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19-12-15 13:06 (일)
쓸모없는 경험은 없다
쓸모없는 경험은 없다
  • 교수신문
  • 승인 2019.11.15 19:2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손명주 가천대학교 의예과 연구교수는 해부학으로 가천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천연물 유래 단일물질을 이용한 신경계 및 대사질환 치료 등의 연구를 진행 중이다.
손명주 가천대학교 의예과 연구교수는 해부학으로 가천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천연물 유래 단일물질을 이용한 신경계 및 대사질환 치료 등의 연구를 진행 중이다.

‘학문후속세대의 시선’에 기고할 글에 어떤 내용을 담을지 고민하며 여러 글을 찬찬히 읽어봤다. 많은 글 중에서 유독 눈에 들어오고 공감가는 글이 있었는데, 바로 ‘연구자 혹은 과학자’ 로서의 삶에 관한 글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지금까지 십여년 동안 나는 늘 운이 없다고 생각했다. 학위과정 동안 남들은 겪지 않았을 혹은 겪지 않아도 되었을 쓸모없는 시간을 소모했다며 스스로 많은 자책을 했다. 사실 필자의 대학 전공은 ‘응급구조학’ 이라, 졸업 후 취업이 당연했지만 우연한 기회로 ‘해부학자’의 길로 들어섰다. 내가 대학원을 지원할 당시 의과대학 기초의학과는 매우 보수적이었다. 생명과학이나 의학을 전공하지 않은 타전공 학생의 입학에 부정적이었고 설사 입학을 하더라도 제대로 과정을 이수하지 못할 것이라고 많은 이들이 예상했다. 나 또한 탈락의 고배를 마시며 겨우 입학을 하였는데, 도무지 따라가기가 만만치 않았다. 대부분 보건대학의 학사과정이 그렇듯 병태생리학적 기전에서 질병을 바라보기보다는 질병의 직접적인 치료와 처치에 대해 중심을 두고 있으니, 입학 후 논문 1편이나 읽는 것이 가능이나 했는지 지금 생각하면 무모함에 아찔할 정도이다. 하지만 글 제목처럼 쓸모없는 경험은 없다고 생각한다. 석사과정을 수학하며 뒤늦게 기초과학을 접하면서 미리 공부를 하지 않은 나를 탓했지만, 시간이 흐르고 지금 돌이켜보면 예전에 응급실에서 겪은 다양한 경험 덕분에 중개의학 (기초 의학의 결과를 임상으로 끌어들이는 것 혹은 임상 의학에서 생긴 관찰을 다시 기초 의학에 연결해주는 것)을 접하고 이해하는데 한결 수월함을 느끼고 있으니 이제는 그 경험이 고마울 따름이다.

‘학문후속세대’에 해당하는 연구자 혹은 과학자들이 겪는 경험들은 어떨까? 많은 ‘여성’ 연구자들이 겪는 결혼과 출산, 육아의 경험은 어떨까? 결혼과 육아의 해당 유무를 떠나 ‘학문후속세대’는 다양한 고충을 겪고 있는데, 현실적인 고충에는 불안정한 ‘학문후속세대’의 자리가 한 몫을 한다. 지금보다 더욱 안정적인 자리를 찾고 경제적으로 높은 지원을 받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나와 같은 육아를 하는 박사학위자를 받아줄 만한 곳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결혼과 육아의 경험을 쓸데없는 경험으로 취급하지 않으려고 한다. 왜냐면, 예전의 나보다 경험 후의 나는 연구와 삶의 균형을 이루기 위해 더욱 더 효율적이고 생산적인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하고 있고, 크게는 세상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시각이 한층 넓어졌기 때문이다. 나의 과거 힘들었던 경험이 지금은 쓸데없는 경험이 아니었다고 느끼는 것은 아마도 그 경험을 토대로 무엇인가를 해낼 수 있었기 때문인 듯하다. 현재 ‘학문후속세대’가 겪고 있는 고충의 경험이 쓸데없는 경험이 되지 않게 하려면 무엇보다도 ‘학문후속세대’에 대한 다양한 방식의 지원이 뒷받침 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학문후속세대’가 지원 받고 있는 박사후국내연수 사업은 나와 같은 연구자들이 연구 단절 없이 활동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힘든 경험이 쓸데없어 보이지만 시간이 흐른 뒤 우리를 더욱 탄탄하고 깊이있는 연구자로 만들 것이라고 확신하기에 지금의 ‘학문후속세대’가 제반 여건으로 인해 지치지 않았으면 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