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0 05:40 (토)
교수의 自畵像
교수의 自畵像
  • 정용준 편집기획위원
  • 승인 2003.09.22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딸깍발이

사회과학, 그 가운데서도 소위 잘나간다는 분야의 교수로 있으면서 학문을 시작할 때 다짐하였던 비판적, 성찰적 지식인의 초심을 점차 잃어가는 스스로의 모습에 가끔은 놀라게 된다. 이는 당연히 나약하고, 현실에 안주해버린 필자의 책임이지만, 한편으로는 지식인을 인스턴트 커피로 써먹는 것에 익숙한 우리의 사회적 분위기와도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기업은 단기적으로 회사이익에 도움이 되는 부분만 지식인을 이용할 뿐, 지식의 사회적 재생산을 통한 중장기적 회사발전에 대해 고민하는 것에는 아예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정부와 정치권 또한 마찬가지이다. 얼핏 보면 학문적 창의성과 대학의 권위를 존중해주는 것 같지만, 사실은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거나 바람막이로 이용되는 것이 대부분이다. 새로운 정권이 등장하면, 새로운 슬로건을 내세우고, 이를 매스미디어를 통하여 홍보하는 것도 대부분 교수들이지만, 이 또한 그때뿐이다.

그나마 기업과 정부는 회사이익이나 정부 목표라는 것이 있으니까, 이해 할 수 있는 측면도 있다. 정작 이해하기 힘든 것은 학자들의 집단인 학회이다. 모든 학회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학회가 이론과 정책을 이끌기보다는 후원단체의 지원 프로그램을 무분별하게 수용하는 소위 ‘학회장사’를 하면서 스스로 학회와 학자들의 공신력을 떨어뜨리기도 한다. 심지어는 중요한 정책결정에 앞서 경쟁사업자들의 세미나를 끌어들이고, 똑같은 학자들을 중복 출연시키는 경우도 있다.

그러다보니 가끔 학회에 불려 다니는 필자와 같은 사람은 자연히 중복적인 내용을 여기저기서 발표하고, 시간에 쫓겨 내용까지 부실하였던 경우마저 있었다. 학회와 사회의 수요에 맞추기 위해 패션적인 주제만을 골라서 공부하는 사이에, 세월은 가고 학문적 축적은 남는 것이 없게 되었다. 그렇다고 어느 정도 자기시간을 가지고 연구를 통제하다보면, 어느 누구도 무명의 지방대 교수를 찾지 않고 주머니는 얇아져만 갔다.

이는 겉으로는 군사부일체와 교수전문가 집단의 권위와 학문적 창의성을 인정하지만, 사실은 교수를 일회용 티슈로 이용하는 사회적 풍토와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노무현 정부가 들어서면서 지방대 교수들이 정책결정에 많이 참여하고, 이들에 의해 지방분권화와 지역혁신체가 강조되고 있다. 하지만 사실은 전혀 새로울 것이 없는 일시적 정책패션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하기야 이 만큼 스스로의 모습이 일그러진 것에 대해 누구를 탓할 수 있을 것인가. 가장 어려운 시국에 비판적 사회 참여를 몸소 실천한 중국의 노신같은 하는 지식인이 있고 보면, 모두다 시류에 편승한 필자의 책임이라 할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