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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nelogue] 이름의 역사, 82년생 김지영
[Cinelogue] 이름의 역사, 82년생 김지영
  • 교수신문
  • 승인 2019.11.01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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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형 동국대 영화영상학과 교수
정재형 동국대 영화영상학과 교수

1960, 70년대 서구의 페미니즘은 급진적이었다. 남성과 여성의 이분법을 통해 남성을 공격하고 여성이 남성의 기득권을 획득하고자 한 운동이었다. [이갈리아의 딸들](1977)이 그 대표적인 책이다. 가상의 국가를 만들어냈고 그 안에서 사회리더, 영웅들은 다 여성이다. 그러다  역차별 담론이 나오면서 이번엔 남성이 여성을 공격하기 시작한다. 영화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1979)에서 이혼한 남성은 가끔씩 전아내를 만나고 양육권소송을 치룬다. 그는 여성에게 양육권 권리를 양도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아버지의 도움을 받으며 자라나는 아이는 집을 버린 엄마를 증오한다. 영화는 이 세상에서 여자가 없어도 남자가 다 할수 있다는 논리를 펼친다. 출산을 제외한 모든 일을 다 할수 있다는 절대논리를 펼친다. 이러한 남성의 분노는 6,70년대 전투적 페미니즘이 너무 강하게 남성들을 가격했기 때문에 나온 반작용현상이라고 본다. 

그렇게 싸우면서 발전해온 양성평등이 지금은 어떻게 변해 있을까. 양성평등이 그 목적에 도달했다면 <82년생 김지영>이 소설이나 영화로 나올 리 없다. 여전히 양성은 불평등하다. 요즘 같이 책 안팔리는 시대에 100만부 이상의 베스트셀러가 되고, 영화도 개봉하기 전부터 예매율 선두를 달리더니 개봉후 흥행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현상을 너무 과신해서도 안되지만 소홀히 취급해서도 안된다. 지금 시대의 민심을 일부 반영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영화는 센세이셔널한 가치로 말하면 소설의 수십배는 된다. 소설 <도가니>가 조용히 독자의 파문을 불러일으키는 반응이었다면 영화 <도가니>는 실화를 들춰내어 과거 공소시효가 끝난 실화사건까지 들춰내었다.  당시 재판을 했던 판사들이 신문에 과거의 잘못을 양심고백 하는 한편 국회의원들은 이 때를 놓칠새라 부랴부랴 서둘러 일명 도가니법을 통과시킨다. 미성년자 장애인에 대한 성범죄는 설령 시효가 지났더라도 처벌할 수 있게 한다는 취지다. 그런 점에서 영화는 선동성이 강한 매체다. 마음에서 마음으로 은근히 감동을 전파시키는 성격이 아니라, 북치고 장구치며 눈물을 뿌리고 성토를 해대는 강한 호소력과 시위성을 갖고 있다. 

그래서 말을 조심해야 하지만 제목만큼은 꼭 언급해야 하겠다. 왜 주인공의 이름일까. 그건 중요하다. 82년생 김지영. 인간은 시간의 번호표를 달고 살아간다. 82년생은 특별한 해를 의미하면서 동시에 한국역사의 한 지점이다. 그 시기를 떠올리면 사회가 보이고 역사가 보인다. 그 시기에 인간 김지영이 있었다. 같은 해에 태어난 김지영이란 이름이 주는 신호는 유일한 존재, 존중받아야할 존재라는 의미를 준다. 

나라는 존재는 동등하니까. 그 이름 어디에도 차별이라는 단서는 없으니까. 반면 과거 할머니들의 이름은 차별이었다. 순이, 갓난이 등. 성도 없고 이름도 남성과는 다른 소박한 이름들이었다. 나무나 풀, 강아지 이름 같았다. 친근감이 있어 좋았으나 사람 취급을 받지 못했던 차별적인 이름이었던 것은 확실하다. 불과 100년전만 해도 이땅에 여성들의 이름은 없었다. 작가는 책의 제목을 태어난 시간과 이름으로 정하면서 그런 역사성에 바탕을 둔 일갈을 해주고 싶었는지 모른다. ‘나는 여러분과 동등한 나입니다. 나를 존중해주세요’ 

1982년을 기점으로 이전과 이후 한국사회는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에 있어서 어떤 변화를 보이는가. 이 작품은 그것을 사람들에게 생각하게 한다. 과거처럼 여성이 남성의 권력을 전복시키고자 하는 급진성으로 읽을 필요는 없다. 이 작품은 오히려 그 변화를 읽게끔 한다. 조금씩, 그러나 아직은 더딘 역사적 변화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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