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대 / 철학
조선의 뒷골목 풍경 | 강명관 지음 | 푸른역사 刊 | 2003
그가 관심을 가지는 역사의 대상은 일단 '민중'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민중'이라고만 하는 건 별로 정확한 것은 아니다. 그는 '민중'도 '민족'이라고 하는 추상화된 코드와 마찬가지로 '왜곡과 배제의 폭력'을 휘두르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러한 왜곡과 배제에 대한 그의 입장은 다음과 같다. "존재했던 다양성과 구체성을 지워버리고 오로지 단일한 중심만을 내세워 대상을 왜곡시킴으로써 애써 중심을 닮게 하는 권력이야말로 중심적 담론의 독재가 아닐까? 이것이야말로 정치독재보다 더 근원적인, 정치독재를 가능하게 하는 독재의 기원이 아닐까? 민족이나 근대, 민중 등 거대한 중심적인 코드를 보면서 늘 이런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올바르고 마땅한 지적이다.
그는 과거의 역사적 탐구의 중심에 놓인 담론들을 이렇게 비판하고 새로운 코드들을 찾아 나선다. 그가 발견한 건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내가 생각한 것들은 모두가 시시하고 자질구레한 것들이다. 그러나 이런 작고 시시한 이야기들이야말로 내가 알고 싶었던 과거 인간들의 리얼리티가 아닐까? 이런 것들을 통해 역사를 이해할 수도 있지 않을까? 나는 언제부터인가 알 수 없지만, 이런 사소한 코드들이 거대한 이야기에 가려진 또 다른 역사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수단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처럼 그는 거대하고 추상화된 코드들의 대안으로 '시시하고 자질구레한 사소한 코드들'을 내세운다. 그것들이 바로 이 책에 서술되어 있는 항목들이다. 그리고 이러한 코드들은 그가 역사를 탐구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정리를 해보자. 그가 추구하는 건 분명 ‘또 다른 역사’다. 그리고 그 추구 수단은 과거 인간들의 리얼리티에 근거한 ‘사소한 코드’들이다. 그렇다면 이 책에는 또 다른 역사가 담겨 있어야 할 텐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그는 수단이 되는 그것들을 원전에서 끄집어내 오늘날의 사람들이 읽기 쉽게 재정리하고 있을 뿐이다. 물론 각 장의 말미에는 자신이 탐구한 사소한 코드들에 대한 저자의 간단한 소회, 탄식, 즉 코멘트 몇 마디가 붙어있긴 하나 그것들을 '또 다른 역사'의 테제로 보기엔 부족하다. 따라서 이제부터 그가 해야 할 일은 자신이 추구하는 역사의 관점을 정립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사소한 코드들을 꿰어 역사를 완성하는 일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 책에 쓰인 이야기들은 '수단'이 되지 못하고 옛날이야기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이 책을 사서 읽는 것은 두 가지 정도를 만족시킬 수 있다. 하나는 말 그대로 옛날이야기를 읽기 위해서이다. 많은 정보를 정확하게 얻기에는 더없이 좋다. 다른 하나는 그가 앞으로 전개할 또 다른 역사의 정립과정을 지켜보기 위해서다. 어느 쪽이든 손해나는 일은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