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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학비리의 진정한 ‘졸업’을 위하여
사학비리의 진정한 ‘졸업’을 위하여
  • 허정윤
  • 승인 2019.11.01 10: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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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지대 10년 투쟁’ 영화 ‘졸업’ 시사회

“한 사건이 많은 사람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기도 해요” 다큐멘터리 영화 <졸업>의 박주환 감독의 말이다. <졸업>은 학생회의 중심에서 활동한 이승현, 박주환, 윤명식, 전종완을 중심으로 서사를 이어간다. 네 사람과 함께한 교수·직원의 끈끈한 연대가 스크린을 114분 동안 수놓았다.

영화 '졸업'에 출연한 (왼쪽부터) 박주환 감독, 전종완 씨(상지대 07), 박병섭 명예교수, 진광장 교직원(상지대 88)이 언론 시사회에 참석해 질문에 답하고 있다. ⓒ허정윤
영화 '졸업'에 출연한 (왼쪽부터) 박주환 감독, 전종완 씨(상지대 07), 박병섭 명예교수, 진광장 교직원(상지대 88)이
언론 시사회에 참석해 질문에 답하고 있다. ⓒ허정윤

상지대 비리의 역사는 박정희 정권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김문기 씨는 박정희 정권 시절에 원주대에 임시이사로 파견됐다. 그는 1974년 이사장에 올라 재단을 청암학원에서 상지학원으로 바꿨다. 영화는 2000년대 들어서부터 시작한 ‘김문기 퇴진운동’을 주 골자로 하지만, 상지대의 투쟁은 92년부터 시작되어 2017년경에 끝난 것이나 다름없다.

<졸업>은 지난 29일 오전 서울 용산아이파크몰 CGV에서 언론 선공개 되었다. 언론 시사회 GV(관객과의 대화)에는 상지대 학생으로도 출연하며 연출을 맡은 박주환 감독, 전종완 전 총학생회장(2015년 역임), 박병섭 명예교수(전 부총장), 진광장 교직원(상지대 88학번)이 참석했다. 이들은 저마다의 자리에서 겪은 투쟁의 기억을 되짚어 보고, 학내 구성원들이 함께 이룬 성과와 관련해 이야기를 나눴다.

영화 <졸업>은 1993년 사학비리로 구속된 이력이 있는 김문기 씨가 이명박 정권이 되자 사학법 개정으로 다시 학교에 돌아온 시점부터 2017년 8월 ‘상지대 제2의 민주화’가 이루어지는 과정을 보여준다.

박 감독은 “처음부터 영화로 만들겠다고 생각하고 찍은 것은 아니다”라며 웃어 보였다. 다만 <졸업>이라는 제목을 지은 이유를 말하며 특별히 영상을 전공하지 않은 자신이 카메라를 든 이유를 설명했다. 박 감독은 “학교를 졸업 했지만, (생각이) 정리가 잘 안 됐다”며 영화는 투쟁의 기록이기도 하지만 ‘다음’으로 나아가는 하나의 길이라고 말했다.

박주환 감독 ⓒ 허정윤
박주환 감독 ⓒ 허정윤

영화 초반부, 박 감독은 덤덤한 말투로 “학교의 문제를 학교의 주인인 학생들이 그저 지켜볼 수는 없었다”고 말한다. 영화는 학교로 돌아온 김문기 씨 편에 선 교수·교직원과 이들에 대항하는 학내 구성원들의 대립을 그린다. 대부분의 학내 구성원들이 학생들과 뜻을 함께했지만 소수 부역자들의 힘은 강했다. 김문기 씨는 영화에서 그들의 비호를 받으며 자주 얼굴을 비추기만 할 뿐, 결코 학생들과 ‘소통’하지 않는다.

2011년 상지대 부총학생회장으로 활동한 이승현의 절규로 시작해 박주환, 윤명식, 전종완으로 이어지는 학생들의 비리사학 퇴진운동은 2016년 촛불혁명으로 바뀐 정권에서야 끝낼 수 있었다.

상지대 구성원들에게 상지대는 한국을 축소한 ‘작은 사회’와도 같았다. 2014년에 학생회장을 맡았던 윤명식 씨는 영화에서 “대학에서 세상의 다양한 면을 알게 됐다”고 회상한다. 윤 씨는 총장 사퇴를 요구하며 간 자리에서 교수에게 뺨을 맞기도 하고 단식을 하다 쓰러지기도 한다. 영화 내내 윤명식 씨의 머리카락은 삭발 투쟁에 남아나지를 않는다.

전종완 씨는 상지대를 ‘배움터’에서 비리사학의 ‘놀이터’로 만든 사람들에게 굴하지 않는다. 그는 이사회 사퇴를 요구하며 학생들의 동의 아래 36일간의 수업 거부 운동을 진행했다. 하지만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생각에 학교 건물에 올라가 극단적인 선택을 기도하기도 했다.

때로는 ‘얼굴 찌푸리지 말아요’ 노래에 맞춰 춤추며 투쟁하고, 때로는 그 누가 봐도 무모한 선택을 해도, 그들의 ‘꿈’은 늘 한결같았다. ‘상지대의 민주화’와 ‘학교를 학교답게’ 만드는 일. 그리고 그 일은 93년의 승리를 간직하고 10년간 투쟁해온 이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학생들이 오랜 시간 맞설 수 있었던 건 학생들과 뜻을 함께한 교수·교직원의 연대도 있었기에 가능했다.

