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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규의 아나키스트열전8 - 르네상스의 아나키스트 문학인
박홍규의 아나키스트열전8 - 르네상스의 아나키스트 문학인
  • 교수신문
  • 승인 2019.11.25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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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블레
프레포지에 같은 프랑스인은 르네상스의 아나키스트로 같은 프랑스인인 라블레를 유일하게 언급하지만, 이러한 관점은 예외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고, 아나키즘 역사에서 르네상스인이 거론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프레포지에에 의하면 라블레의 <가르강튀아>에 나오는 텔렘 수도원을 세운 장 데 앙토뫼르가 “나는 공직도 정부도 원하지 않는다. 나 자신을 다스리는 방법도 모르는데, 내가 어찌 다른 사람들을 다스릴 수 있겠는가”라고 말했고(52장) 그 수도원 사람들은 “법, 명령, 규칙이 아니라 자신들의 자유의지와 쾌락에 따라서 산다. 그들이 원하는 규칙은 바로 ‘원하는 것을 행하라’는 것이다.”(57장)라고 한 점에서 아나키즘이라고 볼 여지가 있지만, 당시의 군주제를 지지하고 국가주의를 옹호한 점에서는 그렇지 못하다. 

유토피아(1518), 암브로시우스 홀바인의 목판화
유토피아(1518),
암브로시우스 홀바인의 목판화

르네상스 사상가들은 현실 정치에 실망해 토마스 모어처럼 유토피아를 추구했으나, 라블레는 그런 유토피아를 추구하지 않았으며 모어와는 달리 당시의 군주제를 긍정하되, 이상적 정치를 추구했다. 라블레의 군주는 플라톤의 철학자 군주와 유사했다. 에라스무스가 전쟁을 악으로 보고 어떤 희생이 따르더라도 피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처럼 라블레도 철저한 평화주의를 견지했다. 따라서 정복전쟁은 있을 수 없으며 오직 자위전쟁만 허용된다고 했다. 문제는 식민지 개척인데, 라블레는 그것을 부정하지는 않으나 당시 이미 시작된 캐나다 개척에 대해서는 인도적 통치를 주장했다.

라블레의 작품에는 르네상스적 주제들이 모두 등장한다. 그것은 중세의 부정인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강조, 생명에의 애착, 육체의 복권, 진보에 대한 믿음, 그리고 속세의 문학과 예술 및 과학에 대한 찬양이다. 그는 당대의 학문·교육·결혼·사법·정치·전쟁 등을 비판하며, 인간이 자연으로부터 받은 모든 것을 향유하자고 주장했다. 즉 인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관용과 여유, 삶을 전적으로 포용하는 낙관과 환희를 노래한 것이다. 

특히 라블레의 작품에는 중세 금욕주의에 대한 반발로 육체적 이미지, 먹고 마심, 배설, 성욕 등의 자연적 기능이 그 어떤 르네상스 예술가의 작품에서보다 노골적으로 묘사된다. 그래서 라블레의 작품에는 일찍부터 외설이라는 오명이 씌워졌다. 예컨대 볼테르는 라블레가 술에 완전히 취한 상태에서만 글을 썼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라블레 생존 시에는 그런 외설은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았고, 그의 책이 금서가 된 이유도 아니었다. 이는 중세 이래 당시까지의 전통이었으며, 기아와 금욕의 현실을 부정하는 중요한 창작 방식이자 소재이기도 했다. 

라블레의 작품에는 여성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예외적으로 등장하는 여성도 혐오스럽게 그려져 페미니스트라면 당장 집어던지고 싶어질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반페미니즘은 당시 사회에서는 오히려 당연한 것이었다. 도리어 라블레가 연애결혼을 옹호하고 다산의 부부관계를 찬양한 점은 적극적으로 평가해야 할 대목이다.

라블레는 평생 가톨릭 수도사로 살았다. 에라스무스 같은 당시의 휴머니스트처럼 라블레도 교회의 개혁과 신앙의 순화를 주장했다. 그러나 라블레의 종교관은 에라스무스보다 더 과격했다. 그래서 아나톨 프랑스는 라블레를 회의론자로 보았다. 그를 종교의 해방을 추구한 합리주의자, 무신론자로 본 사람도 있다. 허나 당시로서는 그런 주장 자체가 불가능했다는 루시앙 페브르의 지적(그의 방대한 책도 우리말로 번역되었다) 이래 라블레는 복음주의자였다고 보는 견해가 우세하다. 이를 바흐친은 부당하다고 비판하지만, 나는 동의할 수 없다.

