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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이야기: 저 막연한 30년의 길을 이끌어준 한마디
생각하는 이야기: 저 막연한 30년의 길을 이끌어준 한마디
  • 윤호병 추계예대
  • 승인 2003.09.2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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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계예술대학교 / 비교문학

“문학교수 학자가 좋은 일을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해로운 일은 하지 않으리라는 생각, 또는 자신에게는 해롭게 하더라도 어쨌든 남에게는 해롭게 하지 않으리라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위로했음을 기억하고 있다.” 해롤드 블룸(사진)이 자신의 ‘영향의 불안’에서 언급한 이 말은 필자에게 있어서 언제나 금과옥조로 작용하고는 한다.

해롤드 블룸이 새겨준 인생의 금과옥조

학계에서나 교육계에서 인문학의 위기라든지, 문학의 위기라든지, 시의 위기와 같이 가슴 답답한 말들이 들려올 때, 어문계열의 지원자들이 격감할 때, 재영토화의 기치를 내걸고 수없이 창간되곤 하는 문학관련 전문지들이 또 다른 의미의 영토화의 길로 나아가는 것을 알게 될 때, 그리고 그 밖의 일들로 마음 상하거나 좌절하거나 절망할 때 필자는 언제나 블룸의 이 말을 떠올리면서 心機一轉하고는 한다. 어떻게 보면 자조적으로, 어떻게 보면 냉소적으로 들리기도 하며, 또 어떻게 보면 올곧은 선비의 말처럼 들리기도 하는 이 말이 문학을 가르치는 필자에게 많은 것을 일깨워 주는 까닭은 아마도 문학의 위기가 비단 우리나라만의 현상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기도 하고 문학은 유사이래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결코 소멸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문학, 그 막연한 길을 찾아 나선지도 벌써 30여 년을 헤아리지만 그 길을 가는 것이 확실치 않고 자신 없기는 처음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다. 그것은 물론 필자가 걸어온 길, 말하자면 문학과는 전혀 관계없는 최초의 학부과정을 이수했다든지, 국문학에서 비교문학으로 방향을 바꾸었다든지, 이러 저런 외국문학을 기웃거리고 있다든지 하는 데서 비롯된다고 생각되는 한편, 다른 한편으로는 문학의 중요성에 대한 전반적인 인식의 부족에서 비롯된다고 생각되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국내외에서 개최되는 문학관계 학회에 참석할 때마다 다양한 유형의 연구자들―북반구에서부터 남반구까지, 서양에서 동양까지, 선진국에서 후진국에서, 기독교문화권에서 회교문화권까지―들의 진지한 발표와 토론의 열기에서 문학의 길을 가기 위한 새로운 충전과 활력을 얻고는 한다.

문학을 연구하면서, 문학을 강의하면서, 문학을 비평하면서 좌절과 절망을 느낄 때마다 필자에게 용기와 신념을 갖도록 이끌어 주고 계신 많은 분들 중에서도 영문학과 비교문학에 남다른 열정을 가지고 계신 지금은 은퇴하신 L교수님, 과묵할 것과 행정에 관여하지 말 것과 강의에 최선을 다할 것을 늘 강조하시는 언어학자이신 C교수님, 필자의 문학이론 연구를 격려해주시는 L교수님, 평론활동을 뒷바라지 해주시는 K교수님, 아무런 조건 없이 필자를 현재의 이 자리에 있도록 선처해 주신 H교수님께 언제나 감사드리면서 고단하고 불확실한 문학의 길을 필자 나름대로 그저 열심히 가고자 한다. 이러한 분들의 독려와 격려, 질타와 나무람이 없었다면 지금의 필자는 여전히 햇빛 한 번 들지 않는 북향의 암울한 연구실을 벗어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예비역 장성되기보다 어려운 문학교수의 길

문학교수의 길을 가면서 블룸의 언급했던 ‘자신에게는 해롭게 하더라도 어쨌든 남에게는 해롭게 하지 않으리라는 생각’을 하고는 하는 것은 비단 필자에게만 해당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이번 2학기부터 전임교수로 임용되어 문학을 강의하게 될 ‘어린’ 문학교수에게 더욱 절실하게 와 닿는 말일 수도 있을 것이다. 전임교수 되었다는 소식에 “문학 교수되기가 군대에서 장군 되기보다 더 힘들구나”라는 말을 예비역 장성인 자신의 아버지로부터 들었다며 소주잔을 기울이던 외국문학 신임교수의 말이나 “선생님 저 이번 2학기부터 전임교수로 임용됐어요”라며 목 메이던 또 다른 신임교수의 소식은 그러한 일들이 바로 필자의 지난 세월을 재현시키는 것 같아서 내 일 이상으로 반갑기도 하고 기쁘기도 한 것이었다.

문학교수의 길을 이제 막 걸어가기 시작하는 이들 신임교수들에게 축하를 보내면서 “늘 신선한 아침처럼 살라”는 니체의 말을 전하고 싶다. 아침마다 이 말을 되새기면서 필자가 출근길을 서둘러 가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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