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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근 교수의 ‘철학자의 가벼움’(35) - 언어의 속도
정세근 교수의 ‘철학자의 가벼움’(35) - 언어의 속도
  • 교수신문
  • 승인 2019.11.11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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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와 균형을 이루는 ‘말의 속도’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언어는 문화권마다 고유의 속도가 있다. 성격에 따라 다르기도 하겠지만, 언어권에 따라 말하는 속도도 다르다는 말이다. 게다가 쓰기도 따지면 재밌는 이야기가 될 법하다. 획수가 많은 문자를 가진 나라와 매우 단순한 발음기호만 갖고 있는 나라는 그 번잡성과 간결성에서 확연히 차이가 난다. 문제는 정보 전달량이다. 따라서 여기서 언어의 속도란 말하기의 빠름과 늦음 또는 쓰기의 빠름과 늦음을 가리키는데, 그냥 빠르고 늦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럼에도 정보량 전달에서도 빠르고 늦기가 어떻게 되느냐는 것이다.

말이 빠른 사람의 전달량이 같은 언어권에서는 당연히 많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말은 느리지만 요약해서 말하는 사람과 말이 빨라도 중언부언하는 사람과는 큰 차이가 없다. 할 이야기만 딱 하는 사람과 뭐가 설명할 것이 그리 많은지 시간을 끄는 사람은 인격의 수준이 떠오를 정도지만, 주장은 모두 한 마디로 모아진다. 

우리 방송 앵커의 말의 속도는 어떨까? 내 생각에는 우리 방송 앵커의 속도가 다소 느리다는 느낌이다. 간혹 말에 장단을 준답시고 끌었다 댕겼다 하는 아나운서도 있는데, 때론 건방지게 느껴질 정도로 답답하다. 권력자는 말을 늦게 해도 된다는 심보에서 나오는 말의 속도라는 생각도 든다. 

얼마 전 저자가 하는 책 소개 프로그램을 위해 라디오 녹화를 할 때 말의 속도를 PD에게 물었다. 내가 읽는 속도가 너무 느리지 않나 싶어서였다. 그런데 라디오는 조금 늦어도 된단다. 화면이 없기 때문에 이해도가 떨어지기 쉬워, 말하는 속도를 텔레비전보다는 늦춘다.

몇 년 전 K-mooc를 찍었는데 젊은 사람들은 느린 것 같다고 한다. 다행히 속도조절을 기계적으로 할 수 있어 1.2배속으로 재생하면 좋다는 사람들이 많다. 여기서 정보량에 비해 말의 속도가 너무 느리거나, 대상이 젊은이라면 좀 더 빨라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러나 K-mooc의 대상은 학생만이 아니니 나도 변명이 된다. 당시 찍을 때도 촬영 팀에게 말의 속도를 늘 물었다. 그들은 좋다고 했지만 그들이 반드시 옳은 표준이 될 수는 없었다.

배속을 높여 들어보니 오리나 거위 소리처럼 들리기는 해도, 나도 교정볼 때 빨리 틀어놓고 보게 되더라. 어쩌면 나의 전달 속도가 옛날 기준이 아닐까 회의가 든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나도 표준발음에 가까워, 그리고 목소리 좋다는 소리도 예전에는 많이 들어서 아나운서 시험에 거의 된 적이 있다. 학업과 충돌이 되어 포기했지만, 지금 생각에는 그 길이 나았을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어처구니없게도 이상으로 삼는 것은 성우출신 배우 한석규이지만. 

우리나라 교수님이 포함된 국제 공동연구팀이 ‘언어의 발화 속도와 상관없이 전달되는 정보량은 비슷함’을 과학적으로 증명해냈단다. 말만 어렵지 내용은 간단하다. 스페인어나 일본어는 말이 빠르고, 중국어나 태국어는 말이 느린데도 초 당 평균 전달되는 정보의 양은 엇비슷하다고 한다. 어려운 말로 정보전달 속도를 정보 밀도와 발화 속도로 산출해보니 발화 속도와 정보전달 속도 사이에는 균형(trade-off)이 있다(Science Advances, 교수신문 2019.9.16.)는 것이다. 

사실 중국어와 태국어가 느리다고는 하지만 중국어는 성조가 있어 그것이 달라지면 뜻이 달라지기 때문에 과연 느린 언어인지도 의심스럽다. 달리 말해, 발화속도 자체가 정보와 불가분의 관계를 맺는다는 말이다. 

중국어가 우리말로 번역하면 분량이 대체로 1.5배가 된다. 거꾸로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획수가 많으니 쓰는 속도는 비슷하다. 연구결과에서 도용한 나의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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