라 보에티

라 보에티ⓒTommy-Boy/wikipedia | CC BY-SA 4.0
라 보에티
ⓒTommy-Boy/wikipedia | CC BY-SA 4.0

최초의 아나키즘 책이라고 할 수 있는 에티엔느 라 보에티(Etienne or Estienne de La Boetie, 1530~1563)의 <자발적 예속>은 1547년 그가 17세 때 오를레앙 대학교를 졸업할 무렵 졸업논문 같은 것으로 쓰인 것이나, 1563년 그가 33세로 죽기까지 출판되지 못했다. 그 책을 쓴 동기는 라 보에티가 대학교에 갓 입학했을 때 귀옌 지방에서 일어난 폭동을 잔혹하게 진압하는 전제군주를 보면서 절대권력의 정당성에 의문을 품기 시작한 것에 있었다. 

그의 친구인 몽테뉴는 자신의 <에세>에 친구의 글을 실을 예정이었으나, 이미 칼빈 파에 의해 이용되었기 때문에 실을 수 없었고, 결국 저자 사후 11년이 지난 1574년에야 익명으로 겨우 출판되었다. 그 글은 2세기가 지난 뒤 프랑스 혁명의 도화선이 되었고, 절대권력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복종할 때 그것을 거부하고 인간의 존엄을 지키고자 노력한 사람들의 지주가 되었다.

라 보에티에 의하면 인간은 원래 자유롭고 평등하지만, 그것을 잊지 않고 스스로 지켜낼 때에만 인간에게 부여된 가장 고귀한 가치를 비로소 누릴 수 있다. “우리 모두가 태어나면서부터 자유로운 존재이며, 그 점에서 우리 모두가 평등하다는 사실을 어떻게 단 한 순간이라도 의심할 수 있겠으며, 우리 모두를 하나의 무리로 만들어준 자연이 그 무리 가운데서 누군가를 노예로 예정해 두었다고 누가 감히 생각할 수 있겠는가?” “자유는 자연의 길이고, 내가 보기에 우리는 자유를 지니고 태어났을 뿐만 아니라, 자유를 지키려는 본성을 지니고 있다.” “자연은 모든 부분에서 우리가 완전히 하나이길 바랐으니, 우리가 천부적으로 자유인이라는 사실을 의심할 수 없다. 우리는 모두 서로의 동등한 동반자이며, 우리 중 그 누구도 굴종의 속성을 타고난 사람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인간은 자신이 본래 자유롭고 평등하다는 사실을 잊었기에 전제정치가 대중적 동의 위에 성립한다. “독재자에게는 세 가지 유형이 있다.  민중의 선출로 권력을 부여받아 나라를 다스리는 자,  무력으로 나라를 차지해 통치하는 자, 권력을 상속받아 군림하는 자.” “독재자를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그는 혼자이고, 사랑받을 만한 어떤 장점도 지니지 않았다.  그는 민중들에게 비인간적이고 잔혹할 뿐이다.” “폭군들은 많이 빼앗으면 빼앗을수록 더 많은 것을 바라게 된다. 무너뜨리고 넘어뜨리는 게 많으면 많을수록 그들은 더 많이 낭비하고 더 많이 처먹는다. 그러면 그들은 점점 더 강성해져서 모든 것을 파괴하고 무너뜨릴 힘을 갖게 된다. 그러나 그들에게 아무 것도 바치지 않고, 아무도 그들에게 복종하지 않는다면, 굳이 그들과 맞서 싸워 쓰러뜨리려 하지 않아도 그들은 벌거벗고 파멸할 것이다.”

라 보에티는 사람들이 독재자에게 저항하지 않는다고 해도 단지 견뎌내기를 멈추기만 해도 독재자는 그들에게 어떤 해악도 끼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자기 자신의 목숨을 내어주는 것도 인민이며, 확실하게 지키는 것도 바로 인민이기 때문에 인민들은 봉사하기를 거부하는 것만으로도 속박의 사슬을 끊을 수 있다. 종속의 책임도 인민에게 있고, 스스로의 목줄을 끊는 것도 바로 인민이다. 인민들에게는 속박과 자유의 선택권이 주어져 있고, 자유와 멍에를 뒤집어쓰면서 온갖 불행을 끌어안을 것이냐 아니면 정말로 자유를 찾아 나설 것인가에 대한 선택은 바로 인민의 몫이다.”

“가난하고 비천한 대중이여! 제정신을 잃어버린 대중이여! 국가는 여러분에게 고통을 철    저하게 강요하면서도 여러분의 복리에는 눈을 감는데도, 여러분은 소득에서 가장 좋고 훌  륭한 몫을 눈앞에서 빼앗겨 집안은 점차 쇠잔해지고, 물려받은 가보들을 도둑맞게 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는 적 때문에, 재산을 소유한 모든 자 때문에 비롯되었다는 사실    이다.” “ 결심하라, 더 이상 그들에게 봉사하지 말고 자유를 얻어라.” “자연이 누구에게는 더 큰 몫을 주고 누구에게는 보다 적게 허락한 것은 이들 사이에서 형제애를 일깨워 자신이 가진 것으로 남을 도우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한다.”   
             
