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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근 교수의 ‘철학자의 가벼움’(33) -영웅의 뜻
정세근 교수의 ‘철학자의 가벼움’(33) -영웅의 뜻
  • 교수신문
  • 승인 2019.10.25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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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보려면 그 주변사람을 보라
정세근 교수
정세근 교수

유소(劉劭)의 인물지(人物志)라는 책이 있다. 중국 삼국시대의 위() 나라의 관리인 유소(189-244)의 저술인데, 인재등용에 관한 변별법을 담고 있다. 어떤 사람을 어떤 자리에 쓸 것인지, 이 어려운 이야기를 정리한 책이다.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라는 이야기가 있다. 여기서 인사가 만사라는 것은 인사과에서 하는 일처럼, ‘어떤 자리에 어떤 사람을 두어야 함을 가리킨다. ‘그 자리에 바로 그 사람이면 좋겠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해서 그 자리에 엉뚱한 사람이 가는 경우가 많다. 엉뚱한 사람이면 가만히만 있으면 좋겠는데, 그런 사람일수록 일을 벌이고 마침내는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많아 걱정이 되는 것이다. 이른바 머리 나쁘고 게으르면 괜찮은데, 머리 나쁘면서도 부지런하면 탈난다는 이야기와 상통한다.

유소의 이야기 가운데 참으로 재밌는 것은 똑똑한 놈은 믿음직하지 못하고, 믿음직한 사람은 똑똑하지 못하다는 주장이었다. 이렇게 비유를 들면 좋다. 그대라면 어떤 경리를 쓰겠는가? 

경리를 하나 쓰는데, 머리가 나빠 자꾸 숫자를 틀린다. 그런데 돈을 떼어먹을 줄도 모르고 정말로 믿음직하다. A. 머리가 좋아 숫자를 틀리는 법은 없다. 그런데 좀 믿음직하지 못하고 배신할 것만 같다. B. 그대라면 A인가, B인가? 그대가 사장이라면 A인가, B인가? 그대가 사장이고 비자금이라도 맡기고 싶다면 A인가, B인가? 그대가 그대의 돈을 맡겨 놓고 싶다면 A인가, B인가?

유소의 생각으로는 사람은 둘 가운데 하나다. 그러니 장소에 따라 인물을 정해야 한다. 똑똑하면서도 믿음직한 사람을 원하는 것은 애초부터 욕심이고 무리라는 생각이다.

여기서 물어보자. 우리 모두가 그리워하는 영웅은 어떤 인물일까?

정약용도 용인(用人)을 말한다. ‘목민심서’, 용인편은 이렇게 말한다. ‘아첨을 잘 하는 신하는 충성스럽지 못하고, 간하기 좋아하는 사람은 배신하지 않는다. (善諛者不忠, 好諫者不偝) 위의 유소의 말과 비슷하다. 입속에 혀처럼 구는 사람은 결국 배신자가 될 것이고, 비록 앞에서는 나쁜 이야기를 많이 해서 속상하게 만드는 사람이 결국은 충성스러운 신하가 될 것이라는 말이다. 이런 공리를 알아두면 실수가 적을 것이란다.

정약용은 목민관에 아부하는 사람은 권력이 있을 때는 잘 모시는 듯하지만 목이 떨어질 때는 온갖 비리를 들춰낼 것이고, 목민관에 쓴 소리하는 사람은 일이 잘못되었을 때 오히려 그를 위해 덮어주려 할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인성이 그렇다는 것이다.

어릴 때 일이다. 어머니가 사람을 쓰는데, 전 주인 욕을 많이 하는 사람을 되돌려 보내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왜냐고 물었더니, ‘그 사람은 이 집을 떠나면 또한 내 욕을 할 사람이다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사람을 볼 때 그 주위에 있는 사람을 보라는 이야기를 한다. 아첨꾼이 주위에 있는 지도자는 그 사람자체가 그런 사람이고, 충직한 사람이 주위에 있는 지도자는 그 사람이 바로 그런 사람임을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이다.

용인술, 어렵지 않다. 첫째, 사람은 모든 것을 못한다. 둘째, 사람 쉽게 바뀌지 않는다. 셋째, 평소 얼굴이 제 얼굴이다.

영웅? ()은 똑똑한 사람, 웅()은 사내다운 사람이다. 똑똑한 놈은 사내답지 못하고, 사내다운 놈은 똑똑하지 못한데, 그 둘을 갖췄다. 그래서 영웅이다. 무식한 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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