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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분석] 인기 폭발 ‘펭수’ 뒤, 문화현상의 의미 : 생활 민주주의의 부재
[미디어 분석] 인기 폭발 ‘펭수’ 뒤, 문화현상의 의미 : 생활 민주주의의 부재
  • 교수신문
  • 승인 2019.11.24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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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많하않’을 ‘할말하는’으로 만든 펭수
EBS의 캐릭터 펭수가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 팬사인회를 가지고 팬들을 만났다. ⓒ허정윤
EBS의 캐릭터 펭수가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 팬사인회를 가지고 팬들을 만났다. ⓒ허정윤

■ 펭수를 모르신다고요?!
등장한 지 겨우 8개월(11월 24일 현재)만에 유튜브 구독자 90만9천여명(한달 평균 10만명씩 증가). 인스타그램 팔로워 21만8천여명. 대표 유튜브 동영상 조회 수 211만여회(아육대 1부). 최근 미디어 섭외 후보 1순위가 된 대세 캐릭터 ‘펭수’의 인기를 단번에 확인시켜주는 성과다. 대세 펭수의 폭발적 인기를 보여주는 증거는 이게 다가 아니다. 매체간 경쟁으로 방송사간에 타사 방송은 서로 다루지 않는다는 불문율을 깨고 펭수는 소속인 EBS를 넘어 KBS, MBC, SBS 등 공중파 방송은 물론이고 JTBC 등 매체간 경계를 허물고 라디오, TV 예능 프로그램에 유튜브까지 온·오프라인을 자유롭게 넘나들고 있다.

매체를 가리지 않는 건 물론이고 소구 대상도 10대 초등학생부터 20, 30대 청년, 직장인을 망라한다. 지금까지 뽀로로, 라바, 엽기토끼, 뿌까에서 최근 세계적인 호응을 얻고 있는 ‘아기상어’(baby shark)에 이르기까지, 여러 캐릭터 성공사례가 있지만 펭수는 기존 캐릭터의 성공공식과 전통적 제작 문법에서도 비껴있는 등 여러 가지 측면에서 매우 이례적인 경우다. 애니메이션과 같은 독자적 프로그램이 아닌 다른 방송의 코너로 시작한 후 독립해 이렇게 단기간에 빠르게 호응을 얻은 경우도 드물지만, 전통 매체와 유튜브라는 SNS 기반의 매체를 동시에 활용해 아동, 중고 대학생에 직장인까지 이질적 계층을 동시에 아우르는 등 대세 문화 현상으로 자리잡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자이언트 펭TV 유튜브 메인
ⓒ 자이언트 펭TV 유튜브 메인

이런 성과들은 다양한 나비 효과로 번지고 있다. 펭수에서 시작된 인기는 소속인 EBS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져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공영방송 EBS의 수신료를 올려달라는 청원이 올라오기도 했다. 현재 EBS는 공영방송 시청에 부과되는 수신료 수입의 3%밖에 배정받지 못하고 있는데 더 질좋은 방송 제작을 위해서 이를 최소 10%로 인상해달라는 요구다. 지난 11월 6일 시작된 후 10여일만에 현재 5천여명의 동의자가 참여하고 있다. 또한 캐릭터 상품화 사업이 본격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최근 카카오가 출시한 펭수 이모티콘은 나오자마자 일주일여만에 최단 기간 최다 판매를 달성하며 판매 순위 1위를 달리고 있다. 이와 함께 EBS의 보유 콘텐츠 활성화를 위해 MOU를 체결한 유엔젤이란 기업은 펭수 관련주로 떠오르면서 이달 들어 주가가 40%이상 뛰기도 했다.

 

펭~하! ⓒ허정윤

■ 그야말로 ‘펭수 효과’ 이제껏 본 적 없던 캐릭터
이런 분위기를 타고 매체들도 펭수의 이런 유례없는 인기 원인에 대해 경쟁적으로 분석하고 나섰다. 펭수는 원래 EBS 장수 어린이 프로그램 ‘생방송 톡! 톡! 보니하니’의 삽입 코너로 지난 4월 처음 선을 보였다. 뽀로로, BTS같은 대스타가 되기 위해 남극에서 한국으로 건너와 EBS 연습생이 됐다는 설정을 기반으로 주 시청자인 어린이들에게 ‘크리에이터’라는 직업 세계를 소개하고 동시에 ‘직업 체험’을 도와주려는 것이 당초 기획 의도였다.

예상과 달리 펭수의 인기가 급상승한 것은 지난 9월 MBC의 명절 특집 ‘아이돌 육상대회’를 패러디한 ‘이육대(EBS 아이돌 육상 대회)’에서 EBS의 대표 캐릭터인 ‘뽀로로’, ‘뚝딱이’, ‘뿡뿡이’, ‘번개맨,’ ‘당당맨’ 등과 함께 등장한 것이 계기가 됐다. 뚝딱이같은 선배 캐릭터들의 권위에 주눅들지 않는 모습을 선보인 이후에 펭수의 인기에 불이 붙었다. EBS방송과 별도로 자이언트 펭TV라는 유튜브 채널을 통해 EBS 방송과 차별화된 독립 컨텐츠들이 주단위로 업데이트되고 구독자들이 순식간에 몰리면서 인기가 수직 상승하게 된 것이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점은 교육방송이라는 공익적 이미지의 EBS가 보수적이고 고리타분하다는 인상을 불식시키고 수직적 위계사회에 어울리지 않게 돌직구를 날리는 저항적 반전 캐릭터를 선보였다는 사실이다.

