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진 교수의 '제국' 서평에 대한 비판
정성진 교수의 '제국' 서평에 대한 비판
  • 안병진 경희대
  • 승인 2003.09.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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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턴과 부시의 차이에 주목해야...'급진성' 수용못한 훈고학

안병진 / 경희대 시민사회연구소, 정치학

필자는 미국에 거주하던 2000년 당시 출간된 하트와 네그리의 '제국'의 학제간의 경계를 뛰어넘는 접근방법, 21세기에 대한 통찰들에 깊은 충격을 받은 바 있다. 미국정치에 대한 협소한 박사논문 주제를 가지고 씨름하던 본인에게 이는 새로운 지평선과도 같았다. 그 이후 그들의 책이 전세계 지식인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본인은 한국 지식인들의 반응이 무척 궁금했다.


하지만 최근 원고를 요청 받으면서 접하게 된 정성진 교수의 서평은 훈고학적이라는 의미에서 본인에게는 다소간에 실망감이 들었다. 한국의 대표적인 뛰어난 맑스주의 이론가 중의 하나인 정 교수의 서평은 하트와 네그리의 '제국'이 기존 맑스주의 이론으로부터 일탈하는 것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미국 정치논리에 대한 분석 부족해
그는 하트와 네그리가 현 국면(9·11 테러 이전)의 세계를 '제국'이라 명명하고 이는 과거의 제국주의를 넘어서서 "중심적  헤게모니가 없는 네트워크 권력으로 보고 있는 것은 맑스주의 제국주의론에서의 일탈"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최근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계기로 정성진 교수뿐 아니라 엠마뉴엘 토드 같은 유럽의 비판적 지성들 또한 미국의 일관된 제국주의적 행태를 지적하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비록 하트와 네그리 또한 9·11 테러 이후 미국을 제국으로부터 제국주의로 타락하고 있는 경향이라고 비판한다는 점에서는 비슷한 현실인식을 가지지만 이들은 정 교수와 달리 과거 클린턴 정부의 제국적 행태와 현재 부시의 제국주의적 행태의 다른 작동방식을 포착하게 한다는 점에서 훨씬 더 분석적으로 유용하다.


예를 들어 클린턴 행정부 기간동안의 인간주의적 개입에 얽힌 내적 동학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정 교수와 같은 경제주의적 맑스주의 관점이 보는 것과 달리 석유 자본 등의 음모와 이에 포획된 행정부의 작품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오히려 클린턴 행정부는 개입의 국내정치적 부담 때문에 개입을 최대한 회피하는 정치적 논리와 개입의 도덕적 필요성이라는 당위 사이에서 치열하게 고민했다. 또한 과거 제국주의적 전쟁과 사뭇 다른 인간주의적 전쟁의 논리는 많은 미국의 진보적 지식인을 혼란에 몰아 넣었다. 클린턴 행정부 시절 전쟁의 수행과정 측면에서도 어제의 적이던 러시아가 나토와 공통으로 군사작전을 수행하고 유럽과 미국간의 협력이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사회과학자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이런 과거의 이론틀로 설명할 수 없는 새로운 현실들을 적실성 있게 설명해 낼 수 있는 이론이며 이 점에서 하트와 네그리의 이론적 기여는 매우 크다. 잿빛 이론을 중시하는 학자와 달리 이윤을 찾아 냉정하게 현실을 보는 빌게이츠나 칼피오르나 같은 기업가들이나 전직 대통령 클린턴의 최근 프로젝트는 하트와 네그리의 적실성을 간접적으로 확인시켜준다. 이들의 공통 화두는 '외부가 없는 전지구적 사회의 통합'이며 이를 위해서 오늘도 빌게이츠는 인도에 천문학적 자금을 뿌리고 있다.

"촘스키류의 반미주의야말로 비판의 대상"
반면에 정 교수는 레닌의 제국주의론을 중시하며 아직도 제국주의간의 전쟁경향이 존재하며 모순이 응축된 '가장 약한 고리'가 존재한다고 강변한다. 하지만 단적인 예로 유럽이 통합돼 나가며 프랑스인이 독일에서 쇼핑을 하고 독일 사돈을 맺는 현실에서 제국주의적 전쟁의 현실성 테제가 가지는 의미는 상당히 퇴색할 수밖에 없다. 또한 '가장 약한 고리'의 예로 정 교수가 든 9·11 대미테러는 약한 고리가 아니라 과거 사르트르의 표현을 빌린다면 '가장 견고한 체제에 대한 가장 무모한 도전'일 뿐이다.


하트와 네그리의 주장 중 진보적 지식인을 가장 충격에 몰아넣은 것은 소위 세계화의 진보적 측면이며 세계화에 반대할 것이 아니라 세계화를 가속화시키자는 도발적 주장이다. 하지만 하트와 네그리의 문제의식은 세계화 자체의 동력을 단지 자본의 음모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더 근원적으로는 대중적 투쟁으로 본다는 점에서 다르다. 오히려 이들의 관심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라는 족쇄에 포획된 대중의 잠재력을 세계화의 가속화를 통해 전면화하자는 발상의 전환을 담고 있다. 그런 점에서 그들이 주장하는 각 주권국가나 자본의 경계선에 제한되지 않는 '전지구적 시민권' 요구는 개량주의적이라는 정 교수의 비판과 달리 매우 급진적이고 도발적 주장이다.


이렇듯 하트와 네그리의 주장을 매우 보수주의적이라고 생각하는 정 교수는 이들의 제국론이 반미주의에 대해 비판적인 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다. 하지만 한국에 널리 퍼진 촘스키류의 반미주의야 말로 자신들의 의도와는 정반대로 현재 세계의 모습을 과학적으로 이해하고 이에 건설적인 비판을 수행하는 것을 가로막는다고 할 수 있다. 많은 내용이 시적 은유로 모호하게 쓰여지고 인과적 관계가 불명료한 '제국론'의 한계에 대해서는 이런 훈고학적 비판보다는 21세기 성격에 대한 좀더 실사구시적 비판이 요구된다. 아마 그 하나의 방법은 클린턴과 부시 체제의 연속성과 단절을 경제, 정치의 연관성 속에서 깊이 있게 파헤치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필자소개
필자는 미국의 뉴스쿨에서 '1984년과 1996년 대통령 선거에서 가치소구의 동원'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선거와 정치커뮤니케이션이 주요 관심영역이다. 최근 '역사비평' 가을호에 '신보수주의 집권의 아이러니'란 논문을 발표하는 등 미국 권력장의 역사와 현실에 세밀히 접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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