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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속의 사회학(04) 정지은의 '교실수면 탐구생활'
세속의 사회학(04) 정지은의 '교실수면 탐구생활'
  • 교수신문
  • 승인 2019.12.01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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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 선생님은 하지 않은 말, "얘들아 왜 자니?"

세상일에 대해 꽤 많이 알고 있는 듯 보여도 우리의 경험은 각자의 경험 박스에 의해 제한된다. 직접 경험했던 세상일이라 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과거에 대한 기억은 재구성된다. 심지어 왜곡될 수도 있다. 경험 모두가 기억으로 살아남는 게 아니라, 강렬한 기억만이 재구성을 통과해 살아남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학생이었던 시절을 기억해보려 하면, 곧 한계에 부딪힌다. 기억해내고 싶은 고등학교 시절은 일상적 모습이지만, 기억해내려고 할수록 머릿속에선 불쾌하고 억울한 감정을 유발했던 강렬한 에피소드만 떠오른다.

가장 생생하게 남아 있는 고등학교 시절의 기억은 그렇다. 아마도 고등학교 2학년이었을 것이다. 나도 그랬고, 대부분의 아이들은 잠이 부족했다. 점심시간 직후의 오후 수업엔 아무리 노력해도 나도 모르는 사이 눈꺼풀이 중력의 법칙을 증명이라도 하듯 내려온다. 때론 침도 흘린다. 나도 그랬고 많은 아이가 그랬다. 아마도 화학시간이었을 것이다. 화학교사는 수업시간에 조는 학생이 못마땅했을 것이다. 가르치는 입장에서 그 못마땅함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얼마나 못마땅했는지는 나로서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 화학교사가 조는 학생을 응대하는 방식을 떠올려보면, 그 교사는 견딜 수 없을 정도로 학생들이 조는 게 싫었나보다. 화학시간에 졸다가 교사에게 발각되면, 발각된 학생은 의자에서 일어나야 했다. 교사는 바지를 내리라고 명령했다. 바지를 내리면 팬티차림이 된다. 교사는 그게 모욕일 수도 있음을 상관하지 않았다. 어떤 날은 바지를 내리게 하는 것으로도 부족했는지, 바지를 내리게 하고 팬티차림의 우리에게 물을 쏟아부었다. 

지금으로써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교사의 행동이지만, 그런 엽기적인 일들이 당시엔 적지 않게 일어났다. 학생도 그것을 문제 삼지 않았고, 문제 삼지 않았기에 집에 돌아가 부모에게 교사의 그런 처사에 대해 말하지도 않았고, 학부모는 교사의 그런 행태에 대해 알고 있지 않으니 학교에 항의하지 않았고, 어떤 교사가 그런 짓을 해도 문제 삼는 다른 교사도 없었다. 그땐 그게 인격살인인 줄 몰랐다. 지금의 고등학교도 그럴까? 그럴 리 없다. 따라서 나의 고등학교 시절의 경험으로 현재의 고등학교 학생을 평가할 수는 없다. 나도 한때는 고등학생이었지만 현재의 고등학생에 대해서는 알고 있지 못하다고 말하는 게 정확하다. 

길에서 자주 고등학생 무리와 마주친다. 늘 궁금하다. 왜 화장 안 해도 좋을 나이인데 화장으로 가길 주름살 하나 없는 나이인데 기필코 화장을 왜 할까? 한때는 노스페이스 패딩을 입고 다니더니만 왜 겨울만 되면 까마귀 떼처럼 검은색 롱 패딩을 입고 다닐까? 이들이 사용하는 언어도 이해할 수 없다. 이른바 급식체를 접하면 그들과 나는 과연 동시대인이라고 말해도 괜찮을까 싶을 정도로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한다. 그들이 정말 궁금하지만, 그들의 내부로 들어가지도 못하고 예전의 나의 경험으로 현재의 고등학생을 들여다볼 수 없는 나에게 한 책이 등장했다. 현직 서울의 공립 고등학교 국어교사 정지은 선생님이 그리고 쓴 날 것 그대로의 고등학교 풍경이다. 

학교 드라마에 등장하는 고등학교는 현실에 없다. 교사는 현실 속의 날 것 그대로의 고등학생과 만나는 교사이다. 고등학교 밖의 사람들이 고등학교에 있기를 기대하거나 있으리라고 추정하는 고등학생이 그곳에 있지 않다. 정지은 선생님은 미디어를 통해 재현되지 않기에, 우리가 없다고 생각하는 고등학생을 이 책에 담았다. 학교에서 자는 고등학생들이 바로 그들이다. 학교에서 자는 이유는 다양하다. 그리고 자는 모습도 다양하다. 잘 묻지 않았던 질문이다. 다들 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으리라 믿고 있기에, 혹은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묻지 않았다. “왜 자는지?” 

정지은 교사는 나의 한때의 화학 교사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잠을 대한다. 잠을 자는 아이들을 모습에서 정지은 교사는 혹 고등학생이라는 역할에 가려 발견되지 않았던 각각의 개인성을 발견한다. 자는 아이들을 관찰하면서 아이들은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자기만의 포즈로 자기만의 잠을 자고 있음을 정지은 교사는 발견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자고 있는 청소년만이 주는 특유의 미감이 있다. 그건 어린이나 아기가 자는 모습과는 또 다른 종류의 독특한 아름다움이다.” 교실에서 잠을 자는 아이들을 관찰하고 그 모습을 그림으로 그리고 글로 표현한 정지은 교사의 안내로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실제로 존재하는 리얼 고등학교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 존재하고 있음에도 없다고 간주되었던 그 세계로. -끝-

노명우 아주대 사회학과 교수, 니은서점 마스터 북텐더
노명우 아주대 사회학과 교수
니은서점 마스터 북텐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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