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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동향: 9.11 테러 2주기, 프랑스 지식인들의 표정
해외동향: 9.11 테러 2주기, 프랑스 지식인들의 표정
  • 김유석 프랑스 통신원
  • 승인 2003.09.1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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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적 서양- 새로운 문명의 단절을 말하다

논쟁을 좋아하는 프랑스인들에게 2년 전 9.11 테러 사건은 엄청난 사회적 이슈를 만들어냈다. 테러리즘에 대한 분노에서부터 미국의 세계 전략에 대한 비판, 이슬람의 본질에 대한 물음, 더 나아가 유럽이 취해야 할 태도 등등. 토론은 직업이나 학력, 연령과 상관없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았고, 모두가 자신의 생각을 피력했으며, 그 방식 또한 전문적이고 학술적인 논쟁에서부터 술주정을 방불케 하는 난상토론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진행되었다. 이 논쟁은 올해 초 미국의 이라크 침공과 함께 절정에 달하는 듯했다. 프랑스는 미국에 대한 지지를 거부했지만, 저간의 상황 속에서 전쟁의 부당성에 대한 신랄한 비판과 함께 미국에 대한 무기력한 분노가 논쟁의 주된 이야기 거리로 떠오르기도 했다. 그리고 다시 시간이 흘렀고, 이제 사람들은 이 문제를 가지고 공공연하게 토론을 벌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논쟁이 끝난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논쟁은 한결 더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좀더 냉정한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제 논의는 현상 분석의 차원을 넘어서 한 차원 더 근본적인 문제, 즉 자유와 폭력의 본질, 앞으로 다가 올 국제 질서와 연대의 문제 등을 고민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 9월 11일자 '누벨 옵세르바퇴르'지는 ‘우리 생각 속에서 변화한 것’이라는 주제로 미국과 아랍 세계의 문제를 특집으로 다루고 있다. 더 이상 아무도 견제할 수 없게 된 미국의 패권주의에 대한 전망, 민주주의가 아랍 세계에 뿌리내릴 수 있는가에 대한 다소 회의 섞인 질문, 테러리즘에 맞서는 정의에 내재한 또 다른 폭력성을 둘러싼 의혹, 더 나아가 지구촌 이라는 이념의 환상과 공동체적 유토피아를 꿈꾸었던 유럽의 무력함 등에 관하여, 정치, 경제, 문화 등 각 분야의 논객들이 약간은 우울하면서도 냉정한 어조로 자신의 생각들을 게재했다. 언뜻 보기에는 전과 크게 달라진 게 없는 듯한 주제들이지만, 정작 이들을 다루는 태도는 과거에 비해 훨씬 더 자기 성찰적이다.

기고자의 한 사람인 장 다니엘은 2년 전 9.11 사태를 1989년의 베를린 장벽 붕괴와 비교한다. ‘1989년 11월 이전까지 우리는 장차 무엇이 도래할 지 아무 것도 알 수 없었다. 그러나 2001년 9월 전까지 우리는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그에 따르면,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전까지는 누구도 한 체제가 몰락하고 한 문명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리라는 것을 생각하지 못 했다. 반대로, 9.11 테러가 일어나기 전까지, 모두가 초강대국 미국의 세계 전략과 무차별적인 테러리즘, 그에 따를 파국을 예상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가장 나쁜 것은 ‘모두가 그것을 예상하고 있었음에도, 아무도 그것을 경고할 수단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장 다니엘은 이러한 분석을 바탕으로 향후 국제 질서가 어떻게 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지도, 이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한다는 주장도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좀더 비관적인, 그렇지만 어떻게 보면 더욱 본질적일 수도 있는 물음을 던진다.

미국과 몇몇 나라가 테러집단이라고 가정된 국가들에 대하여 ‘예방적 전쟁’의 정당성을 선포한 이후, 자국의 자위권을 내세워 유엔이라는 국제 공동체의 권위를 부정한 이래로, 다른 한편으로는 유럽 대중들의 여론이 소위 미국적인 세계관에 반기를 들고 그 정책에 대립하기 시작한 이래로, 이제는 사람들이 ‘서양’이라고 부르는 것에 대하여 질문을 던져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더 이상 서양이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세계관이 확연하게 갈라진 이상, ‘서양’으로 뭉뚱그려져 왔던 개념도 이제는 좀더 엄격하게 구분해서 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고 장 다니엘은 문제를 제기한다. 서양을 ‘유로-아메리카’라는 큰 틀 속에서 보는 사람들이 있듯이, 이제는 서양을 ‘미국’과 미국의 동반자이자 견제자인 ‘유럽’으로 좀더 분명하게 나누어서 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그저 단순히 구대륙과 신대륙 간의 대립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1989년 11월, 베를린 장벽의 붕괴가 한 문명의 급변과 단절을 상징했듯이, 오늘날에는 서양의 존재에 대한 진지한 물음을 던짐으로써, 다시 말해 대서양 끝단에 위치한 서양과 지중해 연안에 자리한 서양을 나누어 봄으로써, 새로운 문명의 단절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장 다니엘은 조심스럽게 새로운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김유석 프랑스 통신원/파리1대학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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