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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교육 후진국…대학 공공성 강화 정부가 나서라"
"고등교육 후진국…대학 공공성 강화 정부가 나서라"
  • 허정윤
  • 승인 2019.11.01 10: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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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대학노조 창립 20년만에 첫 총파업 결의대회
국립대 통합 네트워크·공영형 사립대 정책 요구

전국대학노동조합에 속한 대학 노동자들이 대학·고등교육이 문재인 정부의 공약 불이행과 잘못된 정책으로 학령인구 감소 시대에 대응하지 못하고 위기에 직면해 있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고등교육 공공성 강화를 위한 중장기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 30일 대학노조가 ‘대학산별 총파업·총력투쟁 결의대회’를 서울 파이낸스센터 앞에서 열었다. ⓒ허정윤
지난 30일 대학노조가 ‘대학산별 총파업·총력투쟁 결의대회’를 서울 파이낸스센터 앞에서 열었다. ⓒ허정윤

집회에 참석한 대학 교직원을 비롯한 노동자 1,800여 명(주최 측 추산)은 ‘3주기 대학역량진단평가 방식 전면 재고·중단’, ‘대학 공공성 강화를 위한 교부금법 제정’, ‘국립대 통합 네트워크와 공영형 사립대 정책 시행’, ‘국립대학(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등을 요구했다.

대학노조는 전국 단위의 산별노조로 1998년 창립해 147개 대학에서 약 1만 명의 조합원들이 활동하고 있다. 대학노조는 창립 20년 만에 처음으로 평일 결의대회를 열어 고등교육정책의 대전환을 정부에게 촉구했다.

연대사를 하기 위해 연단에 선 홍성학 전국교수노동조합 위원장은 “벚꽃 피는 순서대로 대학들이 문을 닫고, 학생들이 사라진 자리에는 대학 재정위기와 고등교육의 질 하락, 대학 노동자들의 불안한 삶이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초등학교는 교사 1인당 학생 수가 줄어서 교육의 질이 더 높아졌으며, 이 같은 모습은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에 따라 정부의 재정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설명했다.

ⓒ허정윤
대학노조의 각 지부장들이 연단에 올라 발언하고 있다. ⓒ허정윤

현재 한국의 고등교육재정은 ‘OECD 교육지표 2019’에서도 알 수 있듯이 고등교육부문 공교육비 중 정부의 재원 비율은 GDP 대비 0.7% 수준으로 OECD국가 평균 0.9%에 못 미치고 있는 실정이다.

홍 위원장은 “OECD 국가 중 우리나라만큼 고등교육을 사학에 맡겨놓고 국가의 책임을 회피한 나라는 일본뿐”이라며 “어떤 나라든지 교육 공공성 강화를 위해서는 정부의 노력과 재정지원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재인 정부가 대안으로 제시한 ‘한국형 네트워크 대학 구축’과 ‘공영형 사립대 설립’은 묘연한 상태다. 공영형사립대 관련 예산은 기획재정부의 반대로 2년 연속 전액 삭감된 바 있다. 대학노조에 따르면, 80~90%가 국공립대학인 유럽 등 OECD 국가들과는 달리, 우리나라는 대학의 88%가 사립대학이기 때문에 고등교육 비용이 학생 등록금 부담으로 전가됐고, 대학이 수도권 집중과 함께 서열화됐다고 지적한다.

대학노조는 “대학들은 최근 10년 기업식 구조조정을 거쳐왔고 지속적인 학령인구 급감으로 재정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서울·수도권 중심 입학지원이 수직적으로 서열화돼, 대학 입학생 감소는 주로 지역대학에서 일어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대학들은 지속적 학령인구 급감으로 재정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교육부는 지난 8월 6일 대학혁신지원방안 발표에서 향후 더 빠른 속도로 학령 인구가 줄어들 것이라고 발표했다. 학생 감소는 서울·수도권 외 지방에서 더 가속화 할 전망이다. 학생 등록금으로 대부분 재정을 충당하고 있는 학교들로서는 그 위기감이 더 큰 상태다. 대학노조는 “이렇듯 대학의 위기가 점점 심화하고 있고 수년 내에 고등교육 기반 붕괴로까지 이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 임기가 반환점을 지나고 있지만 공약했던 고등교육재정지원 OECD국가 수준 확대, 공영형 사립대, 대학서열화 해소를 위한 대학 간 통합네트워크 등 여러 고등교육정책이 진척되지 않았다고 강력하게 비판했다.

교육위 여영국 정의당 의원이 연대 발언을 하고 있다. ⓒ허정윤
교육위 여영국 정의당 의원이 연대 발언을 하고 있다. ⓒ허정윤

이날 연대사 발표를 위해 자리에 함께한 교육위 소속 여영국 정의당 위원은 “어느 기관보다도 (대학 문제는) 국회에서 가장 중심적으로 다뤄야 하는데, ‘조국 국감’으로 끝나고 말았다”며 “우리 청년들이 분노했던 입시제도의 불공정 문제 바로 오늘 여러분들이 모여있는 이 자리에서 외치고 있는 대학의 공공성과도 멀지 않은 이야기”라고 말했다.

여 의원은 대학평가를 통한 구조조정보다도 이제 고등교육도 정부가 전면적으로 책임을 지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내년도에도 공영형 사립대학을 위한 예산은 책정되지 않았다.

이날 집회에서는 3주기를 맞이한 대학역량진단평가와 대학 혁신지원사업이 대학을 등급으로 나눠 서열화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시가행진 중인 대학노조 ⓒ허정윤
시가행진 중인 대학노조 ⓒ허정윤

홍성학 전국교수노동조합 위원장은 “우리나라에는 우수 대학은 없다”며 “부실대학, 더 부실대학, 덜 부실대학뿐”고 명명했다. 홍 위원장은 “교육부가 재정지원을 미끼로 각종 서류를 만들게 하고, 이런 가운데 대학이 학생충원율, 취업률에만 고심할 뿐 대학의 민주화와 질 향상에는 신경을 쓰지 않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어 “고등교육법 28조에는 대학의 목적은 ‘학문’을 하는 것에 있는데도 교육부가 스스로 이를 망가뜨리도록 유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홍 위원장은 현재 대학 구성원들의 자존감은 무너졌고, 동시에 대학의 공공성·민주성·정체성·자율성도 함께 망가졌다고 표현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기승전‘대학’이며 대학 구성원들이 연대의 마음을 가지고 투쟁에 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대학생들도 집회에 참여해 온전한 학습권 보장과 정부의 비리 사학 척결, 고등교육 혁신에 의견을 보탰다.

이민하 전국대학학생회네트워크 공동의장(이화여대 학생회장)은 “지난 5월 유은혜 교육부장관은 문재인 정부 3년 차를 맞아 산학혁신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말했지만 결국 혁신의 내용은 ‘구조조정’과 ‘기업연계’”였다며 이는 진정한 고등교육혁신과 거리가 있다고 지적했다.
백선기 전국대학노동조합 위원장은 대회사를 통해 대학은 한국사회의 미래를 담보하는 곳이자 지역 균형 발전의 근간이라고 표현하며 “현재 대학의 위기는 정부의 잘못된 교육정책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이날 모인 조합원들은 현재 봉착한 ‘위기’ 때문에 고등교육 체질 전환의 ‘기회’를 얻었다는 데 동의했다.

대학노조는 오후 3시 40분 경 광화문을 거쳐 효자치안센터 쪽으로 행진했다. 이어 ‘고등교육 정책 전면 전환 요구서’를 청와대에 제출했다.

허정윤 기자 verit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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