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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리뷰 : 『동양철학과 한의학』(김교빈 외 지음 | 아카넷 刊)
주간리뷰 : 『동양철학과 한의학』(김교빈 외 지음 | 아카넷 刊)
  • 이철승 성균관대
  • 승인 2003.09.1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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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학문의 오래된 해후

이철승 / 성균관대·동양철학

동양철학과 한의학은 지난 수천 년 동안 한국과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사회에서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이 두 학문은 금실 좋은 부부처럼 지내던 때도 있었고, 이혼한 부부처럼 각자의 살림을 꾸린 때도 있었다.

학계에서는 일반적으로 이 두 학문의 뿌리가 같음에도 불구하고 각자의 사정에 의해 오랜 기간 헤어져 지낸 것으로 평가한다. 이에 적지 않은 학자들이 이와 같은 사정을 안타깝게 여겨 이들을 재결합시키고자 하였으나, 이미 오랜 기간 서로 다른 방식으로 지내는데 익숙해졌기에 이 또한 쉽지 않았다. 특히 아편 전쟁 이후 과학 기술의 힘을 입은 서구의 문명이 동아시아에 영향력을 강화하자 양 진영은 위기를 인식하면서도 재결합을 통한 극복보다 각자의 처지에서 생존권을 확보하고자 했다.

그러나 20세기 후반기에 근대 이성의 독주에 대한 반성이 확대되면서 동양학 전반에 대한 관심의 증가와 함께 동양철학과 한의학에 대한 관심도 증가했다. 이와 같은 사조의 흐름 속에서 각각 동양철학과 한의학을 연구해오던 이 책의 저자들은 약 10여 년 전부터 동양철학과 한의학의 관계에 대해 공동으로 연구하기 시작했다. 이 책은 저자들이 학제간 벽을 극복하면서 연구한 여러 성과 가운데 하나다.

"그 동안 동양철학 연구자들은 형이상학적 논의에만 몰두해왔고, 한의학 연구자들은 임상을 통한 경험차원에 매몰돼 왔다"(본문 7쪽에서)

저자들은 이 책에서 동양철학과 한의학의 뿌리가 같다고 지적하면서, 역사 과정에서 동양철학은 구체성을 떠나 추상적인 부분으로 나아감으로 말미암아 공허해진 면이 있다고 말한다. 한의학은 경험적인 임상 실험에 치중함으로써 이론 근거를 밝히는 면에 소홀한 점이 있음을 지적하면서, 이 둘을 재결합시켜야 할 것으로 여겼다. 특히 저자들은 한의학과 동양철학이 깊게 연관돼 있음을 증명하기 위해 많은 전거를 제시한다. 그리고 저자들은 동양철학과 한의학을 단지 요소 대 요소의 형식주의적인 결합이 아니라, 양 학문의 실질적인 내용을 변증법적으로 결합시켜야 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이와 같은 연구 방법은 서로 다른 영역의 학문을 연계시킬 때 주의해야 할 점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산적인 의미를 제공해 준다. 이 책은 확실히 동양철학과 한의학이 왜 다시 결합해야 하는지, 방법의 합리성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설득력 있게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저자들은 한의학과 동양철학의 관계에 대한 냉소주의적 관점이나 신비주의적 관점의 허구성을 날카롭게 지적했을 뿐만 아니라, 동양학 전반에 관한 다양한 관점에 대해 합리적인 분석을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은 저자들 사이에 나타나는 개념 사용의 혼선 문제에 대한 해결과 전통 사상의 현대화에 대한 실질적인 방안에 관해 더욱 설득력 있는 후속 연구를 숙제로 남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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