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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쟁점: 학회활동의 결과물, 경쟁력 제고에 나섰나?
학술쟁점: 학회활동의 결과물, 경쟁력 제고에 나섰나?
  • 이지영 기자
  • 승인 2003.09.2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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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I 등재 노력, 국제저널 한국특집 마련도
한국물리학회는 요즘 국내학술지인 ‘새물리’를 SCI에 등재시키기 위해 고심 중이다. 물리학회에서는 국내학술지 ‘새물리’와 SCI에 등재된 영문학술지 JKPS를 발간하는데 요즘은 영문저널에만 논문이 몰려, 국내학술지 투고 편수가 나날이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임원진이 꾀를 냈다. 한국어로 된 논문도 영문 초록과 참고문헌을 갖출 경우 SCI에 등재될 수 있기 때문에, 거기에 맞게 ‘새물리’의 체질을 개선하고 있는 것. 명연수 편집이사(인제대 물리학과)는 “인력풀이 풍부한 까닭에, 몇 가지 양식만 갖추면 2~3년 내에 등재가 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한국어 학술지의 국제화를 통해 국내학술지의 경쟁력을 향상시키겠다는 계산이다. 날이 갈수록 학회 활동이 치열해지고 있다.

학회소식지 대중화 시도

대한화학회가 발간하는 영문학술지 BKCS 역시 예외는 아니다. 1980년도에 창간, 1981년에 SCI에 등재된 이 잡지는 처음부터 국제용으로 준비됐다.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영문저널 중 하나인데 이 학술지 역시 ‘인용지수’를 높이기 위해 분주하다. 학회지 업무를 보고 있는 이선열 씨는 “학회지 기획 단계에서부터 외국학자들과 연락해 논문 투고를 유도해 국내외 학자들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학술지를 만들고, 외국학자들에게 논문 게재료를 일부 지원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국제학술대회에 참석하는 학회원들이 학술지를 가져가 외국학자들에게 나눠주거나, 지인들에게 알리는 것도 학술지의 대외 이미지를 높이는 데 기여한다.

학회 소식지도 시대의 흐름에 발맞추고 있다. 여기엔 소식지를 과학대중의 필독서로 만들어 이공계 위기를 해소하겠다는 작심이 보인다. 과학기술인총연합회는 무료로 뿌리던 소식지를 유료로 전환, ‘과학과 기술’이라는 월간지로 변모시켰다. 고급 교양 과학정보를 담고자 기획회의도 수시로 연다.

대한화학회의 ‘화학세계’, 한국물리학회의 ‘물리학과 첨단 기술’은 학생회원들까지 포섭할 수 있는 콘텐츠를 점점 늘여나갔다. 1995년 창간돼 연 4회 발행하는 대한생화학분자생물학회의 소식지도 회의 활동 및 회원정보를 전달하는 동시에, ‘원로교수와의 인터뷰’ 및 ‘프론티어 임상의’를 통해 기초와 임상의학 그리고 인접 학술기관과의 교류의 장을 제공하자는 목적에서 기획됐다.

이 같은 노력은 비교적 물적, 인적 자원들이 풍부한 이공계 학회에서 나타나는 경향이다. 인문사회 계열의 학회에서는 다른 방법으로 학회활동 결과물들을 산출하고 있다. 학술대회의 책자를 일반 단행본으로 출간하는 것은 가장 고전적인 방법이다. 한국사회사학회가 문학과지성사에서 여러 권 펴낸 사회사학사 총서는 모두 학술대회 논문을 가다듬어 펴낸 책들이다. 최근에는 학회 차원에서 대중서를 기획하는 경우도 부쩍 늘었다. 한국생태학회의 ‘서울의 생태’(당대 刊), 한국이슬람학회의 ‘끝나지 않는 전쟁’(청아 刊) 등 학회원들이 필진으로 참여하되, 사회쟁점에 대한 전문가적인 시각을 담아 전공의 저변을 넓히려는 시도들이 점차 일반화되고 있는 것이다.

외국학회와 공동 저널 발간 

사회과학영역에서 가장 도드라져 보이는 일은 우리의 역사적 경험을 국제적으로 공유하는 일이다. 일례로 지난 6월에 출판된 ‘뉴 폴리티컬 사이언스’지에는 5.18 광주항쟁과 한국민주주의를 특집으로 국내 사회과학자들의 논문이 대거 실렸다. ‘뉴 폴리티컬 사이언스'지는 미국정치학회 산하 학술지로 진보적인 사회학자들의 모임이다. 편집자로 있는 조지 카치아피카스가 전남대 5․18 연구소에 방문한 것이 계기가 돼 5.18 광주광주항쟁을 특집으로 다루는데 합의할 수 있었다. 공동 편집자로 참여한 나간채 전남대 교수(사회학)는 “국내 광주항쟁 연구가 미국의 동아시아 연구자들 뿐 아니라 제3세계 학자들에게까지 성공한 민주화 혁명의 모델로 알려지는 좋은 계기가 됐다”라고 평가했다. 한국의 역사적 경험이니 사회현상을 연구해 세계사적 의미와 일반화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일이야말로 우리나라학회의 경쟁력을 증대시키는 통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모든 학회가 이 같이 경쟁력 강화에 힘을 쏟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한국불어불문학회의 한 교수는 “기초학문의 입지가 약해지는 마당에, 경쟁력 제고를 위한 별도의 노력을 기울이는 게 상당히 힘들다”라고 토로한다.

현재 학회활동의 결과물의 경쟁력 강화는 국제적인 학술지로 성장하거나, 일반대중에게 어필하는 두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 외에 외국학회에 공동발간 학술지의 모색, 특정 연구지원을 겨냥한 단발성 기획, 연 2회 두껍게 발간하던 것을 얄팍하게 자주 내는 발간방식에서의 변화 등이 감지되고 있다. 제한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상상력’을 발휘할 수밖에 없다는 공감대가 학회에 확산되기 시작하는 것 같다.


이지영 기자 jiyou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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