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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의 우주론과 스티븐 호킹의 우주론
노자의 우주론과 스티븐 호킹의 우주론
  • 교수신문
  • 승인 2019.11.25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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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 사회에는 인문 고전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울산대 박삼수 교수는 중문학자로, 동양 고전의 ‘쉽고 바른’ 풀이에 심력을 다하고 있다. 그런 그가 작년에 세상을 떠나면서 새롭게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있는 세계적인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의 우주론에 강한 호기심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노자의 우주론과 호킹의 우주론이 서로 일맥상통한 데에 크게 매료된 것이다. 동양 고전 철학의 우주론이 서양 현대 과학의 우주론에 시원적(始原的) 의의를 띠고 있다니, 어느 누구라 흥미롭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여 박교수는 학문적 호기심을 억누르지 못하고 양자(兩者)를 비교 논지(論之)하면서 고전이 가진 그 불후의 가치와 위상을 거듭 입증하고, 새삼 부각코자 한다. 이는 작금의 고전 열풍 속에서도 선뜻 다가서지 못하고, 이런 저런 이유로 뒷걸음질하는 분위기가 여전한 우리 사회에 도전적 결단의 용기를 불러일으키는 자극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편집자 주]

박삼수 울산대학교 중문학과 교수
박삼수 울산대학교 중문학과 교수

지난 해 3월 세계는 위대한 물리학자 한 사람을 잃었다. 스티븐 호킹이 세상을 떠나면서 그의 위대한 업적이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그 가운데, 물리학에는 문외한이지만 필자의 주목을 끄는 것이 있다. 바로 우주 만물은 아무것도 없는 점 하나, 즉 ‘특이점(Singularity)’에서 창조되었다는 그의 우주론이다. 이른바 무에서 유가 창조된다는 빅뱅 이론이다. 원자보다도 작은 하나의 ‘특이점’에서 어느 순간 빅뱅이 일어나면서 수많은 물질과 에너지, 시·공간이 생겨났고, 그로부터 엄밀한 자연법칙 내지 과학법칙에 따라 진화를 거듭하여 우주를 형성하게 되었다는 얘기다. 듣건대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현대 과학자들은 대부분 창조주의 존재를 부정하는 빅뱅 이론에 회의적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스티븐 호킹이 끈질긴 추적과 탐구 끝에 그 사실을 이론적으로 입증함으로써 마침내 학문적 신뢰가 확보되었다는 평가다.

바로 이 순간 필자는 불현 듯 2천 5백 년 전에 우주의 근원을 탐구했던 동양의 철인(哲人) 노자(老子)를 떠올리며 감탄을 금치 못한다. 고대 동양의 우주론을 대표하는 노자의 우주론과 현대 서양의 우주론을 대표하는 호킹의 우주론이 어찌 이렇게 일맥상통할 수 있단 말인가? 주지하다시피 노자는 ‘도(道)’를 핵심 개념으로 하는 도가 사상의 창시자이다. 노자가 말하는 ‘도’는 기본적으로 우주의 본원이자 근원, 즉 천지 만물을 창조 생성하는 핵심적 원리이자 근원적 동력을 지칭한다. 그리고 ‘도’는 어떤 형체나 형상도 없으며 그저 공허·허무한, 즉 텅 비어 아무것도 없는, 그러나 분명히 실존하는 혼돈(混沌) 상태의 물(物)이다.

노자는 ‘도’를 설명하면서 두 가지 개념을 제시했는데, ‘무(無)’와 ‘유(有)’가 바로 그것이다. 노자에 따르면 ‘무’는 천지의 시원(始原)을 일컫고, ‘유’는 만물의 어머니를 일컫는다. ‘무’·‘유’는 사람으로 말하자면 별명과 같은 것으로, 사람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도’의 속성과 특성을 여실히 반영해 달리 일컬은 것이다. 그리고 노자는 또 “천하 만물은 ‘유’에서 생겨나고, ‘유’는 ‘무’에서 생겨난다[天下萬物生於有, 有生於無]”(노자 제40장)고 분명히 말했다.

천지의 시원인 ‘무’는 ‘도’의 본체가 가지는 무형상의 특성과 무한한 잠재력을 상징한다. 반면 만물의 어머니인 ‘유’는 ‘도’의 작용이 갖는, 무형상에서 유형상으로 구체화하는 역동적인 창조력을 상징한다. 요컨대 삼라만상은 바로 ‘도’ 본연의 체용(體用), 즉 본체와 작용의 소산인 것이다. 노자가 말하는 ‘무’와 ‘유’는, 사실상 훗날 북송(北宋)의 주돈이가 말한 ‘무극(無極)’과 ‘태극(太極)’이나 다름이 없다. 주돈이는 태극도설(太極圖說)에서 “무극에서 태극이 생겨난다[無極而太極]”고 하며, 우주의 본원인 ‘무극’은 천지 만물의 생성을 위한 또 하나의 근원적 기운인 ‘태극’을 낳는다는 견해를 피력한 바 있다. 유가의 입장에서는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주돈이는 바로 ‘무에서 유가 생겨난다’는 노자의 우주론을 계승한 것이다. 아무튼 노자가 말하는 ‘무’는 드러나지 않는, 무한한 생기(生氣)와 생명력을 가득 품고 있으며, 그 바탕 위에 무한하면서도 역동적인 생명의 기운인 ‘유’를 내포하고 있다. ‘도’는 결국 ‘무’와 ‘유’의 융합이요, 통일이다.

