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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언젠가는 죽음에도 불구하고
누구나 언젠가는 죽음에도 불구하고
  • 교수신문
  • 승인 2019.11.01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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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속의 사회학(03) 최현숙의 '작별일기' : 삶의 끝에 선 엄마를 기록하다
저자 최현숙| 후마니타스| 2019.09.30.| 페이지 380

셰익스피어는 소네트 19번에서 시간을 이렇게 원망했다. “게걸스런 시간아, 사자 발톱 무디고  흙한테 제 새끼를 삼키라 하고 사나운 호랑이 턱에서 이빨을 빼고 오래 사는 불사조를 한창때 불태우고 너는 날며 좋은 때 나쁜 때를 만들 테지.  발 빠른 시간아, 널찍한 세상과 사라지는 행복에 마음대로 해봐라.  하지만 한 가지 죄악만은 엄금한다. 내 사랑 예쁜 이마에 시간을 새기지 말며 너의 낡은 펜으로 긴 줄을 긋지 마라. 네가 달리는 동안 그 이를 건들지 말고 뒤에 오는 자들한테 미의 본보기를 보여줘라. 늙은 시간아, 네 심술이 아무리  못됐어도 내 시에서 그이는 영원히 젊으리라.”

사랑하는 사람에게만은 시간의 심술이 비껴갔으면 하는 시인의 간절한 바람에도 불구하고 누구도 시간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우리는 모두 죽는다. 필립 로스는 “죽음은 흔해 빠졌다”고 했다. 잔인하고 냉혹한 표현이지만, 죽음에 관한 이 진술을 우리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인간’의 죽음은 반복되지만, ‘누군가’의 죽음은 반복되지 않는다. 사망률로 표현되는 죽음은 평범하지만, 나와 관련된 사람의 죽음은 절대 평범하지 않다. 그 죽음은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깊은 절망으로 우리를 몰고 간다. “죽음은 흔해 빠졌다”는 언설에 추가되어야 할 내용이 있다. 모든 죽음이 동등한 대접을 받지 않는다. 죽음은 또한 차별적이다. 역사는 어떤 죽음만을 기록할 뿐이다.

화가 쿠르베는 1850년 살롱전에 <오르낭의 매장>이라는 제목의 그림을 출품했다. 이 그림을 보는 사람은 대부분 궁금해 했다. 지금 땅에 묻히고 있는 사람, 즉 죽은 사람이 누구인지. 왜냐하면 역사화 기법으로 그려진 그림의 주인공은 당연히 신화 속 인물이거나 역사의 영웅이어야 했기 때문이다. 역사화가 늘 그랬던 것처럼 <오르낭의 매장> 속 죽은 사람은 어떤 대단한 사람 혹은 영웅이어야만 한다. 그러나 쿠르베가 그린 그림엔 영웅이 없다. 그는 단지 ‘어떤’ 사람의 장례식을 그렸다. 그래서 관람객은 혼란스러웠다. ‘어떤’ 사람에 불과한 평범한 이의 장례식을 대체 왜 화가가 그렸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사람들의 머리 속에 입력된 그림으로 그릴만한 의미 있는 죽음은 영웅의 죽음이어야만 했으니까. 그럼에도 쿠르베는 평범한 사람의 장례식을 그림으로 그렸다. 그래서 쿠르베는 현대적이다.

우리는 길거리에서 누구인지 모르는 노인을 보았다고 슬픔에 빠지지 않는다. 그 노인이 제대로 걸음을 걷지 못할 정도로 노쇠했어도 별 다른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 세월이 그 사람을 그렇게 만들기 이전의 모습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월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변해버린 노인, 죽어가고 있는 노인이 ‘어떤’ 사람이 아니라, 나와 세월을 같이한 인격적 관계로 이어진 존재라면 다르다.

최현숙과 부모의 관계가 그렇다. 최현숙은 ‘어떤’ 사람의 늙고 병 들어감을 목격하고 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마지막 순간을 지켜보고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딸 최현숙이다. 최현숙은 늙고 병 들면서 변해가는 어머니를 천일 동안 지켜봤다. 그리고 결국 어머니와 죽음으로 이별해야 했다. <작별일기>는 평범한 사람의 삶이 끝나는 과정에 대한 기록이다. 최현숙은 작별과정의 한 복판에서 겪었던 당혹과 난처함을 미화하지 않은 채 사실 그대로 낱낱이 기록했다. 이 천일간의 기록은 딸이 썼다는 의미에서 독특하고, 누구나 겪고 나면 일부러 잊어버리거나 그런 일 없었다는 듯 시침이 떼고 싶은 인간 삶의 마지막 장면을 텍스트로 옮겼다는 점에서 용기 있고 또한 진귀하다. 한 개인의 마지막 모습에 대한 꼼꼼한 기록 속에 최현숙은 또한 인간의 존엄성과 의료윤리에 대한 질문과 효로 치장되어 가족에게 내 맡겨진 돌봄노동의 현실에 대한 분석과 자본주의적 시장논리에 의해 작동하는 실버산업에 대한 문제제기까지 담아냈다. 이 책은 가장 사적인 기록이 공적인 관심과 교차할 수 있음을 입증하는 가장 적절하고 탁월한 사례이다. 평범한 인간이 죽음을 맞이하는 과정에 대한 기록인 <작별일기>는 글로 쓰인 <오르낭의 매장>이라 할 수 있다.

노명우 아주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니은서점 마스터 북텐더
노명우 아주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니은서점 마스터 북텐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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