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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령왕릉이 21세기에 사는 법
무령왕릉이 21세기에 사는 법
  • 교수신문
  • 승인 2019.11.15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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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희의 박물관 여행
박찬희 박물관 칼럼니스트

무령왕릉의 발굴은 해방 이후 가장 중요한 발굴 가운데 하나였다. 같은 고분군에 나란히 있던 고분들이 하나같이 도굴된 상황에서 이 고분은 축복처럼, 기적처럼 그 손길을 벗어났다. 그 덕분에 그 안에 있던 유물들이 고스란히 발견되었고 고분의 주인공과 축조 연대까지 확인할 수 있었다. 고대의 고분 가운데 주인공이 확인된 것이 거의 없어 이 고분은 더욱 중요했다. 이 고분의 발굴로 백제의 역사가 다시 쓰였고 백제의 문화가 재평가되었다.

무령왕릉. ⓒ박찬희
무령왕릉. ⓒ박찬희

흔히 접할 수 있는 백제의 역사책에는 어김없이 무령왕릉이 기록되었다. 또 공주로 수학여행이나 답사를 가는 사람이면 반드시 송산리 고분군에 있는 무령왕릉에 들린다. 산 능선을 따라 늘어선 고분군 아래쪽에 언덕처럼 불룩 솟은 곳이 무령왕릉이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무령왕릉 출입문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곤 한다. 무령왕릉의 출입문은 무령왕릉의 보존을 위해 오래 전에 폐쇄되었지만 이 문 앞에 설 때면 문을 열고 그 안으로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불쑥 들곤 한다.

무령왕릉에서 나온 유물들은 송산리 고분군에 이웃한 국립공주박물관에 소장되었다. 무령왕릉 출토 유물은 이 박물관의 핵심 소장품으로, 중요한 유물들은 전시실에서 만날 수 있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역사적, 예술적 가치가 높은 무령왕릉 출토 유물들을 어떻게 전시하고 있을까?

무령왕릉 전시실. ⓒ박찬희
무령왕릉 전시실. ⓒ박찬희

무령왕릉 출토 유물은 상설전시실 1층 <무령왕의 생애와 업적> 코너에 전시되었다. 박물관에서는 다양한 전시 방법 가운데 무령왕릉의 유물 배치를 기본으로 삼아 전시를 구성하였다. 전시실은 크게 세 부분으로 이루어진다. 전시실 가장 앞부분에는 무덤 입구에 놓였던 지석, 매지권, 석수를 전시하였다. 가운데에는 큰 진열장 안에 무령왕릉의 유물 배치에 맞게 복제품과 유물을 전시하였다. 이 진열장을 보면 어떤 유물이 어떤 식으로 놓였는지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뒷부분에는 관에서 나온 중요 유물을 왕의 것과 왕비의 것으로 나누어 대칭적으로 배치해 쉽게 비교해 볼 수 있도록 구성하였다. 전시실을 둘러싼 양쪽 벽은 무령왕릉의 벽을 본땄고 바닥은 무령왕릉 바닥의 디자인과 비슷하게 만들어 고분 속 분위기를 연출하였다. 

무령왕릉의 유물 배치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전시실은 몇 가지 점에서 흥미롭다. 관람자가 겉에서 구경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유물 사이로 자유롭게 다닐 수 있다. 사람들은 무령왕릉 속에 들어간 것처럼 천천히 걷고 멈추고 살펴보고 다시 걷는다. 관람자와 유물의 거리를 줄이고 유물을 사방에서 잘 볼 수 있도록 사면 유리 진열장을 적극적으로 사용하였다. 유물들이 일관된 맥락 속에 함께 모여 있기 때문에 무령왕릉의 전체적인 모습을 그리고 상상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이곳에서 관람자들은 무령왕릉이라는 숲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산책하며 각자 느낀 무령왕릉을 마음에 담아간다.     

무령왕릉 전시실. ⓒ박찬희
무령왕릉 전시실. ⓒ박찬희

전시실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나란히 늘어선 세 진열장으로 시선이 간다. 이 안에는 검은색 돌판과 동전이 전시되었다. 검은색 돌판은 무덤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알려주는 지석과 토지신에게 무덤 자리를 살 때 지불한 내용을 기록한 매지권이다. 이 기록으로 인해 무령왕릉의 중요성은 말할 수 없이 커졌다. 지석과 매지권은 앞뒤의 기록을 잘 볼 수 있도록 세워서 전시하였다. 지석과 매지권에 난 구멍은 토지신에게 지불한 동전 꾸러미를 묶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그 뒤로 무령왕릉 유물 배치 순서에 따라 진묘수를 전시하였다. 진묘수는 나쁜 귀신으로부터 무덤을 지키는 역할을 한다. 국립공주박물관 마당에 전시된 코끼리처럼 큰 복제품 진묘수에 비해 이 원본 진묘수는 귀여울 정도로 작아 귀신을 물리칠 수 있을까라는 엉뚱한 의심마저 든다. 진열장의 유리와 유물 사이의 간격이 넓지 않아 눈 가까이에서 진묘수를 꼼꼼하게 살펴볼 수 있다. 진묘수를 본 사람들은 무섭다기 보다 귀엽다는 느낌을 받곤 하는데, 코 위에 달린 동그란 눈, 눌린 듯한 코, 짧은 다리가 그 느낌에 한몫하다. 입술에 칠한 붉은색까지 찾는 순간 관람자 얼굴에는 살짝 미소가 번진다.    

