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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획일적 지역분권 정책으론 지방 포용성장 불가능”
“획일적 지역분권 정책으론 지방 포용성장 불가능”
  • 김범진
  • 승인 2019.10.25 09: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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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분권=균형발전’은 현실적으로 불가
부유한 지방은 독자적 정책 펼 수 있게
가난한 지역엔 정부가 ‘엔젤투자자’ 돼야
지난 21일 국회의원회관에서 김두관 더불어민주당 의원 주최로 열린 자치분권 전략 세미나에는 한국거버넌스학회, 한국정부학회, 경기연구원 회원들이 참석했다. 사진=김범진 기자
지난 21일 국회의원회관에서 김두관 더불어민주당 의원 주최로 열린 자치분권 전략 세미나에는 한국거버넌스학회, 한국정부학회, 경기연구원 회원들이 참석했다. 사진=김범진 기자

정치권과 학계에서 자치분권을 지역간 양극화 해소와 균형발전의 방안으로 논의하고 있는 가운데, 이미 지역간 격차가 심해진 한국의 경우 종전의 획일적인 분권화 방식으로 포용성장을 이룩하기는 어렵다는 주장이 나왔다.

김석태 경북대 명예교수는 지난 22일 김두관 더불어민주당 의원 주최로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자치분권전략 세미나에 참석해 ‘포용적 성장을 위한 자치분권 확대방안’이라는 제목의 발제문을 발표하며 이같이 밝혔다.

김석태 교수는 “1991년 지방자치 부활과 함께 분권화가 추진된 동시에 수도권에 대한 규제정책이 시행되었음에도 지역간 격차는 확대됐다”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지방의 주도권을 최대한으로 존중하고 보장하는 방향으로 자치분권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부유한 지역에 대해서는 그들이 독자적으로 추진하는 정책의 수용을, 상대적으로 빈한한 지역에 대해서는 해당 지역의 자구노력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을 제안했다.

김 교수는 “자치분권은 포용적 성장이라는 목표 달성에 도움이 된다”고 밝힌 뒤 네덜란드와 프랑스를 그 예로 들었다. 사회안정과 포용 측면에서, 분권국가인 네덜란드가 집권적인 프랑스보다 훨씬 낫다는 것이다. 중앙집권 체제에서는 시도하기 힘든 정책실험을 분권의 맥락에서는 쉽게 시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그러나 “불균형적인 지역발전을 해소하기 위한 처방으로 지방분권화를 요구하는 주장은 지방분권이 균형발전을 이룩할 것이라는 단순한 논리에 근거하고 있다”면서 “중앙집권화가 지역간 불균형을 야기했기 때문에 지방분권이 균형발전을 가져올 것이라 보는 시각은 분권과 분산을 동일시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자인 분권은 중앙-지방 권한 재배분 문제인데 비해, 후자인 분산은 지역간 공간적 경제력 재배분 문제로 엄연히 다르다는 것이다.

분권=균형발전 등식은 잘못

김석태 교수는 “분권이 분산, 즉 균형발전에 가져오는 효과는 다양하다”면서 분권이 균형발전을 가져오는 경우도 있지만, 역으로 불균형발전을 가져올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우리나라의 경우 1995년 이후 지방분권화가 역대 정권의 국정과제로 추진돼 왔지만 수도권의 인구나 경제력의 집중은 더욱 심화되고 있는 실정”이라고 밝혔다.

분권과 균형발전간 관계를 나타낸 그래프. 세개의 선을 통해 분권화의 추진에 따른 균형발전의 결과가 각기 다르게 나타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사진=김석태 교수 제공
분권과 균형발전간 관계를 나타낸 그래프. 세개의 선을 통해 분권화의 추진에 따른 균형발전의 결과가 각기 다르게 나타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사진=김석태 교수 제공

김 교수는 이를 두고 “수도권에 대한 규제의 힘보다 시장경제의 집적의 힘이 훨씬 강력했다는 것”이라고 풀이한 뒤 “지역간 격차가 이미 심해진 상황에서 획일적 분권화로는 균형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이 때문에 지방의 사정에 따라 다른 수준의 권한 이양, 즉 ‘차등적 분권화’가 제안되기도 한다고 소개했다. 이는 지방이 하고 싶은 사안은 지방이 하고, 다른 한편으로 지방이 하고 싶은 일이지만 능력상 스스로 하기 어려운 일은 국가와 공동으로 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는 그러나 “전통적 지방자치권 이론 하에서는 이런 논리가 실현되기 어려운데, 오늘날과 같은 협치 시대에는 이런 논리가 더 이상 적합하지 않다”고 평가했다. 또한 “새로운 지방자치권 이론은 협치시대에 맞게 국가-지방간 권한 공유(공동권)에 근거를 두고 지역의 실정에 맞게 지방이 권한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의견을 밝혔다.

이와 관련 최근 국회헌법개정특별위 자문위원회 지방분권분과 개헌보고서안에는 입법에 대한 국회와 지방의회의 공동 권한이 규정된 바 있다. “입법권은 국민 또는 주민이 직접 행사하거나 그 대표기관인 국회와 지방의회가 행사한다”(제40조)는 내용이 그것이다.

또한 여기에는 국회가 국가존립이나 전국적인 사무에 대한 입법권을 갖지만(제118조 1항) 그 외의 사무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각각 입법권을 갖는다(2항)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안에 따르면 중앙정부의 법률은 지방정부의 법률보다 우선하지만, 지방정부는 지역특성을 반영하기 위해 필요한 경우 중앙정부의 법률과 달리 정할 수도 있다(4항).

지방의 주도권 존중하고 ‘엔젤 투자자’ 돼야

김석태 교수는 이를 언급하며 “이런 공동권 논리 아래에서는 지방의 주도권이 존중될 수 있어 지방적 정책실험이 쉽게 이뤄질 수 있다”고 말했다. 전국적 사안이지만 지역적 필요에 따라 이뤄지는 입법을 통해 지방이 전국적 정책의 실험장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근래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지방 입법의 시도는 서울시의 청년수당, 성남시의 청년배당이다. 하지만 이런 지방의 시도에 대해 중앙정부는 매우 부정적으로 대응했다. 지방의 자체적인 복지사업에 대한 사전적 통제 규정(사회보장기본법 제26조) 등 지방에 대한 통제를 강화해 왔다. 이에 서울시와 성남시는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하는 방법으로 자치권을 수호하고자 했다.

반면 비수도권의 빈한한 지역은 정책을 개발하고 실현하려고 해도 현실적 장벽에 부딪힌다. 지방자치단체의 독자적인 힘만으로는 수행하기 어려운 사업들이 많기 때문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지난 4월 내놓은 예비타당성 조사제도 개편안에서 수도권과 비수도권을 분리하고 비수도권의 경우 ‘지역균형’ 요소의 비중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지역의 주도권은 각자의 사정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부유한 지역은 그 지역의 요구에 맞는 독자적인 정책을 추진할 수 있도록 관용을 베풀면 된다. 반대로 낙후 지방의 자구노력을 살리려면 중앙정부가 한발짝 더 나아가 사업 재원에서 지방정부를 위한 ‘키다리 아저씨’ 아니면 ‘엔젤 투자자’의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김범진 기자 jin@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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