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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근 교수의 ‘철학자의 가벼움’(37) - 잘려진 영국
정세근 교수의 ‘철학자의 가벼움’(37) - 잘려진 영국
  • 교수신문
  • 승인 2019.11.25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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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는 영국을 가르는 ‘슬래쉬’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잘 알려지지 않은 영국의 진실. 거창한 것은 아니고 지형 이야기다.

영국 국토의 경계는 대체로 동쪽이 높고 서쪽이 낮은 경계로 나뉘어져 있다.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경계도 그렇고, 스코틀랜드의 하이랜드와 로우랜드의 경계도 동쪽 끝을 제외하고는 그렇다. 어째서인가?

우리의 도나 군읍의 경계가 물 흐름에 따라 나뉘었듯이 영국도 그랬을 거라는 것은 쉽게 추측할 수 있다. 그렇다면 과연 영국의 지질은 어떻게 생겼을까?

요즘은 사그러들었지만 ‘네스 호의 괴물’을 기억하는지. 스코틀랜드의 네스 호에 공룡과 같은 놈이 산다는 것이다. 안개 속에서 찍힌 사진도 있고, 그 크기가 대단해서 늘 관심거리였다. 멸종한 수장룡이 남아있다는 말이었는데, 2003년에 BBC가 작정을 하고 음파탐지도 하고 위성추적도 해보았지만 괴물의 흔적은 발견할 수 없었다. BBC 탐사 이후 없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덕분에 영국이 해외토픽에 오를 두 가지 일(왕가와 괴물 네시) 가운데 하나가 줄어들었다.

호수라는 것이 신비해서 물안개가 피어오를 때면 뭔가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물속에서 괴물이 나오는 것도 무서운데, 안개 낀 물속에서 괴물이 나온다면 더욱 무서울 수밖에 없다.

나도 속아 네시 호를 가봤다. 그런데 물 참 시꺼멓더라. 좋게 이야기하면 산삼 썩은 물이지만, 수도꼭지에서 검게 물이 나오는 것을 보며 물 사정이 좋지 않은 것을 알 수 있었다. 반드시 검은 물이 나쁜 물이고 맑은 물이 좋은 물은 아니지만.

그냥 안개 낀 물속도 아니고, 안개 낀 검은 물속이니 더욱 신비하고 더욱 공포스럽다. 물은 물인데 검은 물로 가득 차니 겁난다. 주위라도 맑아야 수영을 하는데, 속이 보이지 않아 감히 물로 뛰어들 엄두를 못 낸다. 괴물도 있다는데.

그런데 나는 정말로 신기한 것이 영국이 아무리 섬이라지만, 섬을 가르는 호수들이 많다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영국은 군데군데 사선으로 벌어지고 있었다. 영국을 가르는 것(슬래쉬)은 바로 호수들이었다.

네스 호도 그 가운데 큰 호수였다. 영국은 호수가 많아 호수를 테마로 관광객을 끌어들이고 있고, 호수 주변에 있는 고성은 또한 볼거리 가운데 하나다. 호수를 산책하는 사람들 가운데 영국인임을 알 수 있는 것은 비가 쏟아져도 아랑곳하지 않고 후드만 올리고 그냥 태연스럽게 걸어가는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머리가 아플 정도로 단 것과 뜨거운 홍차를 마신다.

영국에는 곳곳에 운하가 있다. 호수와 호수를 연결해주는 소규모 운하다. 내가 만난 사람은 노르웨이 사람인데 스페인에 놀러간다고 하이랜드를 사선으로 통과해서 가고 있는 중이었다. 운하니 직통으로 갈 수 있고 바다로 나가지 않고 편안하게 남하할 수 있다. 영국은 그렇게 베어져있었다(slashed). 북구 사람들은 네스 호를 거쳐 영국과 아일랜드 사이로 스페인으로 갈 수 있고, 지브롤터 해협을 지나 지중해로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이다. 요트 루트로는 정말 좋다.

또 다른 정보 하나. 하이랜드 서쪽 대서양 연안에 따뜻한 바람이 불어오는 식물원(Garden)이 있다. 해양성 기후라는 것이 바닷바람에 좌우되는 것이지만, 이상하게도 유독 그곳만큼은 바람이 따뜻해 온대성 식물이 잘 자랐다. 난도 많고, 다육이도 많았다.

먹을 건 생선과 감자튀김(fish and chips)밖에 없지만 땅은 재밌게 생긴 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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