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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름: 회화는 살아있다
흐름: 회화는 살아있다
  • 박영택 경기대
  • 승인 2003.09.2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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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회화에 대한 관심확산...형식주의적 발상 넘어서야

경기대 / 미술평론가

1990년대 들어와 포스트모더니즘과 대중문화 등에 대한 담론이 활성화되고 이에 걸맞는 첨단 매체들이 미술계에 조명을 받으면서 부상할 때, 성급한 사람들은 회화가 고급한 예술이라는 죄목으로 그리고 보수적인 매체라는 이유로 ‘회화는 죽었다’라고 떠들었다. 그래서 회화의 위기에 대한 논의들이 무성했다. 그러나 미술의 위기를 말할 것이 아니라 새로운, 달라져야할 미술의 개념에 대한 논의의 촉발이 더욱 요구되었어야 했다. 문제는 우리가 과연 그 회화라는 것을 그만큼 고민해보고 ‘죽었다’라고 말해질 만큼의 결과물을 만들어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하다는데 있다.

회화의 위상과 문화환경이 변하고 세상은 변했지만 한국적인 상황에서 제대로 인식되어본 적이 드물駭?회화의 문제는 사실 여전히 미완의 장이다.

새삼 오늘날 급변하는 문화환경 속에서 회화의 향방과 화가의 위상을 질문하는 것이 주된 기류를 형성하고 있다는 인상이다. 그것은 그림에 대한 그림, 일종의 ‘메타-그림’의 성격을 띄고 진행한다. 개념적인 성격을 지니면서도 철저히 개념적인 차원만을 지니는 것이 아니라 감각적이며 감정을 자극하는 회화의 오랜 전통에 맞닿아있다.

회화, 인간경험의 영원한 재현방법

회화의 본질은 한때 모더니즘에서 강조되었던 것처럼 단순히 평면성이라든가 형상성, 색채, 개념성 등의 어느 한 측면으로 환원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모든 것이 동시에 마주치고 겹쳐지는 형국 속에서 형성되는 특이점들의 역사적 변환에 따라 규정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회화는 영상매체의 확산과정에서 점진하는 탈신체화 경향에 대해 효과적인 시각적 비판과 대안의 시각문화를 구성하는데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는 한편 여전히 인간 육체와 환경간의 생태적 관련 속에서의 회화야말로 인류가 지속되는 한 포기할 수 없는 무한한 문화적 행위이자 인간적 삶의 실천을 매개하는 거의 유일한 것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시도들도 나온다. 그런 인식이 최근 들어 회화를 새롭게 부흥시키고 있다는 생각이다. 21세기의 문화혁명기에 회화의 대안적 성격으로 형상에 대한 관심의 새로운 추구와 개념적 회화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 증폭되고 있으며 이 새로운 회화는 시각과 신체와의 관련을 따지는 한편 시각적 경험의 테크노 과정과 대비되는 힘겨운 모색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70년대가 그림의 신체적 조건을 철학적으로 탐구하는 관념적 화면의 방법론에 얽매였다면 그리고 80년대가 다소 정치적 메시지의 삽화나 도안의 역할에 머물렀다면 90년대는 현대추상회화의 공허한 형식주의를 피해가면서도 구상의 관행적인 어법에 발목잡히지 않을 수 있는 묘법의 고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전시용이 아닌 그림에 대한 자신의 내적 요구에 부합하는 그림이 추구되기 시작하며 무엇을 표현하기 위하여 그리는 것이라기 보다는 ‘그리기’에 목적을 두고 그것을 본격적으로 사고, 탐구하기 시작한 것도 그렇다. 그것은 회화의 힘과 그리기에 대한 비판적 문제제기와 함께 한다.

그림이란 무엇보다도 외부 세계/대상과 작가 자신의 육체와 관련된 문제이다. 작가는 육체를 통해 주어진 외부 세계를 보고 느낀다. 이를 화면에 옮기는 것이 그림이다. 따라서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매우 미묘하고 섬세한 조건, 신체적 조건이 개입된다. 우리들의 몸은 운동하면서 지각한다. 이런 사고는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80년대 이후 몸과 관련된 무수한 담론의 영향, 문화의 접촉과 개입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림이란 결국 “육체적 신경조직이라는 생산수단이 세계에 대한 자신의 개념과 표상이라는 재료에 가한 철학적 노동의 산물”이다. 미술이란 인간 지각의 문제에 가장 구체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예술이다. 미술은 지각이나 감각의 모든 틈과 변주를 꿈꿔볼 수 있는 장르이며 그런 자기 자신을 반성의 대상으로 올려놓을 수 있고  또한 타 예술영역 자체의 매체적 특수성을 영화, 사진 등의 매체 자체에 관한 지각적, 정치적 반성의 내용을 다룰 수도 있다. 감각과 지각에 대한 반성적 사고로서의 현대미술의 자기정체성이 비로 그것이다.

"권태로움의 한 징후는 아닌가"

오늘날 회화의 가능성에 대해서 여러 각도에서 점검하고 있는 젊은 작가들 대두되고 있으며 이들에 의해서 마치 마감된 듯, 죽은 듯 밀쳐져있던 평면과 회화, 형상의 논의가 최근 한국 미술계에서 매우 흥미롭게 연장되고 있다는 생각이다. 그만큼 회화전시가 많아졌고 흥미로운 그림들이 눈에 띈다. 반면 이 같은 모색과 실험이 새삼 신선해 보이지 않을 수 도 있다. 그것이 여전히 모더니즘의 미완의 구멍을 찾아나가는 형식주의적 발상 내지 새로움의 갈망, 결국 권태로움의 한 징후들일 수 도 있다는 생각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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