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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엔 멀고도 가까운 한국인의 삶이 있다
경복궁엔 멀고도 가까운 한국인의 삶이 있다
  • 교수신문
  • 승인 2019.11.01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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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어떻게 전시될까
궁내 국립민속박물관 조선후기 삶 전시
하루-한해-평생 3가지 테마로 깊은 인상
잃어버린 ‘옛것’이면서도 현대와 동질감
박찬희의 박물관 여행
박찬희 박물관 칼럼니스트

넓은 경복궁 안 이쪽저쪽 두 곳에 박물관이 자리잡았다. 광화문 왼쪽에 있는 국립고궁박물관과 경복궁 안 쑥 들어간 곳에 있는 국립민속박물관이 그곳이다. 그런데 국립민속박물관은 명성에 비해 대외적으로 널리 알려진 유물을 떠올리기는 쉽지 않는다. 대신 이곳은 특정한 유물이 아니라 사람의 삶이라는 흥미로운 전시 주제와 그것을 오롯이 담아낸 전시실 자체가 인상적이며 매력적이다. 

사람의 삶을 전시한다고 했을 때 무엇을 기준으로 삶을 나눌 수 있을까? 사람에게 꼭 필요한 의식주나 전통사회에 있었던 신분, 혹은 희로애락을 기준으로 삼을 수 있다. 이곳에는 여러 가지 기준 가운데 보편적이고 설득력 있는 시간을 기준으로 삼아 사람의 삶을 하루, 일 년, 일생으로 나누어 전시하였다. 하루에 어떤 일을 하는지, 일 년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인간이 태어나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어떤 일을 겪는지를 중심 내용으로 삼았다.

자유로운 진열장의 활용 ⓒ박찬희
자유로운 진열장의 활용 ⓒ박찬희

전시는 세 주제에 따라 전시실 세 곳에서 펼쳐진다. 가장 먼저 접하는 곳은 하루를 다룬 <한국인의 하루> 전시실이다. 전시실의 입구에는 해시계인 앙부일구를 전시하여 이곳이 하루를 다룬 공간이라는 것을 암시하였다. 이 전시실을 지나면 일 년을 다룬 <한국인의 일상>이 나타난다. 전시실 입구에는 옛 마을 어귀에 놓였던 장승이 세워져 조선의 어느 한 마을로 들어가는 듯한 인상을 받는다. 세 번째 전시실은 <한국인의 일생>이다. 전시실 앞부분에는 금줄을 쳐 놓아 아이의 탄생과 더불어 일생이 시작된다는 것을 알려준다.

하루, 일 년, 일생의 전시는 주로 조선 후기 이후 사람들의 삶을 소재로 삼았지만 전시를 보는 사람들은 큰 거리감을 느끼지 않는다. 지금 사람들의 삶과 상당히 다른 부분도 있지만 일부는 불과 수십 년 전까지 있었던 문화였고 또 일부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게다가 삶의 내용은 달라도 기본적인 생활의 흐름은 예나 지금이나 비슷한 점이 많다. 또 전시물 가운데 일부는 다양한 시각 매체로, 또 일부는 경험으로 접해서 낯설지 않고 익숙하다. 이 부분이 다른 박물관과 다른 이곳의 특징이자 강점이다.

삶을 주제로 전시했기 때문에 전시 공간의 구성이나 진열장 내부의 구성도 이에 맞춰졌다. 일반적으로 박물관에서는 한 진열장 안에 유물을 일렬로 늘어놓는 방식을 자주 사용한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이런 방식으로 진열하기도 하지만 진열장의 크기를 다양하게 만들었으며 특히 방과 같은 진열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였다. 이러한 개성적인 진열장 안에 여러 가지 유물을 다양하게 배치해 시원하고 활발한 분위기가 도드라진다. 

마을같은 전시실. ⓒ박찬희
마을같은 전시실. ⓒ박찬희

때로는 삶을 역동적으로 담아내기 위해 전시물을 과감하게 배치하였다. 전시실을 걸어가다 느닷없이 우물을 만나기도 하고 보물찾기처럼 우연히 눈을 돌리다 장독대를 발견하기도 한다. 또 방 안에서 베를 짜는 장면을 목격하기도 하고 방금 옛 그림에서 튀어나온 듯한 성대한 혼례식을 마주하기도 한다. 마루에 앉아 한옥을 살펴보기도 하고 커다랗고 화려한 상여에 눈이 번쩍 뜨이기도 한다. 때로는 직접 놀이기구를 가지고 놀기도 한다. 전시실에서 뜻하지 않게 만나는 전시물이나 직접 해볼 수 있는 장치는 자칫 단조로울 수 있는 관람 분위기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세 전시실은 옛 시골 마을 같은 느낌이다. 크고 작은 진열장들은 마을을 이루는 다양한 집들이고 진열장과 진열장이 만드는 길은 구불구불 이어진 마을길이다. 곧게 뻗은 길이 나오는가 하면 급하게 꺾인 길도 나오고 휘감아 도는 길도 나온다. 넓은 대로가 나오는가 싶더니 고샅 같은 좁은 길로 이어진다. 길에서 만나는 풍경은 한결같지 않고 낯설고 새롭다. 대부분의 박물관 전시실과 달리 이곳에서는 마을길로 산보를 나가듯 전시실을 걷는 맛이 좋다. 