아나키스트는 돈키호테? 
세계문학에 등장하는 캐릭터 중에서 아나키스트에 가장 알맞은 것은 두 말할 필요도 없이 돈키호테다. 주로 비현실적인 몽상가라는 이미지에서다. 그러나 나는 <돈키호테>의 주제가 자유이도, 그 주인공은 자기 확신에 의해 부정한 권력과 물질의 탐닉에 저항하고 인류애를 추구하는 인간의 전형이라는 이유에서 그렇다고 본다. 즉 돈키호테는 자유인으로서 정의감, 정신성, 인류애에 충실한 인간의 표본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유토피아를 꿈꾸는 사람이었다. 이를 그 책의 2권 57장에 나오는 돈키호테의 다음 말에서 볼 수 있다. “자유는 천주가 인간에게 주신 가장 귀중한 선물 중의 하나야. … 명예와 마찬가지로, 자유를 위해서는 마땅히 목숨을 내걸 수도 있지. 한편 속박은 인간에게 있을 수 있는 최대의 악이야.”(오화섭 옮김, 2권 722쪽). 

이러한 자유의 절규는 1권 14장에서 마르셀로가 하는 다음 말에서도 볼 수 있다. 즉 “진정한 사랑은 깨지지 않으며 스스로의 마음에서 우러나야지 강요해서 되는 것은 아니”고, “왜 아름다움으로 인해 사랑 받는 여인이 그저 재미로, 그리고 강압적으로 달려드는 남자에 의해 정절을 잃어야만 하는 겁니까? 저는 자유롭게 태어났고, 또 자유롭게 살아가기 위해 초원에서의 고독을 선택한 것입니다.”(박철 옮김, 1권, 169쪽), “저는 자유로우며 구속당하고 싶지 않습니다. 어느 누구도 사랑하지도 싫어하지도 않지요. 이 사람을 속이고 저 사람에게 구애하지 않으며, 한 사람을 농락하고 다른 이의 마음을 유혹하지도 않았답니다.”(1권 171쪽)라고 말한다. 돈키호테는 “이 세상에서 그녀만이 올바른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는 유일한 사람”이라고 말한다(1권, 172쪽).

세르반테스
세르반테스

1편 11장에서 돈키호테는 “‘네 것, 내 것’이라는 두 단어를 모르고 살았고,”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했”으며, “모두가 평화로웠고, 우애가 넘쳤으며 조화로웠”던 ‘황금시대’에 대해 말한다.(1권, 131쪽) “사랑을 나눌 때도 인위적인 언어의 현란함을 추구하지 않고, 자신이 느끼는 그대로 단순하고 소박하게 표현했”고 “진실과 소탈함 속에는 사기와 속임수, 악이 끼어 들지 않았”으며 “정의도 본래의 의미를 그대로 지니고 있어서 자신의 혜택이나 이득을 얻기 위해 오늘날 정의를 그토록 더럽히고 교란시키고 탄압하는 사람들도 감히 정의를 뒤흔들거나 모독할 수 없었”고 “법관의 머릿속에 성문법의 개념도 존재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재판할 일도 재판 받을 사람도 없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1권, 132쪽). 이런 세상이 바로 내가 아는 아나키 사회이다. 그런 세상을 꿈꾸는 돈키호테는 미쳤는가? 

아니다. 돈키호테는 확신을 가지고 산초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가 이 철의 시대에 태어난 것은 황금의 시대, 소위 전성기를 되살리라는 하늘의 뜻이 있었기 때문이다. 위험한 모험들, 위대한 업적들, 용감한 무훈들이 바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1권, 246쪽) 

르네상스 시대에 문명을 비판하고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주장한 사람들로는 세르반테스말고도 많았다. 라블레, 모어, 게바라, 캄파넬라, 라스카사스, 바스코 데 키로가, 안토니오 데 발데스 등이었다.  

그 중에서도 모어와의 관련, 즉 <돈키호테>가 <유토피아>의 영향을 받았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 <유토피아>가 1516년, 즉 <돈키호테> 제1편보다 90년 전에 영국에서 라틴어로 나와 당시 유럽에서 널리 읽혔으니 스페인의 세르반테스(라틴어를 읽을 수 있었다고 보면)도 충분히 읽을 수 있었겠고, 따라서 그 영향도 당연히 받을 수 있었으리라. 앞에서 본 <돈키호테>의 공동소유와 법·재판 부재라는 유토피아는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를 연상하게 한다.

