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오신화≫의 탄생은, 김시습의 경험과 상상 등 내적 요소에 외부의 문화 충격이 더해지면서 나타난 결과다. 외부의 문화 충격이란 명나라에서 간행된 ≪전등신화≫의 전래였다. ‘등불 심지를 잘라 가며 읽는 새로운 이야기’ 전등신화. 어두운 밤 등불을 밝혀 책을 읽다 보면 심지가 타들어 가면서 점차 빛이 약해진다. 이때 심지를 잘라 다시 불빛을 돋워 가며 밤새 읽을 만큼 흥미를 자극하는 책이라는 것이다. 김시습은 이 책을 읽은 뒤 <제전등신화후(題剪燈新話後)>라는 시로 자신의 감상을 남겼다. 여기서 그는 ‘구름 같은 변화’, ‘물고기와 용의 날뜀’, ‘정신을 아득하게 하는 허깨비의 종적’ 같은 표현으로 ≪전등신화≫의 환상성을 여러 차례 강조한다. 그는 이 책을 읽고 평생 가슴에 억눌러 온 울분이 풀리고 후련해짐을 느꼈다. 울분으로 가득 찬 현실을 살았던 그가 환상으로 가득 찬 ≪전등신화≫를 즐겁게 읽고, 그 내용을 빌려와 자신의 울분을 토로하고 싶어 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 아닐까.
우여곡절이 많았던 김시습의 삶만큼이나 ≪금오신화≫의 간행과 전승도 순탄치 않았다. ≪금오신화≫는 ≪지봉유설≫(1614)까지 서너 차례 제목만 보일 뿐, 조선의 독서계에서 그 자취가 그리 많지 않다. 17세기 전반까지는 조선에서도 ≪금오신화≫가 전해지고 있었다는 사실이 짐작될 뿐이다. 17세기 이후 조선에서는 ‘금오신화’라는 제목 자체가 종적을 감춘다. 반면 임란 이후 일본으로 건너간 ≪금오신화≫는 1653년 이래 여러 차례 간행되었다. 그리고 1884년 간본이 1927년 최남선에 의해 역수입되어 한국에 널리 보급되었다.
기약 없는 삶과 양생의 실존 <만복사저포기−만복사 부처님과의 윷놀이 내기>, 금기의 벽을 엿보고[窺] 넘다[踰] <이생규장전−이생이 담장 틈에서 만난 세상>, 함께 시를 이야기할 만한 사람과의 만남 <취유부벽정기−술에 취해 부벽정에서 노닐다>, 신념과 의혹, 소설의 여행 <남염부주지−남염부주 보고서>, 연극이 끝나고 난 뒤 <용궁부연록−용궁 잔치에 초대받다> 등 다섯 편의 소설과 각 작품에 대한 특색 있는 해설이 읽는 재미를 돋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