사실 이런 펭수 캐릭터의 등장은 EBS가 주 시청자인 아이들조차 보지않는 방송이라는 위기의식에서 시작됐다. 초등학생 사이에서 EBS는 미취학 아동이 보는 채널이라는 인식이 팽배했다.  실제 아동 대상 시청자 조사를 통해 초등학교 고학년들도 EBS는 아기 때나 보는 방송으로 인식하고 있고, 유튜브나 성인 예능 프로그램을 보고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런 이유로 펭수는 처음부터 TV뿐 아니라 아이들이 주로 이용하는 유튜브까지 넘나드는 포맷으로 방향을 잡았고, ‘1인 BJ 방송’에 기반한 포맷, ‘교육방송’에선 시도할 수 없는 내용과 자막 등 유튜브 문법을 도입한 것이 시청자 호응에 큰 역할을 했다. 제작 방식에 있어서도 원래 탈 인형 연기자의 경우 160㎝를 넘지 않는 게 불문율이나 이례적으로 180㎝가 넘는 연기자에 처음으로 더빙이 아닌 실시간 연기를 하는 캐릭터를 사용한 것도 차별적 캐릭터를 만드는 요소가 됐다. 펭수의 제작진 평균 연령대가 35세 이하인 점도 젊은 감각을 유지하고 자유로운 의식으로 타 부서·회사와 각종 ‘콜라보’를 진행할 수 있었던 자율적 요소로 시너지를 일으켰다.

ⓒ SBS 유튜브 채널 '문명특급' 갈무리

 

■ ‘할많하않’의 반동이 ‘할말하는’으로 나타나
캐릭터로서 펭수의 매력 요인은 무엇보다 솔직한 입담과 거침없는 발언으로 모범적, 교훈적,  권선징악적인 기존 캐릭터와 차별화한 점이다.(EBS 사장이름을 존칭도 없이 서슴없이 부르고 선배에게 잔소리하지 말라고 요구하는 행동이 예다.) 같은 펭귄 캐릭터로 뽀로로와 핑구의 경우 아담한 덩치에 친근함과 귀여움으로 어필했지만 펭수는 210㎝라는 거구에 위계질서에 저항하고 호불호의 속내를 솔직히 드러내는 캐릭터로 조직생활에 지친 직장인들에게 대리만족의 공감과 카타르시스를 제공했다. 펭수는 캐릭터의 밝은 모습만 과장하지도 않고 도덕적 교훈을 가르치지도 않는다. 심지어 펭수는 요들송에, 랩, 비트박스, 비보이 댄스까지 소화하는 방식으로 20~30대가 좋아하는 예능 감각도 자랑한다. 요컨대 펭수는 기존의 펭귄 캐릭터와 정반대로 당당하게 자기의사를 표현할 줄 알고 위계와 틀을 깨는 반전의 성격이 매력 포인트라고 요약할 수 있다.

미디어 문화 연구자로서 저자는 ‘펭수 현상’의 이면에 있는 사회 문화적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본다. 특히 20~30대 젊은 사회 초년병들이 더욱 펭수에 열광하는 데는 사회 문화적 배경과 원인이 있다. 이 세대는 88만원 세대, N포 세대라는 용어로 대표되고 낮은 취업률로 사회 진출 후 취업과정에서 수없는 거절과 좌절의 경험을 가진 세대다. 그와 함께 이들은 수직 위계화된 상명하복의 조직 문화 속에서 자신의 생각과 의견을 자유롭게 피력할 수 없는 ‘할많하않’(‘할 말은 많지만 하지 않는다’는 의미의 신조어)의 억압된 심리를 내재화했다. 이런 심리는 수없이 갑질과 부당한 일을 당하지만 어차피 문제제기를 해도 바꿀 수 없다는 좌절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이런 억눌린 감정 상태가 오래 지속되면 우울증, 불안장애와 같은 정신과적 문제를 낳는다. 이 때 자신들과 달리 ‘할 말은 하는’ 펭수에 감정이입함으로써 이들은 심리적 해방감과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공감과 힐링을 경험하게 된 것이다.

어찌 보면 펭수에 대한 열광의 이면엔 우리 사회에 비민주적 조직 문화라는 어두운 그늘이 도사리고 있었다. 펭수의 등장을 통해 우리 사회가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사회 곳곳에 만연한 억압적 수직위계의 문화, 개인의 의견이 존중받지 못하는 조직문화, 심지어 부당한 명령이나 지시를 거부하지 못하는 비민주적 환경을 개선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사실이다. 세계 유례가 없는 대통령 탄핵까지 한 나라에서 정작 기업, 정부, 학교와 같은 개인들이 속한 생활 현장에선 민주주의가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불편한 진실을 이제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김선진 경성대학교 디지털미디어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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