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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문화 칼럼] 착각의 연속이 주는 웃음과 응원
[김희철의 문화 칼럼] 착각의 연속이 주는 웃음과 응원
  • 교수신문
  • 승인 2019.11.25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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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극 '도둑 배우'를 보고 와서

 다큐멘터리 영화들을 연출했었지만 극영화를 하고 싶다는 생각도 종종 했었다. 2017년에 발표한 <이중섭의 눈>에서 변사역으로 나레이션을 맡아준 배우진 배우는 영화 출연도 다양하게 했지만 끊임 없이 연극 무대 경력을 쌓고 있는 숨은 실력파다. 그와는 지난 겨울, 대리운전을 2인 1조로 함께 하기도 했다. 오래간만에 우진씨를 만나서 함께 연극을 봤다. 충무로 아트센터에서 공연 중인 <도둑 배우>라는 제목의 현대극이었다.

연극 '도둑배우' 무대가 끝난 뒤 배우들이 관객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충무로 아트센터 로비에 있는 연극 '도둑배우'

 이 작품은 일본의 작가 겸 감독 ‘니시다 마사후미’가 원작을 한국 버전으로 리메이크한 것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고양이가 소품과 대사에 등장한다. 무대는 2층 구조의 집안으로 꾸며져 있고 출입문 옆에 고양이 조각상이 있다. 그 집의 주인은 ‘지대로’라는 이름의 유명 동화 작가인데 이곳에 도둑 두 명이 침입하면서 이야기는 전개된다. 중간에 액자식 구성으로 다른 에피소드가 두 개 끼었지만 공간의 이동은 끝까지 없고 오로지 이 집안에서 모든 상황이 펼쳐진다.

 작가 지대로는 ‘하나와 두리‘라는 작품으로 히트를 쳐서 팬들도 많은데, 이 집에 도둑질을 하러 들어온 어린 작자도 그 팬 중의 한 명이고 지대로에게 꿔준 돈을 받으러 온 사채회사 직원도 그의 팬이다. 하지만 그는 이제 왕년의 필력을 잃고 마감일자에 맞춰 제대로 글을 써내지 못하는 퇴물이 된 상태다. 지대로는 무단 침입한 도둑을 자신이 계약한 출판사에서 보낸 직원으로 착각한다. 이후 이 집에는 도둑들 말고도 도미노 장난감을 팔러온 방문판매원, 출판사 편집장이 보낸 진짜 직원도 오게 된다. 이 두 사람을 포함한 방문자들은 모두 도둑의 임기응변식 거짓말에 속아 도둑을 작가로, 작가 지대로를 가사도우미로 착각하고 계속해서 착각에 착각을 덮어간다.

 일단 상황의 키를 쥔 사람은 작가의 원고를 받으러 와서 독촉을 하는 출판사 직원이다. 지대로 작가는 아이디어가 고갈된 상태라서 직원에게 줄 원고가 없는 상태이고, 도미노 장남감 판매원은 자신의 원래 꿈이 소설가였다고 하면서 엉뚱한 이야기를 원고의 내용으로 제안한다. 돈 받으러 왔다가 본의 아니게 공동집필에 참여하는 사채회사 직원도 나름 신선한 아이디어를 내놓지만 원고는 당연히 쉽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결국 출판사 직원은 원고 받기를 포기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지대로는 죽은 아내가 남긴 편지를 우연히 발견하고 용기를 얻어서 ‘하나와 두리’ 속편을 쓰기로 한다. 

연극 '도둑배우' 무대가 끝난 뒤 배우들이 관객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연극 '도둑배우' 무대가 끝난 뒤 배우들이 관객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연극은 코메디 동화 장르답게 여러 웃음 코드를 갖고 있어서 관객들이 부담없이 즐길 수 있었다. 공연을 보고 나서 배우진 배우와 늦은 식사를 같이 하면서 연극 얘기, 영화 얘기 등을 나눴다. 사실 너무나 많은 연극인, 영화인들이 별처럼 반짝였다가 사라졌다. 실력을 인정받아 오래 생명을 유지했던 사람들도 많지만 대부분은 한 때 전성기를 누리다가 소리 소문 없이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져 간다. <도둑 배우>의 그 작가 역시 한 때 잘 나가던 시기가 있었지만 그 상태를 계속 유지하는 것은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연극은 인류의 역사와 함께 했다. 수천 수만년 전에도 인류는 하늘에 제사를 지냈고 그 제단은 무대였으며 제사를 지내는 행위가 발전하여 연극이 되었다. 그런데 두 세기도 안 된 영화가 산업이라는 틀로 연극을 진공청소기처럼 흡수했고 대중들은 주로 상업 극영화를 즐기는 시대가 되었다. 심한 배신감과 외로움을 느꼈을 법한 연극이지만 여전히 세계 곳곳에서 수많은 연극 작품들이 관객과 생생한 대면을 어어가고 있다. 그것은 영화의 스크린이 아닌 바로 내 눈 앞에서 배우의 연기를 접하고 싶어하는 관객들이 꾸준히 존재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배가 고픈 직업임에도 불구하고 연기라는 행위로 자신의 예술 세계를 펼치려고 하는 진정한 배우들이 늘 있는 덕분이기도 하다.  

 연극 <도둑 배우>의 메시지를 묻는 물음에 연출자 김태훈은 “이 작품 속 인물들처럼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도 절망의 순간에 일어날 수 있는 힘을 주는 각자의 히어로들이 늘 주변에 있음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하고 있다. 작가 지대로가 쓴 동화 속 고양이도 그런 마음으로 응원하고 있다.
 “우리의 인생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냐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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