷 논객들과의 치열한 물밑 접전의 결과물이라 할만큼 다루는 내용의 폭이나 질이 양측 진영의 폭넓은 공감을 얻고 있다.

인터넷 글쓰기의 특징이 '익명성'이란 건 옛말이다. 이제 인터넷 기명칼럼의 전문성은 무시할 수 없는 수준에 도달한 것 같다. 우수한 文才를 지닌 전문가들이 인터넷에서 글쓰기의 새로운 경쟁력을 고민하는 모습들이, 새로운 지식사회학적 풍경을 만들어낼 날이 멀지 않은 것 같다.
강성민 기자 smkang@kyosu.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