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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문화칼럼] 카메라로 그린 파리의 대서사시
[김희철의 문화칼럼] 카메라로 그린 파리의 대서사시
  • 교수신문
  • 승인 2019.12.20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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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전 '매그넘 인 파리'를 보고 와서

카메라로 밥 먹고 사는 모든 자는 파리에게 빚을 졌다. 사진과 영화의 출발지가 모두 프랑스의 수도, 파리이기 때문이다. 사진은 오페라 무대 예술가였던 다게르의 발명품으로 그가 1838년경에 찍었던 탕플대로(The Boulevard du Temple)가 파리의 거리였고, 그로부터 50여 년 후인 1895년, 뤼미에르 형제에 의해 발명된 영화가 처음 상영된 장소 역시 파리 카퓌신 거리에 있는 그랑 카페였다. 사진과 영화뿐인가? 파리는 수많은 화가들이 새로운 기법을 시도했던 아지트였고 패션이 중심지이자 혁명의 도시였다. <매그넘 인 파리> 전은 매그넘 소속 사진작가들이 프레임이라는 화폭에 그들이 사랑했던 도시, 파리의 시대적 풍경을 담은 작품들을 망라한 전시다. 매그넘은 파리 신문사 낙방자로 인연을 맺은 세 사람, 로버트 카파와 데이비드 세이무어 그리고 카르티에 브레송이 의기투합하여 만든 사진가 그룹. 이들은 자본과 편집자 중심의 언론사에 맞서 작가의 자율성을 지키고 자신들의 사진 저작권을 보장받기 위해 노력했다.

사진은 (영화도 마찬가지긴 하지만) 일종의 판화다. 그래서 무한복제가 가능하다. 하지만 마치 그림의 원본을 보는 듯 액자에 정성스럽게 담긴 한 장 한 장은 파리의 기쁨과 슬픔, 분노와 절망 등 파리지앵들의 삶과 감정들을 잔잔하게 때론 격하게 토해내고 있었다. 노트르담 대성당 첨탑의 아름다웠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나폴레옹의 대관식이 열렸고 빅토르 위고의 소설로도 잘 알려진 이 역사적 장소가 불타는 악경을 올해 4월 전 세계 매체가 보도했다. 그 상황을 목도한 파리 시민들의 감정들과 2008년 숭례문 화재 때 서울 사람들이 느꼈던 것들은 아마 똑같지 않을까?

고소공포증의 현기증이 날 정도로 위험해 보이는 에펠탑 위에서 아무런 안전장치 없이 작업하고 있는 노동자의 사진, 멀리 재개발되는 풍경을 배경으로 풀밭에 앉아 있는 남녀의 모습 등은 한국의 현재를 꼬집는 것 같기도 했다. 위험한 산업현장에서 일하다가 죽고 있는 노동자의 현실, 온갖 문제를 발생시키는 아파트 재개발에 혈안이 되어 있는 부동산 광풍은 한국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글로벌 자본의 네거티브 사진이다.

현재 91세의 나이로 매그넘 작가 중 최고령의 거장인 엘리엇 어윗은 파리의 아이들, 개, 노인들의 모습을 유머와 위트 넘치게 촬영하여 관객들의 미소를 짓게 했다. 그의 사진 <에펠 타워 100주년>은 비바람이 몰아치는 날, 뒤집어진 우산을 든 채 서 있는 연인 옆으로 우산을 든 한 남자가 장난치듯 뛰어오르는 순간을 포착했다. 그 장면 멀리 에펠탑이 뿌옇게 보인다. 이 사진은 이번 전시의 입장권, 포스터 등에 쓰이는 메인 이미지가 되었다. 특별관에 따로 마련된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8211; 파리>는 사진 촬영을 허락하지 않을 정도로 특별한 전시였다. 물 위에 사람이 떠 있는 결정적 순간에 셔터를 누른 그의 대표작 <생 라자르 역에서>를 비롯하여 철학자 사르트르가 거리에서 파이프 담뱃대를 물고 있는 초상사진 등 젊은 시절 화가를 꿈꿨던 영원한 파리지앵 브레송의 보석 같은 작품들을 만날 수 있었다.

센강(Seine river 보통 센강으로 발음)과 다리들, 루브르 박물관, 학교, 거리의 카페와 사람들, 지도, 피카소나 알랭 드롱 같은 유명인들, 패션, 푸조 자동차 등 파리의 자연과 문화, 예술, 산업뿐만 아니라 프랑스의 정치, 혁명, 최근 노란 조끼를 입고 격렬하게 시위하는 모습까지 파리라는 도시가 뿜어내고 있는 방대한 이슈들을 40명의 매그넘 작가들이 시처럼 담아낸 걸작들을 천천히 소화하면서 보느라 관람 시간이 꽤 길었다. 인터뷰로 구성된 다큐멘터리 영상과 전시된 사진들의 슬라이드 쇼, 전시장 분위기와 어울리는 음악과 조향도 관람의 집중도를 높이는 데 도움을 주었다. 러닝타임이 아주 긴 웰메이드 영화를 감상하고 나온 느낌이었다. 그만큼 읽을거리도 많았고 감상할 이미지도 풍부해서 입장료가 아깝지 않았다. 나중에 서울을 주제로 이런 전시가 기획된다면 또 어떤 기록물들이 나와서 관객과 소통하게 될까 궁금하기도 하다.

한강, 남산, 내부순환로, 공사 현장, 강남의 빌딩들, 돈 쓰러 다니는 사람들과 돈 벌기 위해 고단하게 일하는 사람들.... 분주한 연말연시에 잠시 몸과 머리를 식히며 파리를 산책할 수 있는 시간을 지인들에게 선물하기 위해 입장권 2장을 더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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