그렇다면 스티븐 호킹이 말하는 ‘특이점’은 기본적으로 노자가 말하는 ‘도’와 같은 맥락으로 이해된다. ‘도’와 ‘특이점’은 모두 ‘무’, 즉 그 무형상의 본체에 영원하고 무궁한 잠재력을 내포하고 있으며, 그리고 그 바탕 위에 광대하고 무궁한 창조력이 발휘되면서 우주 만물을 창조 생성하게 되었다는 논리다. 다만 노자와 스티븐 호킹 각각의 우주론에서 이른바 ‘유’가 지칭하는 바는 일치하지 않는다. 전자의 경우는 전술한 바와 같이 ‘도’ 자체의 작용적 특성을 이르는, ‘무’와 상대되는 개념인 반면, 후자의 경우는 ‘무’, 즉 ‘특이점’의 창조물인 우주 만물을 두고 이르는 말이다. 후자에는 전자의 ‘유’와 같은 개념 자체가 없는 듯하다.

또한 노자에 따르면, “도의 본체인 ‘무’는 ‘유’를 낳고, ‘유’는 음양의 두 기운을 낳으며, 음양의 기운은 서로 결합해 두 기운이 지극히 조화로운 상태를 이루고, 음양 화합의 지극히 조화로운 상태는 우주 만물을 낳는다.[道生一, 一生二, 二生三, 三生萬物]”(노자 제42장) 그리고 그 같은 ‘도’의 우주 창조는 전적으로 ‘무위자연’의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무위자연’이란 곧 의도적으로 무언가를 이루려는 그 어떤 노력도 기울이지 않고, 순전히 우주 만물의 자연법칙 즉 ‘저절로 그러함’에 순응하는 속성을 말한다. 반면 스티븐 호킹의 우주론에서 ‘특이점’이 만물을 창조하는 것은 바로 ‘빅뱅’의 방식을 통해 이루어진다. 빅뱅이란 그야말로 ‘대폭발’이라는 구체적이고 역동적인 움직임을 보여주는 것이니, 노자 우주론의 ‘무위자연’과는 확연히 다르다. 

한데 노자와 스티븐 호킹의 우주론에는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또 다른 상이점이 있다. 바로 두 우주론의 궁극적 지향의 문제다. ‘우주는 신이 창조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창조되었다’는 말로도 유명한 스티븐 호킹의 우주론은 아무래도 우주의 기원과 생성의 비밀을 푸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어 보인다. 그에 반해 노자의 우주론은 결국 인생론으로 귀결된다. 당시 ‘구세(救世)’에 대한 고민이 깊었던 노자에게 있어, 우주 근원에 대한 탐구는 궁극적으로 인간 세상의 난제를 풀 실마리를 찾기 위한 것이었다. 하여 노자의 생각은, 모름지기 우리 인간은 바로 만물(인간도 만물의 하나다)의 근원인 ‘도’의 ‘무위자연’의 본질과 정신을 깊이 깨닫고, 또한 충실히 실천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노자 당시 그 혼란하기 그지없던 사회상은, 일부 사람들(특히 통치자·위정자들)의 탐욕에 찬 ‘유위(有爲, 즉 무위자연의 반대 개념)’의 작태가 빚어낸 결과였다. 그러므로 노자는 ‘무위자연’의 순리를 따르는 것이야말로 진정 국가 사회의 안녕과 평화를 이룩하고, 만백성이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길임을 역설한 것이다.

물질 가치가 최(最)우선시되는 오늘날, 우리는 각기 나름의 성취와 성공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세속화되고, 또 경쟁의 고삐를 조이지 않을 수가 없다. 하지만 이제 한 발짝만 물러나 보자. 그리고 경쟁하기보다는 부쟁(不爭)하고, 나아가기보다는 물러나며, 채우기보다는 비우는 무위자연의 순리를 일깨웠던 노자의 가르침을 가슴 깊이 새기며, 삶의 여유를 되찾고, 심신의 힐링을 도모하자. 장차 언젠간 문득, 다투지 않음으로써 이기고, 물러남으로써 나아가며, 비움으로써 채울 수 있는 이치와 지혜를 감오(感悟)하며 놀라워하리라. 이것이 바로 노자가 꿈꿨고, 우리 또한 그 꿈을 꿔야 할, ‘우주와 인간의 만남’을 통해 이룩되는 아름다운 삶의 환희요, 이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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