진묘수를 지나면 무령왕릉 내부를 재현한 거대한 진열장을 만난다. 이 진열장에서 단연 압권은 왕과 왕비의 관으로 오른쪽이 왕의 것, 왼쪽이 왕비의 것이다. 관의 부재는 썩어서 사라진 부분이 있지만 1,500년의 시간을 견딘 나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잘 남았다. 물기에 강한 금송을 부재로 택해 습기에 강한 옻칠을 수십 번이나 한 덕분이다. 발굴 당시 관은 제 모습을 유지하지 못한 채 쓰러져 겹친 상태로 발견되었다. 2017년 전시실을 새롭게 만들면서 현재와 같은 상태로 전시해 왕과 왕비는 헤어진지 사십여 년 만에 전시실에서 해후를 하였다.

왕의 관에서 나온 유물. ⓒ박찬희
왕의 관에서 나온 유물. ⓒ박찬희

다음 공간에서는 관에서 나온 중요 유물들을 왕과 왕비의 것으로 나누어 전시했다. 앞부분부터 머리의 관모에 딸린 관식, 귀걸이와 목걸이와 같은 장신구, 금동신발을 차례로 볼 수 있다. 이 공간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유물은 관식이다. 왕의 것 한 쌍, 왕비의 것 한 쌍으로 이루어진 관식은 백제의 문화를 상징하는 유물로 자리 잡았다. 관식은 앞뒤를 모두 볼 수 있도록 전시해 관식의 이모저모를 꼼꼼히 살펴 볼 수 있다. 왕비의 관식과 달리 왕의 관식에는 모두 127개의 작은 나뭇잎 같은 장식이 달렸는데, 미세한 진동에도 파르르 떨린다. 이 장면을 볼 때면 마치 유물이 살아있는 기분이 들곤 한다.

“이름표를 잘 보면 왕의 것은 진품이고 왕비의 것은 복제품입니다. 왕비의 것은 어디로 갔을까요?”

사람들에게 이렇게 질문하면 “왕비의 것은 도난을 당했나요?”라며 반문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재빨리 이름표를 살펴보고 왕과 왕비의 것을 꼼꼼하게 비교한다. 왕비의 것은 현재 국립중앙박물관 백제실에 전시되었으며 이곳과는 반대로 그곳에서는 왕의 것이 복제품이다. 이런 상황을 보면 무령왕릉의 관식이 백제의 문화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이 어느 정도인지 쉽게 짐작된다.

왕비의 관에서 나온 유물. ⓒ박찬희
왕비의 관에서 나온 유물. ⓒ박찬희

왕과 왕비의 관에 들어 있던 중요한 유물은 긴 진열장에 넣어 전시하였다. 이 두 진열장을 서로 비교해 살펴보면 재미있다. 이 안에 있는 여러 유물 가운데 흥미로운 것의 하나가 칼이다. 왕의 관에는 큰 칼과 작은 칼이 놓여있는 반면 왕비의 관에는 큰 칼은 없고 작은 칼만 세 점이 놓였다. 흔히 사람 곁에서 큰 칼이 발견되면 그 사람은 남자로 보는데, 무령왕릉에서도 이러한 구분이 적용된다. 이 진열장 안에 무령왕과 왕비가 누워있다는 상상을 하면서 보면 유물이 애틋해 보인다. 

무령왕릉은 백제인의 작품이고 국립공주박물관의 무령왕릉실은 21세기의 작품이다. 백제인들은 무령왕과 왕비의 영원한 안식을 위해 무령왕릉을 만들었고 박물관에서는 전시실이라는 공간에 관람자들에게 백제 문화를 잘 보여주기 위해 무령왕릉실을 만들었다. 발견되기 전까지 긴 시간 어둠 속에 잠들었던 무령왕릉의 유물들은 이제 박물관 무령왕릉실에서 환한 빛을 받으며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 웅성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지낸다. 

송산리 고분군에 겉옷을 두고 박물관으로 온 21세기의 무령왕릉은 죽은 자를 위한 무덤에서 이제는 산 자를 위한 공간으로 매일 다시 살아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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