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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의 신경향 : 인터넷 철학의 주요학자와 개념들
연구의 신경향 : 인터넷 철학의 주요학자와 개념들
  • 강성민 기자
  • 승인 2003.09.1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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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지성에서 코드까지...가상공간의 자율윤리 강조

버츄얼 스페이스가 리얼 스페이스를 앞지르는 요즘 인터넷에 대한 철학적 논의들도 늘어가고 있다. 대표적인 인터넷 철학자로 우리는 피에르 레비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인터넷에 대한 그의 철학적 주저들이 6권이나 우리에게 번역 소개돼 있다. 최근에는 그레이엄 고든 에버딘대 흠정교수의 '인터넷 철학'(동문선 刊)이란 책도 나왔다. 이들이 주창되는 새로운 철학용어들은 기존의 아날로그적 사유와 패러다임 차원에서 부딪치며 우리의 존재적 변모를 설명하려 한다. 주요 철학자별로 논의 영역과 용어들을 살펴보자.

▷피에르 레비(퀘백대 커뮤니케이션과 교수)
집단지성(Intelligence Collective) : 피에르 레비는 웹으로 연결된 새로운 활동공간에 대해 가장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사유를 정열적으로 펼치는 대표적인 학자다. '집단지성은 그의 핵심적 용어로 "어디에서든 분포하며, 지속적으로 가치 부여되고, 실시간으로 조정되며, 역량의 실제적 동원에 이르는 지성을 말하며, 이로써 긍정적인 역할을 촉발할 수 있는 새로운 이성"이다. 레비는 이런 집단지성이 지향하는 공간/가치를 '누스페어'(noosphere)라고 말한다. 누(noo, 정신)와 스페어(sphere)의 합성어인데 "인간의 정신과 의식이 한층 더 고양, 발현되는 영성적 교류의 장"을 의미한다.

▷고든 그레이엄(에버딘대 도덕철학 흠정교수)
가상현실(virtual reality) : 요즘 들어 가상현실을 실재하는 현실의 한 종류로 규정한 뒤 경험의  한 양식으로서 다루려는 경향이 높아지고 있다. 가상현실에서의 경험은 픽션의 경험을 훨씬 앞지르고 실재의 경험과 거의 유사하며, 상상력을 통해 실재 경험을 능가할 수도 있다는 게 주요 논의 흐름이다. 그리고 가상성은 역동적인 힘으로 존재하나 구체적으로 실현되지 않은 잠재적 현실을 의미한다는 적극적 해석도 있다. 가상현실 논의는 요즘 가상공동체 논의로 확산된다. 하워드 라인골드의 '가상공동체'는 이 방면의 대표적 저서다. 온라인 커뮤니티 뿐 아니라, 기업체에서 제공하는 테크노빌리지 등을 통해 인터넷 교류가 확대되고, 여기에서 발생하는 사회성에 대한 탐구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로라 J. 구락(미네소타대 수사학과 교수)
사이버 리터러시(cyberliteracy) : 사이버리터러시는 사이버공간에서 보이는 것들 가운데 허구와 진실을 가려낼 수 있는 능력, 정당한 논쟁과 극단주의를 간파할 수 있는 온라인 커뮤니케이션 능력, 비판적이고 적극적인 독해력 등을 의미한다. 사이버리터러시는 단지 인터넷을 서핑하고 버튼 몇 개를 클릭할 줄 아는 것 이상을 의미한다. 사이버 기술 뒤에 있는 힘이 어떻게 우리의 사회공간을 변화시키는가에 주의를 기울임으로써 사이버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고민하는 태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리차드 스피넬로(보스턴대 윤리학 교수)
사이버윤리(Cyber-Ethics) : 사이버 공간이 유토피아가 되기 위해서는 자율적인 자기 규제가 바람직하다는 전제 아래 펼치는 사이버 공간에서의 도덕과 법에 관한 담론. 존 롤스의 정의론, 프랑스 폴 리쾨르 등의 사회철학을 사이버 공간과 맞게 비판 흡수하는 논의들이 주류다. 스피넬로 교수는 표현의 자유, 지적 재산권, 프라이버시 그리고 보안이라는 4개의 주요 논제들을 중심으로 사이버 공간의 윤리 문제를 분석한다.

▷로렌스 레식(스탠퍼드대 법학 교수)
코드(code) : 사이버공간은 현실 공간과 다르므로 현실 공간에 존재하는 규범과는 다른 별도의 규범 체계가 필요하다는 필요성에서 개발된 용어다. 레식 교수는 '코드―사이버 공간의 법이론'(나남 刊)에서 "코드는 네트워크의 연결과 프로그램의 사용방식을 결정하는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의 기술적 구조를 의미하며 코드가 바로 사이버공간의 법"이라고 주장한다. 기술결정자들이 암호를 통해 차단하면 정보에 대한 접근은 원천봉쇄되며, 사람들은 지배받을 수밖에 없다는 제레미 리프킨의 논지와도 통한다. 반대로 "코드가 노출될수록 사이버공간에 대한 정부의 통제가 힘들어지기 때문에 코드는 권력에 대한 견제수단도 된다"라며 자율적 조정가능성을 강조한다.

▷바를로우(전자프론티어재단 책임자)
사이버-아나키즘(Cyber-anarchism) : 인터넷 실천철학자 바를로우가 사이버스페이스 독립선언문에서 개진한 용어로, 법률 없이도 사회가 어느 정도 잘 굴러갈 수 있다는 사이버 평등주의다. 아직 운동적 차원의 용어이지만 학술적 용어로 본격 등장할 채비를 하고 있다. 국내에도 사이버아나키스트가 많은데 카피-레프트(Copy-left)운동, 오픈소스(Open-source)운동의 이념이 바로 이것이다. 이는 정보공유를 통한 인터넷 평등 실현을 위한 공동체운동으로 발전할 가능성도 있다.

고든 교수에 따르면 인터넷철학은 크게 기술애호주의자들과 네오러다이트족들의 대립의 양상을 띠고 있다. "네오러다이트는 컴퓨터와 인터넷이 진실로 이익을 가져다주는지 의심하는 것"으로 만족한다. 반면 기술애호자들은 "기술 혁신이 모든 불행을 치료할 풍요의 뿔"(닐 포스트먼)이라는 환상에 빠져있다. 인터넷 철학의 역할은 바로 이 두 극단을 중간지점에서 만날 수 있게 모색중이다.
강성민 기자 smka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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