박물관을 살펴보는 일이 즐겁다 해도 힘이 드는 일이다. 이곳에서는 마을 곳곳에 쉼터가 있는 것처럼 전시실에 여러 곳에 잠시 쉴 수 있는 시설을 마련했다. 한옥에 올라가 마루에 쉬기도 하고 전시실 모퉁이를 돌면 나오는 툇마루 같은 의자에 앉기도 하며 평상 같은 곳에서 잠시 다리를 뻗기도 한다. 마을의 쉼터에서처럼 일행과 도란도란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거나 혼자일 때는 잠시 생각에 빠지기도 한다. 

관람자들은 국립민속박물관의 전시를 어떻게 볼까? 세 전시실의 주제인 하루, 일 년, 평생은 시대와 지역을 떠나 어느 사람이건 누구나 겪는 보편적인 주제로 관람자에게 큰 부담 없이 다가간다.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고 해도 삶의 기본적인 시간 단위가 비슷하고 또 생활의 기본적인 틀도 비슷하다. 어린이, 어른, 외국인은 각자 나름대로 전시실을 걸으며 전시가 전해주는 맥락을 읽어내고 지금 자신의 삶에 견주어 옛 사람들의 삶을 살펴보고 같은 점과 다른 점을 찾아낸다. 이곳은 관람자가 박물관에서 소외되지 않고 적극적인 주체가 되기 좋은 곳이다.

호기심을 부르는 전시물. ⓒ박찬희
호기심을 부르는 전시물. ⓒ박찬희

이곳의 전시물은 꼭 설명을 읽어야 이해가 되는 것도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아도 대략 알 수 있는 것이 제법 많다. 또 전시물의 역사적인 맥락을 정확하게 알지 못해도 전시를 보는데 큰 지장이 없다. 또 익숙하고 친근하게 느끼는 전시물을 곳곳에서 만나는 것도 반갑다. 이 전시물들은 대부분 뛰어난 명품으로 꼽히지는 않지만 당시의 생활을 잘 알려준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한때 논과 밭을 갈았을 쟁기는 현역에서 은퇴한 후 진열장으로 들어갔고 베를 짜는 베틀이나 새참을 담던 그릇 역시 마찬가지다. 이곳의 전시물들은 옛 사람들의 땀이 진하게 배어 있는 것들로 관람자가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매력을 지녔다.

보편적인 전시 주제, 친근한 전시물, 마을길처럼 재미있는 동선은 사람들을 자연스럽게 수다쟁이로 만든다. 가장 정열적인 수다쟁이는 모든 걸 신기해하고 궁금한 걸 참지 못하는 아이들이다. “이거 텔레비전에 봤는데. 변사또가 입은 옷이잖아. 허준이다! 저기에서 어떻게 공부를 했어?” 전시물 앞으로 쪼르르 달려가 이리저리 살펴보다 같이 온 부모에게 방금 떠오른 소감을 전하거나 궁금한 걸 묻기에 바쁘다. 마루가 있는 곳을 만나면 후다닥 뛰어올라가 마루에 놓인 책을 읽기도 하고 옛 놀이 도구가 있는 곳에서는 금세 놀이에 빠지기도 한다.

아이들에게 이곳이 텔레비전에 나오는 신기한 세상이라면 중년이나 노년의 어른들에게는 기억을 되살리고 추억을 떠올리는 곳이다. 이곳에 전시된 전시물 가운데 일부는 수십 년 전까지 사용되었다. 어떤 사람들은 항아리에서 고추장과 함께 어머니의 기억을 떠올린다. 소가 끄는 쟁기에서는 봄날 시골의 아련한 풍경이 아른거리고 아이가 태어났을 때 문 앞에 거는 금줄을 보면 가족들 생각이 절로 난다.  

이곳은 혼자 왔을 때는 혼자 보는 맛이 좋고 가족과 같이 왔을 때는 가족과 함께 보는 맛이 좋다. 혼자 와서 전시실을 설렁설렁 다니다보면 한편의 인생 드라마를 보는 기분이다. 지금까지 겪은 일들이 순간순간 떠오르고 마지막 전시실을 나서는 순간 추억 여행을 마친 기분이 든다. 가족과 같이 왔을 때 아이들은 전시물을 보고 쉴 새 없이 질문을 하고 부모는 대답을 한다. 부모는 아이가 겪거나 보지 못한 전시물의 용도나 혹은 전시물에서 떠오르는 기억과 추억을 아이들에게 들려준다. 전시물을 보면서 자기 삶의 한 자락을 돌아보거나 세대 간의 벽을 넘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보기 드문 공간이다.

국립민속박물관 전시실을 걷는 건 사람의 삶을 보는 것이고 잠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것이다. 아이들에게는 호기심을, 청년들에게는 가까운 옛날을, 중장년들에게는 어렸을 때 삶의 한 자락을, 노년들에게는 오랜 옛날인 젊은 시절을 눈 앞으로 불러온다. 

경복궁에는 경복궁만 있지 않다. 사람들의 삶을 담은 국립민속박물관도 있다.

글 박찬희(박물관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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