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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공학의 발전과 민주주의
유전공학의 발전과 민주주의
  • 교수신문
  • 승인 2019.12.06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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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화 성신여대 동아시아연구소 학술연구교수
정진화 성신여대 동아시아연구소 학술연구교수

‘가타카(Gattaca)’. 1997년 제작된 이 영화는 제목부터 매우 생소하게 느껴지고 그 뜻을 유추하기도 쉽지 않다. 영화에서 가타카는 우주탐사를 하는 회사의 이름이지만 그것이 암시하는 것은 바로 DNA를 이루는 4종의 염기이다. DNA는 이중 나선구조로 되어 있으며 이러한 구조 속에서 A와 T, G와 C는 서로 짝이 되어 마주보고 있다. 즉, 가타카는 DNA의 구조와 성격을 의미하고 있는 것이며 이 영화는 우리에게 인간이란 존재의 의미에 대한 궁극적인 질문을 제기한다.  

   영화 가타카에는 유전자 조작으로 열성인자를 제거하고 인공수정을 통해 태어난 우월한 사람과 유전자 조작 없이 자연임신을 통해 태어나는 열등한 사람이 등장한다. 가타카라는 회사에서 유전자 조작으로 우월한 유전자를 갖고 태어난 사람은 적격자로 판정되고, 자연적으로 열성인자를 갖고 있는 사람은 부적격자로 판정된다. 유전자로 인간의 사회적 지위와 계급이 결정되며, 유전자가 인간의 꿈과 희망, 미래까지 규정짓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약 20년 전만해도 상상 속에 있던 이야기가 이제는 현실이 되었다. 제4차 산업혁명 시대에 유전공학 기술은 급격하게 발전하고 있으며 이제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가 신의 권위에 도전하며 호모 데우스(Homo Deus)로 향해가는 수준에 와있는 상황이다. 2018년, 중국 남방과학기술대의 허젠쿠이(賀建奎) 교수는 유전자 가위, 일명 크리스퍼(CRISPR)를 이용해 세계 최초로 아이를 출산하는데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허젠쿠이 교수는 질병 예방 측면에서 획기적인 발전을 이루었다는 의미를 부여했지만 많은 학자들은 우려를 표명했다. 심지어 크리스퍼 기술을 발견해 낸 제니퍼 다우드나(Jennifer Doudna) 교수조차 신중한 태도를 강조하며 이 기술을 어떻게 다룰지 결정하는 일이야 말로 인류가 대면한 적 없는 가장 큰 도전이라고 밝혔다.  

   유전공학 기술은 인간의 수명 연장, 질병 예방, 건강 증진 등을 통해 인간이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행복추구권을 보다 적극적으로 행사하는데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기술이 비치료적 목적으로 인간의 신체 강화, 특정 능력의 개량, 우생학적 이용 등에 쓰이게 된다면 이는 우리 사회에 엄청난 문제를 낳게 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유전공학 기술의 발전과 그 이면에 대해서 우리는 정치적인 고찰을 반드시 해야 할 필요가 있다. 

   첫 번째, 유전자 편집 및 조작과 같은 기술은 모든 인간은 자유롭고 평등하게 태어났다는 민주주의의 전제 자체에 심각한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마이클 샌델(Michael Sandel)이나 위르겐 하버마스(Jürgen Habermas)의 주장처럼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는 인간이 마음대로 통제할 수 없는 시초나 우연성에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러나 인간의 탄생 이전에 이미 유전자 편집 및 조작을 통해 특정한 의도와 목적, 기능이 부여된다면 우리는 인간의 존엄성을 과연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인가. 

  두 번째, 유전공학 기술의 사용이 자본주의와 결합하게 될 경우, 이는 또 다른 형태의 불평등 구조를 만들어낼 것이다. 특히, 유전자 검사와 정보의 활용, 유전자 편집과 조작 등의 기술이 경제적으로 유리한 계층에게 보다 높은 접근성과 활용성을 가질 수 밖에 없음을 생각할 때, 사회적?경제적 불평등은 이제 유전적 불평등으로 이어지는 문제가 초래될 것이다.  

   유전공학 기술의 발전과 그에 따르는 새로운 사회적 위협들은 결국 민주주의의 근본정신과 가치의 문제가 되며, 그 해결방안의 모색은 정치적 영역의 역할로 귀결된다. 제4차 산업혁명 시대에 유전공학 기술의 발전이 궁극적으로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던지며 인간의 자유권 및 평등권 보장 문제와 결부되어 있음을 생각할 때, 앞으로 정치학 분야에서 이러한 문제를 다루는 보다 다양하고 심도있는 연구들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최근 한국연구재단의 사업들이 과학기술과 인문사회 영역의 학제적 융합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며 정치학 분야에서 새로운 과학기술 혁명에 따르는 변화와 문제들을 함께 고민하는 연구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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