오노레 도미에의 돈키호테 그림ⓒTVictorin Honore Daumier/wikipedia | CC BY-SA 4.0
오노레 도미에의 돈키호테 그림
ⓒTVictorin Honore Daumier/wikipedia | CC BY-SA 4.0

죄수의 해방
<돈키호테> 1편 22장 ‘자신의 뜻과는 달리 원치 않는 곳으로 끌려가던 불행한 자들에게 돈키호테가 자유를 안겨준 이야기’에서 돈키호테가 노예선의 죄수를 해방시키는 장면은 흔히들 <돈키호테>를 일관하는 것이라고 하는 정치적인 보수주의에 대해 중요한 예외를 보여주는 점에서 주목된다. 나는 그런 견해에 반대하여 <돈키호테>가 정치적인 진보주의를 구가한다는 증거로 이 부분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돈키호테는 죄수의 해방이야말로 “억압을 타파하고, 불행한 사람들을 구한다는 나의 임무를 수행하기에 꼭 들어맞는 일”이라고 생각한다(1권, 267쪽). 이에 대해 산초 판사는 “국왕 폐하가 곧 정의이니 정의란 무엇을 강요하거나 치욕을 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저지른 죄를 징계하는 것”이라고 반박한다. 여기서 돈키호테는 진보주의, 산초 판사는 보수주의를 대변한다. 돈키호테는 여러 죄수에게 어떤 죄를 지었는지를 물어보고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린다. 

  비록 여러분들이 지은 죄 때문에 벌을 받고 있는 것이긴 하지만 여러분들이 맡고 있는 형벌이 그다지 기꺼운 건 아닐 것이요. 오히려 아주 못마땅할 뿐 아니라 여러분들의 의지에 어긋난다는 것을 말이요. 그저 어떤 이는 고문 속에서 용기가 좀 부족했고, 또 어떤 이는 돈이 부족했으며 다른 사람의 호의가 좀 부족했던 경우도 있었소. 그리고 종국에는 재판관의 잘못된 판단이 여러분에게 파멸을 초래했으며 여러분들이 지니고 있었던 정의를 이끌어내지 못했소(1권, 276쪽).  

그리고는 교도관들에게 죄수들을 풀어주라고 요구한다. “저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악한 자는 징계하시고, 선한 자에게는 상을 내리실 것이니 어진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죄를 묻는 사형집행인이 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1권, 277쪽) 

이를 세속의 실정법에 우월한 신의 자연법이 있음을 주장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을까? 아니면 돈키호테는 그런 자연법에 근거하여 실정법을 근본적으로 공격하지도 않는 것으로 볼 수 있을까? 그렇게 본다면 그는 국가나 정부를 부정하는 아나키스트도 아니고, 예수처럼 하느님의 나라가 당도함을 알리는 예언자도 아니다. 그는 자신이 사로잡힌 기사도라는 고정관념에 근거하여 즉흥적으로 죄수를 풀어주어야 한다는 영웅주의적인 생각을 하고 그렇게 행동할 뿐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과연 그렇게만 볼 수 있을까? 

도리어 반대로 보는 것이 옳지 않을까? 돈키호테에게는 국왕의 법이나 정의가 문제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명백히 반체제적인 입장을 취한다. 그리고 죄수들에 대한 형벌이 가혹하다는 판단 아래 그 이유가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비롯한 판사들의 무능 탓이기도 하다고 본다.
여하튼 이에 당연히 교도관들이 반발하자 돈키호테는 그들에게 달려든다. 그리고 그 사이 죄수들은 탈출한다(1권, 278쪽). 그리고 탈출한 죄수들에게 돈키호테가 둘시네아 공주를 찾아가 탈출담을 이야기하라고 하자(1권, 279쪽) 죄수들이 거부한다. 결국 죄수들과 싸움을 벌이게 되고 돈키호테와 산초 판사는 그들에게 얻어터진다(1권, 280쪽).

그래서 돈키호테는 후회한다. “흔히들 천박한 자들에게 선을 베푼다는 것이 바다에 물을 떠다 붓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들 하더구나. 네 말을 들었더라면 이러한 고통은 면했으련만, 이미 벌어진 일을 이제 와서 어쩌겠느냐. 인내하고 앞으로는 자숙하겠다.”(1권, 281쪽) 이는 돈키호테 최초의 태도 변화이나, 산초 판사는 “주인님께서 자숙하신다면 제가 터키인입니다”라고 빈정댄다.

여기서 우리는 돈키호테가 후회는 하지만 죄책감을 전혀 느끼지 않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뒤의 제30장 ‘몹시 가혹한 고통을 겪는 와중에 사랑에 빠진 우리의 기사를 구해내는 과정과 재미있는 기교에 대하여’ 서두에서 신부가 이 문제를 따져도 그는 죄책감을 전혀 느끼지 않고 쇠사슬에 묶인 자들이면 무조건 도와주어야 한다는 기사도를 되풀이 설명할 뿐이다(1권, 404쪽). 이 죄책감 문제는 무책임주의나 무도덕주의로 보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아나키즘적인 정치신념의 하나로 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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