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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영화’로 돌아본 한국영화 100년
‘나쁜 영화’로 돌아본 한국영화 100년
  • 교수신문
  • 승인 2019.12.13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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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형 동국대 영화영상학과교수
정재형 동국대 영화영상학과교수

영화는 그 시대의 얼굴이다. 영화는 시대의 정치, 경제, 사회의 흐름을 간접적으로 반영해낸다. 영화는 허구고, 오락이지만 그 속에는 당대의 담론들이 녹아들어 있다. 영화를 단지 소비매체로만 생각하지 않는 이유다. 올해는 한국영화탄생 100주년(1919 - 2019)이고 많은 행사들이 있었지만 그중 가장 눈에 띄는 행사는 지난 11월 28일 개막한 ‘한국 나쁜 영화 100년’이었다. 아시아문화전당 ACC 시네마테크가 기획한 그 행사는 100년 동안 한국영화사에서 탄압을 받았던 영화들을 한 자리에 모아놓은 시사회였다. 
일제 시대를 대표해서 1936년 양주남감독의 <미몽>은 불륜을 저지른 여성을 소재로 하여 여성해방의 주제를 보여준 영화였다. 해방 이후 이강천 감독의 <피아골>(1955)은 빨치산 남부군의 활동을 그린 영화인데 주인공을 포함한 일부 남부군을 인간적으로 묘사한 것이 반공법에 걸렸다. 결국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마지막 장면에 가슴에서 태극기를 꺼내 귀순하는 이야기로 바꿔서 개봉했다. 유현목 감독의 실험적인 영화 <춘몽>(1965)은 나체장면이 문제가 되어 외설죄로 걸렸다. 완전 나체도 아니고 살색 스타킹을 착용한 장면인데도 당시 윤리에는 저촉되었다. 문제가 되는 장면들을 삭제한채 개봉했다. 이번 영화제에서 상영되지는 않았으나 유현목감독은 <오발탄>(1961)에서 북에서 내려온 실향민 노모의 대사중 북에 두고온 고향으로 가자는 대사가 반공법에 걸려 푸른 초원으로 가자는 엉뚱한 대사로 대체해야 했다. 이후 후배 이만희감독의 <7인의 여포로>(1965)가 반공법에 위반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한국여군을 포로로 잡아 호송하는 과정에서 중공군이 그들을 성추행하자 한국여군과 동족인 입장에서 그에 반발하는 북한군의 행동이 묘사된다. 당시 당국은 북한군이 같은 아군인 중공군에게 적대시할수 없다는 논리로 반공법에 적용해 영화의 수정을 요구했다. 이때 유현목 감독 역시 반공은 국시가 될수 없다는 취지로 이만희감독을 옹호했다가 같이 수모를 당하기도 했다.   
김수용 감독의 <야행>(1977)도 주인공이 상상속에서 저지르는 성적인 장면 등이 검열된채 개봉했다. 김수용 감독은 검열의 자세한 얘기를 논문 [가위의 사술]에서 밝히기도 했다. 김수용 감독의 또 다른 영화 <도시로 간 처녀>(1981)는 버스 안내양의 삥땅을 검사한다는 빌미로 나체몸수색하는 장면이 문제 되었다. 아이러니한 것은 당시 영화로 인해 버스회사가 나쁜 이미지를 받았다는 것을 항의하는 의미로 버스회사가 데모를 했었는데 사장이 버스차장을 동원한 관제데모였던 것이다. 김수용감독은 중광스님의 일대기를 그린 <중광의 허튼소리>(1986)가 또다시 표현의 문제로 검열에 걸리자 영화감독중단을 선언하기에 이른다. 
장선우 감독의 <서울 예수>(1986)는 종교적 모독의 의미가 있다고 제목을 문제삼아 <서울황제>로 개봉하는 등 웃지 못할 일이 있었다. 장선우 감독은 비행청소년의 세계를 사실적으로 그린 <나쁜 영화>(1997)와 성적인 묘사가 노골적인 <거짓말>(1999)을 통해 심한 검열을 당했고 이번 영화제에서도 삭제된 영화를 상영한 이후 여전히 노컷 필름을 상영하지 못하는 아쉬움을 피력하기도 했다. 서울 올림픽이 있던 해에 철거민을 다룬 김동원 감독의 <상계동 올림픽>(1988)은 국가적 행사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으로 반체제적인 영화로 취급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이처럼 한국영화의 수난사는 그대로 한국사회의 수난사를 반영한다. 한 사회가 얼마나 건강했던가를 추억하는 것은 당시의 영화가 증언해준다. 지난 100년을 회고하는 것이 단순히 대표작만을 골라 추억하는 것 보다 이렇게 예술표현과 사회적 제도나 관습이 부딫혀 갈등했던 순간을 기억하고 정리함으로써 한국사회가 어떤 방식으로 얼마나 성숙해졌는가를 평가할수 있다는 것 자체가 건강하고 행복한 것이 아닌가. 행복한 시간을 만들어준 ACC 시네마테크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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