GV에서 진광장 교직원은 자신이 학생으로 ‘상지대 제1민주화’를 위해 활동했던 기억이 있었기에 두 번째 투쟁에서도 버틸 수 있었노라고 회상한다. 그는 “김문기 씨가 떠나는 것도 봤고 다시 복귀하는 것도 봤다. 다시금 (그가) 쫓겨나는 모습을 본 전례 없는 일을 겪었다”며 “다시금 ‘대학 민주화의 성지’라는 현수막을 걸고 민주 사학으로 재건하기 위해서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

상지대의 사례는 비리사학과 싸우고 있는 많은 학교에 교보재다. 실제로도 상지대로 전화를 걸어 어떻게 싸우면 되는지 문의하는 학교들이 많다. 진 교직원은 “어느 한 단체가 싸워서 이길 수 없고 교수·학생·직원이 똘똘 뭉쳐야만 대학 자치를 이룰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박 감독은 “학교에서 안정적인 지위를 가지고 있는 교수님들이 투쟁에 참여하기는 쉽지 않은 결정”이라며 뜻을 함께해준 교수들에게도 감사를 표했다. 이어 목표는 ‘비리사학 퇴진’으로 같지만 싸움의 방식이 선 자리에 따라 다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박병섭 교수 ⓒ허정윤
박병섭 교수 ⓒ허정윤

박병섭 명예교수는 “당시 부총장을 비롯한 10명도 안 되는 교수들만 (김문기 씨 측에) 붙었지 대부분 교수는 학생들과 뜻을 함께했기에 절대 위축되지 않았다”고 소감을 전했다.

이제 상지대에서 김문기 씨의 자리는 없다. 하지만 상지대에 산적한 일들은 남아있다. 그가 총장으로 복귀했었던 2014년경, 상지대의 신입생 충원율일 비롯해 재학생 등록률이 떨어졌다. 이어 2016년 대학구조개혁 평가에서 최하위 등급은 ‘D-’를 받게 됐고, 상지대는 정부 재정지원 제한 대학에 이름을 올린 바 있다.

박 교수는 과거 상지대의 상황을 보고도 외면했던 정부와 교육부를 비판했고, 지금도 정권은 바뀌었지만, 재정지원을 빌미로 학내 민주화를 막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 교수는 3주기 대학역량진단평가의 맹점을 꼬집었다. 그는 “교육부는 재단에서 사학비리가 발생하면 (해당 학교에) 페널티를 주는데, 학교는 그것을 악용해서 비리사학을 비판하는 학내 구성원들의 목소리를 막는다”고 비판했다. 학교의 문제점을 말하고자 하는 구성원들 때문에 마치 학교가 감사를 받을 수 있다는 식으로 회유한다는 말이다.

영화는 상지대를 바라보는 내부의 시선과 외부의 시선을 굳이 구별하려고 하지는 않지만,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정권과 교육부가 어떤 모습으로 상지대를 대하는지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또한 <졸업>은 투쟁의 과정과 그 의미를 학생 주인공들을 중심으로 이어간다.

2010년 당시, 사학분쟁조정위원회 결정에 반발해 교육과학기술부 앞에서 주저 앉은 이승현 씨. ⓒ 영화 '졸업' 중
2010년 당시, 사학분쟁조정위원회 결정에 반발해 교육과학기술부 앞에서 주저 앉은 이승현 씨. ⓒ 영화 '졸업' 중

박 감독은 긴 시간 투쟁에서 힘들었던 기억이 무엇인지 묻자 “탄압보다 고립이 무서웠다”고 말했다. 반대로 힘이 된 말이 있는지 묻는 말에 전종완 씨는 “한 번은 학교에서 집으로 전화를 걸어 ‘당신 자식이 하고 다니는 일을 알고 있냐’고 말했을 때, 부모님이 다 큰 성인이 스스로 판단할 일”이라고 답했던 일을 떠올렸다.

이들은 연대의 목소리로 힘을 냈고, 힘들수록 서로의 손을 놓지 않고 투쟁했던 기억 덕분에 진정한 ‘졸업’을 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졸업>은 ‘투쟁의 역사’지만 ‘위로의 박수’와 같은 영화다. 박 교수는 “(이 영화는) 평범한 학생이 동료들과 투쟁하면서 스스로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라며 “투쟁은 절대 거창하지 않고 평범한 사람들이 힘을 합치면 역경을 이길 수 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박 감독은 마지막으로 관객들이 <졸업>을 너무 무겁게만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 감독은 “그저 영화를 보고 작은 용기와 희망을 조금이라도 얻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전종완 씨도 “구성원들이 내부에서 어떤 문제를 묵과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회 구성원들이 사립대학의 문제를 보면 쉽게 지나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했다. 그는 “그 사건이 곧 내 일이 되고 우리의 일이 될 수도 있다”고 힘줘 말했다.

상지대 정상화를 위해 투쟁했던 사람들의 이야기이자, 인간이 인간됨을 찾아가는 여정을 그린 영화 <졸업>은 오는 11월 7일 개봉한다.

허정윤 기자 verit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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