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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리뷰: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석학초청강좌
쟁점리뷰: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석학초청강좌
  • 이철우 성균관대
  • 승인 2003.09.1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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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욱의 역사사회학에 대해

 

이철우 / 성균관대, 법사회학


성균관대학교 동아시아학술원이 주최하는 '미국 동아시아학계 석학 초청 집중강좌'에 초청된 6인의 학자 중 신기욱은 미국학계에서 성공한 대표적인 한국인 사회과학자라는 점과 일제시대사에 대한 그의 연구가 가지는 반향 때문에 특히 비상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9월 4일 “사회학과 한국학 사이에서”라는 제목으로 행한 강연에서 그는 미국 사회학계에서 한국을 연구하는 특수한 위치에서 ‘주류’ 사회학에 대한 대안으로 역사사회학을 택하게 된 자신의 소회를 밝혔다. 그는 국내의 역사사회학 연구가 사회사와 큰 차이를 보이지 않고 있음을 지적하고, 역사사회학은 사실 탐구에 더하여 개념화와 이론화를 추구해야 함을 역설했다. 신기욱은 1996년에 출간한 '식민지 조선의 농민저항과 사회변동'(Peasant Protest and Social Change in Colonial Korea), 1999년에 출간된 공동편저 '한국의 식민지 근대성'(Colonial Modernity in Korea), 그리고 한국의 민족주의 등에 대한 근래의 연구를 통해 자신의 역사사회학적 기획을 야심적으로 추진해왔다. 9월 5일 “비교사적 관점에서 본 식민지 근대성”을 주제로 한 세 시간의 강연은 한국의 청중이 그의 기획을 소상히 듣고 논평하는 흔치 않은 기회였다.

일제하 한국사회의 경험을 ‘식민지 근대성’으로 개념화, 이론화하려는 신기욱의 연구는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첫째, 그는 독재와 민주주의의 여러 경로를 밝히고자 한 배링턴 무어(Barrington Moore)의 역사사회학이 인도의 사례를 다루었음에도 불구하고 식민지적 경로를 소홀히 하였다고 비판하면서 식민지하의 지배와 저항을 근대에의 이행의 중요한 경로로 설정한다. 둘째, 그는 일제하의 경험을 식민지성과 근대성의 중첩으로 설명한다. 그는 일제 지배를 수탈이냐 개발이냐의 이분법적 논의구도에서 평가하는 것을 지양하고 억압과 헤게머니, 수탈과 개발의 복잡하고 다양한 양상을 포착할 것을 제안한다. 아울러 일제하 한국사회가 가지게 된 근대의 모습들이 일제에 의해 일방적으로 부과된 것이 아닌, 일제의 지배와 그에 대한 한국인의 대응의 복합적인 상호작용 속에서 형성되었음에 주목한다. 셋째, 신기욱은 해방 후 한국사회에 특유한 것으로 보이는 현상들이 일제시대에 기원을 두고 있음을 강조함으로써 해방 전과 후의 역사 사이의 연속성을 부각시킨다. 그는 남북한에서 공히 번성한 종족적 민족주의는 일본의 민족관념의 영향을 받았음과 동시에 일제에 대항하는 과정에서 강화되었다는 점에서 식민지적 산물이라고 본다. 해방 후의 농지개혁, 그리고 1960년대 이후 남한의 권위주의가 취한 전략들은 식민지시대에 추진된 농촌사회의 조합주의적 재편성에 기원내지는 배경을 두었다고 본다.

강연에 이은 질문 가운데에는 신기욱의 견해가 경제사 일각에서 제기되는 식민지근대화론에 비해 무엇이 새로운 것인가라는 물음이 포함되었다. 신기욱은 식민지근대화론이 수탈과 개발의 이분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하였지만, 사실 식민지근대화론 역시 그러한 이분법을 극복하자는 취지에 있어서는 다름이 없다. 차이가 있다면 식민지근대화론이 일제의 정책과 성과에 초점을 두고 있음에 비해 신기욱은 지배에 대한 저항과 인민의 능동성(agency)을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한편 대표적인 역사사회학적 연구들이 정치체제, 경제구조, 혁명 등 특정 영역에서의 변동을 비교사적으로 고찰하고 있음에 비해 신기욱이 보여주고자 하는 ‘이행’의 역사가 무엇의 역사인지가 분명치 않다는 지적도 있었다. 이는 내포와 외연이 불분명한 ‘근대성’이라는 용어로써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이며, ‘식민지적’이라는 형용사로써 이민족 지배라는 상황 이상의 무엇을 말할 수 있는가라는 또 다른 의문과도 무관하지 않다. 그 날의 강연에서는 거론되지 않았으나 신기욱의 작업에 대해서는 제국주의가 실종된 식민지 연구라는 비판이 있다.

필자는 일제 지배의 억압적 성격만을 환기시키는 역사서술을 지양하자는 신기욱의 제안에 공감한다. 그러나 억압에 대비되는 헤게머니의 양상들은 많은 경우 억압 속에, 억압을 조건으로 존재한다는 점이 재확인될 필요가 있다. 억압과 헤게머니, 수탈과 개발, 저항과 순응, 친일과 반일의 이분법을 넘어서는 것은 하나의 정치적 관점을 단순히 누그러뜨리거나 다른 관점으로 대체하는 것이 아닌, 권력과 지배에 대한 정교한 개념화에 기초해야 한다는 것이 신기욱의 역사사회학으로부터 필자가 도출하고 싶은 메시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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