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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이 삶을 바꾸거나 삶이 음악을 바꾸거나
음악이 삶을 바꾸거나 삶이 음악을 바꾸거나
  • 교수신문
  • 승인 2019.11.01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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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남북 뮤직톡 Music Talk
오늘의 톡 : 음악을 통해 ‘변화된 삶’을 산 사람의 사례가 있을까요?
김형준/경영&뮤직컨설턴트
한국안전코칭진흥원 부원장
M&P 챔버오케스트라 고문
출처: 픽사베이
출처: 픽사베이

“불가능, 그것은 사실이 아니라 하나의 의견일 뿐이다”라는 말은 2018년 초에 개봉된 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이란 영화에 나오는 대사이다 (무함마드 알리가 한 말 인용). 줄거리는 한물간 전직 복서 '조하'(이병헌)가 오래 전 헤어진 엄마 '인숙'(윤여정)과 재회하고 서번트증후군을 앓는 동생 '진태'(박정민)를 만난다. 입만 열면 어눌한 말투로 “네~" 로 시작하는 심상치 않은 동생을 보자 한숨이 절로 나오며 숱한 갈등을 겪지만, 캐나다 갈 경비 마련을 위해 참고 지낸다. ‘조하’는 동생 ‘진태’가 피아노에 천부적 재능을 지니고 있음을 알게 된 후 ’동생을 위해 헌신하게 된다. ‘진태’가 마지막 장면에서 연주하는 차이콥스키 피아노협주곡을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진한 감동을 준다.

역경 속에서도 음악을 통해 변화된 삶을 산 대표적인 음악가로 ‘교향곡의 아버지’ 하이든을 꼽을 수 있다. 그는 교향곡의 형식을 확립하였으며, 비인 고전파 3인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중 한사람이다. 이 시기에 서양음악 형식의 기초를 공고히 하였으며 High Period라고 한다. 하이든은 104개의 교향곡을 작곡하였고 (놀람, 고별, 기적, 런던, 시계, 군대 등), 현악4중주 (종달새, 황제), 첼로 및 트럼펫 협주곡 (MBC 장학퀴즈 시그널 음악으로 사용), 오라토리오 (천지창조, 사계) 등 명곡을 남겼으며 베토벤을 가르치기도 했다고 한다.  

그는 1732년 오스트리아 시골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마차 수리공, 어머니는 요리사. 어린 하이든이 음악에 소질이 있음을 이웃에서 알게 되어 프랑크란 사람이 음악을 가르쳐 주었고 8세 때 스테파노성당 합창단에서 노래하였으며 포르포라로부터 음악 이론을 배웠다. 변성기로 합창단을 나와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하며 어렵게 살았는데 1761년 헝가리 귀족 에스테르하지 가문의 궁정악단을 맡아 안정적인 음악활동을 하게 된다. 인품이 온화하여 별명이 파파였으며 단원들이 그를 존경하였다. 

당시 악단 단원들은 귀족 일정에 맞추어 연주행사를 다녔기 때문에 개인 휴가를 낼 수 없었다. 하이든은 휴가시즌에 가족들과 떨어져야 하는 단원들의 심정을 헤아려 ‘고별’이란 교향곡을 작곡하여 연주하였는데 귀족이 단원들의 심정을 알아차리고 휴가를 보내 주었다는 일화가 있다. 사회 조직에서 이를 인용, 구성원들이 직설적인 의견 표명보다는 간접적인 방식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고 인용하기도 한다. 그는 1791년 영국에서 활동하다 말년에 귀국한다. 그에게 음악이 없었더라면 평범한 사람으로 남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교향곡 발전과정을 살펴보면 하이든 이전에 삼마르티니, 욤멜리, 슈타미츠 등의 작곡가들이 교향곡을 작곡하였으며 (훌륭한 곡들임),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을 거쳐 고전파 시대 교향곡이 완벽한 모습을 갖추게 된다. 고전파 음악을 완성한 베토벤은 낭만파 길을 열고 브람스, 말러, 베를리오즈, 멘델스존, 차이콥스키 등 많은 작곡가들이 유명한 교향곡을 남긴다.

차이콥스키는 정규 음악수업을 받지 못했다. 법률학교 재학 시 간헐적으로 성악, 피아노, 화성법 레슨 받은 것이 전부다. 오케스트라와 오페라 관람을 통해 부족한 음악교육을 보충한다. 법무부 재직 시 상트페테르부르크 음악원 야간반에 입학한다. 아버지 뜻대로 법무부 관료가 되었지만 법무부 서기직은 흥미롭지 못했다. 어느 날 넋을 잃은 채 문서를 찢어 씹어 먹다가 한 장도 남지 않게 되자 정신을 차린 일화도 있다. 그는 공무원직을 사임, 상트페테르부르크 음악원 주간반으로 옮겨 음악에 몰두하게 되고, 이후 백조의 호수, 호두까기인형, 비창 교향곡, 바이올린 및 피아노협주곡, 현을 위한 세레나데 등 수많은 명곡을 남긴다.

음악을 전공하지 않았음에도 음악사를 장식한 인물들로 1856-1870년 사이 활동한 러시아 5인조 <발라키레프, 림스키코르사코프, 무소르스키, 보로딘, 큐이>를 들 수 있다. 아마추어라 부를 수 없는 천재 작곡가들이며 국민악파의 키워드로 꼽힌다. 모네의 그림 '해돋이'가 인상파 사조로 미술계의 변화를 가져온 것과 유사하다(여기서 인상이란 Impression, 감명이란 뜻임).

이들은 정식으로 음악교육을 받지 않았다. 최소한도 음악가가 되기 위한 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 발라키레프는 수학 전공이었고, 화학을 전공한 보로딘은 화학자로 활약하였으며. 큐이는 장교로서 축성법을 가르쳤고, 무소르스키는 육사를 졸업하였으며, 림스키코르사코프는 해군장교였다. 이들의 직업은 음악과 관련이 없고 외국에서 음악을 배운 경험조차 없다. 서유럽음악과 해외 경험이 없는 것이 러시아 민족 색채 집중에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흥미로운 점은 음악활동을 제외하면 이들은 나이, 성장 과정, 직업에 공통점이 없다는 것이다.

5명이 모두 모인 1862년, 림스키코르사코프 나이는 18세, 나머지는 20대. 이들은 글린카의 영향을 받아 음악을 시작, 러시아 음악을 세계적인 반열로 올려놓았고, 쇼스타코비치, 스트라빈스키, 프로코피예프 같은 후대 작곡가들에게도 영향을 주었다. 반드시 음악이 아니더라도 이처럼 젊은 시절에 비전을 세우고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과 함께 새로운 세상을 개척해 나간다면 기쁨과 보람은 어떤 것들과도 비견할 수 없을 것이다.

음악을 전공하지 않더라도 음악세계에 기여한 분들이 적지 않다. 가곡 명태를 작곡한 변훈선생은 외교관 출신이다. 합창을 위시한 다양한 음악활동은 사회 변혁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음악을 통해 새로운 삶을 개척하고 치유를 받으며 건강한 삶을 이루어 나가는 사람들을 주위에서 많이 본다. 음악을 통해 자신과 사회를 변화시켜 나가는 새로운 계기를 마련해 보자. 결코 후회하지 않으리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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