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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규의 아나키스트 열전 - 아나키즘과 민주주의
박홍규의 아나키스트 열전 - 아나키즘과 민주주의
  • 교수신문
  • 승인 2019.10.18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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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민주주의의 뿌리는 아나키즘이다
‘아나키=민주정’이라는 편견이 서양 근대에까지 남아 있어서 독재나 전제를 합리화하고 정당화한다.
‘아나키=민주정’이라는 편견이 서양 근대에까지 남아 있어서 독재나 전제를 합리화하고 정당화한다.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15>에서는 ‘지배자 없음’을 뜻하는 아나키라는 말이 서양에서 5세기 중반부터 사용되었으나, 호메로스의 작품에도 ‘군사 지도자가 없다’는 뜻의 말이 사용되었고, 이어 소크라테스나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 ‘민중의 무법지대’ ‘속박 없음’, ‘방종’, ‘무질서’ 등의 뜻을 갖는 ‘민주정’과 동일시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아나키=민주정이라는 사고는 서양 근대에까지 이어져 프랑스나 미국의 혁명에도 반영되었고, 민주주의를 표면적으로 숭상하는 지금도 그런 사고가 여전히 남아 있어서 독재나 전제를 합리화하고 정당화한다. 한국에서도 최근까지 그런 경험을 했고, 지금도 여전히 그런 생각이 남아 있다. 한국 헌법을 비롯하여 대부분의 나라 헌법이 규정하는 민주주의란, 선출된 지도자가 지배하는 대의민주주의, 간접민주주의를 원칙으로 하고, ‘촛불’처럼 민중이 참여하는 민주주의는 철저히 부정된다. ‘촛불’은 아나키=혼란이고 반민주주의라는 것이다. 

이러한 사고의 뿌리는 그리스 민주정에 대한 엘리트의 반발에서 비롯되었다. 그리스 민주정은 인구의 반을 차지한 노예는 물론이고 여성과 미성년자를 제외한 성인 남성 시민, 즉 전체인구의 10% 정도가 참여한 지극히 제한된 것으로서 민주주의의 원리인 평등의 원칙에 위배되는 것이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마저도 철인정치 등의 엘리트주의를 선호한 호메로스 이후 소크라테스-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의 전통에 의해 배격되어 왔다. 여기서 우리는 엘리트 지배자주의와 비엘리트 민중민주주의인 아나키의 대립을 볼 수 있다. 즉 아나키냐 아니냐 하는 것은 민중이냐 엘리트냐 하는 것이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심각한 현상을 보인 민중을 철저히 배제한 엘리트 정권, 즉 엘리트가 좌우파로 나누어져 권력투쟁을 하면서 보이는 권력의 악순환은 우리의 민주주의 개념에 대한 근본적 차원의 비판적 성찰을 요구한다. 우리가 아나키즘을 검토하는 이유는 바로 그 점에 있다.      

그리스 민주정이 계급과 성에 따른 차별에 근거한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성인 남성 시민 전체의 직접민주주의를 구가한 점에서 근대민주주의의 원리인 간접민주주의에 배치되는 것으로 배척되어 온 점도 엘리트주의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가령 소크라테스 재판에서 자신에게 사형을 선고한 500명의 배심원을 비난한 소크라테스의 태도는, 500명커녕 12명의 배심원에 의한 시민참여재판도 부정하는 엘리트 법조인들의 태도와 다름이 없는 것이다. 하물며 공직자를 학력을 전제한 시험이나 혈연 지연 학연 등의 연줄을 중심으로 한 선거 등에 의해 뽑지 않고, 모든 시민을 대상으로 하여 추첨으로 선발하는 그리스식 민주제도나 르네상스기 피렌체에서 채택한 제도는 배심제 이상으로 반대될 것임에 틀림없다. 

나는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등에서는 국가주의가 유독 강하다는 이유에서 국가주의에 대해 가장 강력하게 반대하는 아나키즘이 더욱 적극적으로 소개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여 왔다. 앞의 연재에서 보았듯이 동아시아에서는 군주정을 부정하는 무군론의 전통이 이어져왔으나, 수 천 년 동안의 대세는 전제군주정이었고 실제로도 전제 세습의 군주와 그가 임명한 엘리트 관료가 백성을 지배했다. 그런 절대군주의 전통이 지금도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에 남아있고, 엘리트주의도 너무나 뿌리 깊어서 시민참여의 직접민주주의적 요소가 어떤 지역보다도 낮다. 그래서 나는 시민의 참여와 자치의 민주주의, 즉 직접민주주의의 뿌리로 아나키즘을 검토하고자 한다. 이는 민주주의를 가장한 엘리트주의에 대한 반대를 뜻한다. 한국사에서 그 참된 계기는 2017년의 촛불민주주의였으나, 그것은 다시금 대두한 엘리트주의에 의해 배반되었다. 그런 현실인식으로부터 우리는 아나키즘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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