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4 20:35 (수)
권오길의 생물읽기 세상읽기 -234- 가시박
권오길의 생물읽기 세상읽기 -234- 가시박
  • 교수신문
  • 승인 2019.12.05 22:1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강원대 명예교수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

얼마 전에 볼일이 있어 춘천의 동편에 있는 한 마을을 지나친 적이 있었다. 동네 찻길 가에 작은 내가 흐르고 있었는데, 세상에 그 냇가를 가시박이 작은 틈도 없이 꽉 뒤덮은 것을 보고 아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엉망진창으로 무성하게 우거져있는 꼴이 끔찍할 정도였다.

‘토종식물의 저승사자’라 불리는 가시박 덩굴이 다른 푸나무를 옥죄고 뒤덮어 그늘을 지우기에 비실비실 맥도 못 추고 깡그리 고사되고 만다. 칡넝쿨이 텐트를 치듯 나무를 휘감고 있어 빛을 가린다. 지독한 놈이라고 말로 들었지만 그렇게 잔인한 줄 몰랐다.

가시박(Sicyos angulatus)은 미국과 캐나다동부가 원산지인 박과덩굴식물로 하천부지, 농수로주변, 강가 등지에 나는 일년생초본인 귀화(외래)식물이다. 흔히 우리나라 중부이남에서 자라고, 일본·유럽·호주 등지에도 분포한다.

잎은 어긋나고, 잎자루는 3~12㎝로 박처럼 길며, 부드러운 털(軟毛)이 밀생하고, 손바닥 모양으로 5~7갈래로 갈라진다. 줄기가 4~8m로 길게 뻗으며 자라는 모양이 전형적인 박과식물이다. 줄기(덩굴) 단면(斷面)은 다소 각이 지고, 곱슬곱슬하고 부드러운 털이 빽빽이 난다. 줄기마디마다 끝이 서너 갈래로 갈라지는 덩굴손(tendril)이 나며, 그것으로 다른 물체를 지지대 삼아 칭칭 감고 오른다. 그리고 ‘가시박’이란“박 닮은 것이 가시가 있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사진출처 : 픽사베이

가시박은 농가에서 수박, 오이 같은 박과식물의 접붙이기용 바탕나무(臺木)로 쓰기 위해 외국에서 들여온 것이 잘못 바깥으로 퍼져나간 것이다. 수박·참외·오이 등 과채류는 90% 이상이 열매모종을 박이나 가시박의 뿌리모종에 접붙이기를 한 모종이다.

접목이란 맛있고 수확량이 많은 열매모종과 영양분을 잘 흡수하고 병에 강한 뿌리모종을 각각 절단한 뒤 이어주는 것을 말한다. 오이나 수박씨를 심어서 난 싹을 그대로 기르면 뿌리와 줄기가 약해서 상품성 있는 수박이 달리기 힘들기 때문이다.

암수한그루(雌雄同株)로 7~10월에 잎겨드랑이에서 박꽃 같은 흰 꽃이 피며, 여러 종류의 호박벌이나 꿀벌, 파리들이 꽃가루를 옮긴다. 길이 1cm 정도인 둥글둥글한 열매 3~10개가 뭉쳐나 송이를 이루고, 열매에는 뾰족한 가시가 별사탕 모양으로 촘촘히 나며, 열매 속에는 씨앗이 1개씩 들었다. 가시박은 1990년경에 유입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강원도 철원과 경기 수원에서 처음 발견된 이후 강변을 따라 전국으로 급속히 확산되었다. 환경부에서 2009년에 생태교란종(生態攪亂種)으로 지정했을 만큼 악명을 떨치고 있는 성가신 녀석이다. 이들은 낙동강 등 4대강에서부터 시작하여 수도권까지 어마어마하고 무시무시한 속도로 강변을 점령해버렸다고 한다. 그리고 이웃나라 일본도 그렇고, 우리나라도 망나니 놈들을 제거하느라 무척 애를 쓰지만 역부족하다고 한다.

그리고 친친 얽히고 감긴 덩굴줄기와 잔뜩 난 가시에다 왕성한 번식력 때문에 가시박을 없애는데 어려움이 많다. 그리고 가시에 찔리거나 베이면 꽤 쓰라리다. 그러므로 가시박은 어릴 때부터 꾸준히 잡아야 하고, 해마다 뽑아버리는 길 밖에 없다. 애초엔 돼지풀이나 미국자리공 같은 외래종(귀화종)식물이나 황소개구리들도 창궐하시피하여 웬만한 토착생물을 밀어내면서 이 땅에서 적응하였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어엿한 우리나라 동식물로 대접하게 된다. 애당초부터 우리나라에 나서, 살아온 고유생물은 얼마 안 되고 대부분이 외래종(도래종)이 서서히 살아남게 되었던 것이다.

아무튼 자연(自然)이 너 이 땅에 살아도 좋다고 허락한 것이니 우린들 어쩌겠는가. 처음엔 낯설고, 크게 말썽을 피우지만 오랫동안 살면서 다른 동식물과 자연평형을 이루어 평화롭게 어울려 사는 날이 올 것을 바라마지 않는다.

이런 글을 읽다보면 우리나라에만 귀화식물들이 생태계를 파괴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일종의 피해망상증이다. 그러나 사실은 우리나라 동식물도 ‘침입종(invasive species)’으로 취급당하면서 다른 나라서 말썽을 피운다. 일본에서는 가물치가, 미국 산자락에는 칡이나 억새가, 강에는 붕어잉어가, 바다에는 미더덕이 문젯거리란다. 그리고 인디언들은 여린 가시박 잎을 나물로 먹었고, 줄기를 달여서 성병치료약으로 이용했다고 한다. 그리고 “독이 있는 곳에 약이 있다”고 고약한 가시박이 비알콜성간질환에 좋다는 것이 근래 우리나라에서 밝혀졌다 한다. 그래서 이 세상에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생물은 없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