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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렉시트와 트럼프 당선은 21세기 정치의 새로운 트렌드다
브렉시트와 트럼프 당선은 21세기 정치의 새로운 트렌드다
  • 교수신문
  • 승인 2019.12.03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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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새 책_엘리트가 버린 사람들 | 저자 데이비드 굿하트 | 원더박스 | 페이지 456

2016년 세계 정치사에는 이례적인 두 가지 사건이 있었다. 하나는 영국의 브렉시트 국민투표에서 찬성이 반대를 넘어서며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가 결정된 사건이고, 하나는 정치의 변방에 있었던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의 대통령이 된 사건이다. 그리고 그 두 사건을 해석하는 데 가장 빈번하게 쓰인 단어가 ‘포퓰리즘’이다. 그 배경에는 두 선택 모두 역사의 진보에 역행하는 선택이고, 이성을 가진 시민들이 차분히 결정하였다면 그런 선택을 내리지 않았을 거라는 시각이 깔려 있다. 

하지만 그로부터 4년 가까이 지나 2020년을 앞두고 있는 지금, 두 사건은 일시적인 현상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트렌드가 되어가고 있다. 브렉시트는 영국 의회의 난맥상 속에서 협상의 진전이 없는 상태로 의회의 무능함을 입증하고 있고, 도널드 트럼프는 좌충우돌하는 가운데에서도 높은 재선 가능성을 선보이고 있다. 유럽 각국에서는 기성 중도 좌우파 정당들이 고전을 면치 못하며 양극단에 위치한 대중주의적 정당들이 약진하고 있다. 한편으론 세계 곳곳에서 혐오와 불신의 정치가 확산되어가고 있다.

브렉시트나 트럼프 당선으로 표출된 현상을 그저 시대와 동떨어진 ‘비정상’이 돌출된 것이라고 치부해서는 앞으로 펼쳐질 정치 격변의 시기에 제대로 대응할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이 지금, 브렉시트와 트럼프 당선의 진짜 이유를 파헤친 역작 데이비드 굿하트의 『엘리트가 버린 사람들(원제: The Road to Somewhere)』을 읽어야 하는 이유다.

이 책에서 저자는 ‘섬웨어(Somewhere)’와 ‘애니웨어(Anywhere)’라는 틀로 영국 유권자를 구분하며, 브렉시트 등의 사건은 오랫동안 애니웨어가 지배해 온 정치 공론장에 섬웨어들이 반격을 가한 것이라고 분석한다. 그리고 본인은 이제 ‘변절한 애니웨어’로서 섬웨어의 생각과 삶을 애니웨어들에게 알리고 이를 바탕으로 정치의 영역에서 섬웨어와 애니웨어의 새로운 균형을 잡는 데 기여하겠다고 선언한다.

그렇다면 섬웨어와 애니웨어란 무엇인가? 애니웨어는 주로 학교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고, 대학 졸업 뒤에는 전문직에 종사하며 런던이나 외국에 산다. 이들은 오늘날 문화와 사회의 지배자다. 이들은 자유롭게 삶터를 옮기고 성취욕이 강하다. 능력주의를 신봉하며 변화에 개방적이다. 이들은 지구상 어느 곳(anywhere)에서도 살아갈 수 있는 경쟁력을 갖춘 이들이다.

반면 섬웨어는 지방에서 나고 자라 먹고사는 사람들로, 뿌리를 중시하고 급격한 변화에 불안을 느낀다. 괜찮은 일자리가 줄어든 탓에 점점 가난해지고 있는 저학력 백인 노동자가 다수이며 점점 연령대가 높아지고 있다. 이들은 종종 퇴물로 취급되며, 이들에 대한 반감은 모바일 기기 등을 통해 널리 확산되고 있다. 이들은 고향과 같은 특정한 어떤 곳(somewhere)을 떠나선 안정적인 삶을 담보할 수 없다.

최근 지역 간 이동이 급증했음에도 영국인 60퍼센트는 여전히 자신이 열네 살에 살던 지역에서 20마일이 넘지 않는 곳에 살고 있다. 저자는 여러 통계에 기반하여, 애니웨어는 영국 전체 인구의 대략 25퍼센트, 섬웨어는 50퍼센트를 차지하며, 그 사이 중간 계층이 존재한다고 설명한다. 지난 20~30여 년 이상의 기간 동안 쉼 없이 확산되어 온 EU 통합을 비롯한 세계화의 논리는 애니웨어에게는 새로운 기회이자 도전이었다. 반면 같은 기간 섬웨어의 삶은 점점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공론장에서 섬웨어의 목소리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애니웨어의 목소리가 곧 다수의 목소리처럼 느껴졌다.

저자는 “세계화 물결 속에 가장 큰 손실을 본 집단은 바로 부유한 국가 내 가난한 사람”(183쪽)이라고 말한다. 그것이 “표퓰리즘은 새로운 사회주의”(155쪽)라고 말하는 배경이다. 유럽 포퓰리즘 정당 대부분의 핵심 지지층이 노동 계층이라는 점, 그리고 국가주의와 보호무역주의 입장에서 EU로 상징되는 자유주의 흐름에 맞선다는 점 등에 주목한다. 그는 “포퓰리즘 운동은, 사회주의 몰락 후 그 어느 때보다 풍요로운 세상이 됐지만 상대적으로 그 수혜를 누리지 못하는 이들이 기댄 정치 행위였다. 성공한 사람, 인지 능력이 뛰어난 엘리트를 끌어내리기 위해 선택한 정치가 바로 포퓰리즘 운동이었다.”(118~119쪽)라고 평가한다. 극우 이념으로 무장된 포퓰리스트 지도자들이 ‘매우 추악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포퓰리즘 그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다는 것이 저자의 입장이다.

저자는 애니웨어와 섬웨어를 다시 중도적인 다수와 극단적인 소수로 나눈다. 애니웨어의 극단에는 ‘모든 인류의 (도덕적) 평등’을 강조하는 (그래서 자국민 우선주의를 반대하는) ‘세계 시민’이 있다. 애니웨어의 다수는 능력주의에 기반한 ‘진보적 개인주의’ 그룹이다. 이들은 스스로를 관대하며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은 진보적 인물이라고 말하지만, 이들 세계관의 핵심 요소는 결국 능력이 뛰어난 사람에게 유리한 가치다. 이는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소득이 적거나 능력이 부족한 하위 계층에 불리하게 작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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