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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규의 아나키스트 열전4 - 서양 고대의 아나키스트1
박홍규의 아나키스트 열전4 - 서양 고대의 아나키스트1
  • 교수신문
  • 승인 2019.10.18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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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니코스학파를 견유학파로 부르는 것은 부당
디오게네스를 아리스토텔레스가 멸시하여 부른 별명은 ‘개’. 디오게네스 자신은 그 별명을 도리어 즐기며 개를 자처하기도 했다.
디오게네스를 아리스토텔레스가 멸시하여 부른 별명은 ‘개’. 디오게네스 자신은 그 별명을 도리어 즐기며 개를 자처하기도 했다.

키니코스학파

앞에서 말했듯이 장 프레포비에는 <아나키즘의 역사>를 키니코스학파로 시작하는데 번역서에서는 이를 견유(犬儒)학파라고 한다. 이 말은 철학책 등에서도 흔히 볼 수 있지만 특정 학파명에 ‘개’라는 동물명에다가, 동아시아 유교의 선비를 뜻하는 ‘유(儒)’라는 글자를 유교와 아무런 관계도 없는 서양 고대의 학파에 붙여 사용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키니코스라는 말은 개를 뜻하는 그리스어 ‘키온’이라는 말에서 비롯되었지만, 이는 예의범절이나 습관이나 인습을 지키지 않는 디오게네스(Diogenes, 기원전412?~324?)를 아리스토텔레스가 멸시하여 부른 별명에 불과했다. 물론 디오게네스 자신 그런 별명을 싫어하기커녕 도리어 좋아해 개를 자처하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속한 학파를 견유학파라고 부르는 것은 부당하다. 19세기에 일본인이 그렇게 번역한 이유가 당시에 ‘유’라는 말이 지식인을 뜻한 탓이었다고 해도 지금은 무리다. 

서양에서는 그들을 cynic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냉소적인 사람이라는 뜻이어서 그를 ‘냉소학파’로 번역하는 사람들도 있다(가령 제임스 밀러, <미셸 푸코의 수난>, 2권, 226쪽). 그런데 냉소학파라는 표현도 그것이 지칭하는 철학자들의 사상을 오해하게 할 우려가 있어서 부적절하다. 그들의 사상이 지닌 한 가지 특징에 따라 ‘세계시민주의’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 역시 그 사상의 일부만을 표상하는 것에 불과하다. 나는 그들의 사상이 지닌 전체적 특징은 ‘자유’라고 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사상을 ‘자유주의’라고 부른다면 현재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자유주의라는 말과 혼동될 수 있으니 이 역시 문제가 있다. 공산주의에 대립하는 반공주의 정도의 의미를 갖고 있는 우리의 자유주의와 그들의 사상은 전혀 다르고, 도리어 공산주의에 가까운 것이기도 하다. 그 밖의 다른 여러 가지 자유주의의 개념도 그들의 사상과 일치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 책에서 나는 그들을 원어 그대로 키니코스학파라고 부르겠다. ‘키니코스’를 ‘퀴니코스’라고 표기하는 경우도 있다.

신학자 크로산(John Dominic Crossan, 1934~)은 <역사적 예수>에서 예수를 ‘유대인 농민 키니코스’(Jewish Cynicism)라고 했다.(666쪽). 김용옥은 <도마복음한글역주> 2권에서 크로산을 자주 인용하면서 크로산의 그런 이해를 예수의 소유부정 탓이라고 하는데, 그러면서도 서양철학사를 논의하면서는 키니코스학파에 대해 전혀 주목하지 않아 의아하다. 그러나 키니코스학파가 중요한 점은 무엇보다도 권력에 저항한 점, 즉 크로산이 말하듯이 “유대교의 종교권력과 로마 권력의 위계적이고 후견인 체제를 당연시하던 것을 단번에 부정한 종교적 및 경제적 평등주의의 전략”인데 이 점도 예수와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김용옥은 이 점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다. 물론 크로산의 연구가 국내에 소개되었을 때, 국내의 근본주의 개신교계는 크로산을 거의 악마의 사도 정도 취급을 한 것과는 질적으로 다르기는 하지만, 김용옥도 크로산이나 예수를 오해하기는 마찬가지다. 

키니코스학파는 서양철학사에서 흔히 보듯이 기원전 4세기경에 일시적으로 생긴 학파로 그냥 무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기원후 4세기의 고대 로마 제국 황제인 율리아누스(330~363)가 디오게네스에 대한 책을 썼듯이 적어도 8세기 이상 지속된 고대 서양의 중요한 철학이었다. 6세기까지 지속되었다고 보는 견해에 의하면 10세기 가량 지속된 셈이다. 따라서 그 중간에 해당하는 기원 전후에 활동한 예수가 그런 키니코스학파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크로산에 의하면 예수가 활동한 갈릴리는 독실한 유대교 지역이 아니라, 매우 헬레니즘화된 지역이었다. 즉 예수는 유대교 예언자보다는 오히려 헬레니즘 세계의 키니코스학파의 철학자와 같은 사람이었다.

종래의 철학사에서는 키니코스학파는 무시하는 반면 소크라테스-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만을 강조했는데, 그 셋은 키니코스학파와는 달리 친권력적이었다. 동아시아문화권에서 공자-맹자-주자의 유교가 강조되고 노장이나 묵가 등이 무시된 것과 유사했다. 그러한 현상은 그 철학들이 각각 친권력과 반권력의 성격을 가졌기 때문이었다. 이를 독재주의(내지 엘리트주의) 대 민주주의의 대립이라고 해도 좋다. 가령 플라톤의 <국가>에 나오는 철인정치는 아테네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전형적인 독재 엘리트체제로 소크라테스도 이를 주장한 탓으로 결국 처형되었다. 그가 사상의 자유를 지키려다가 부당하게 처형당했다고들 하지만, 사실은 아테네의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반체제범 내지 아테네의 적인 스파르타와 내통한 스파이 정도의 혐의로 처형된 것이었다. 그런 그가 민주주의를 부정한 오랜 유럽 역사를 통해 인정받은 반면, 민주주의를 지지한 키니코스학파나 예수는 오랫동안 부정당했다. 예수는 물론 중세를 지나 근대에까지 서양의 유일신으로 모셔졌지만 그 민주주의적 성격은 부정당했다.   

종래의 철학사에서는 친권력적인 소크라테스-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만을 강조하고 키니코스학파는 무시하는 경향이 강했다.
종래의 철학사에서는 친권력적인 소크라테스-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만을 강조하고 키니코스학파는 무시하는 경향이 강했다.

반면 키니코스학파와 그것을 대표하는 디오게네스는 국내외에서 철저히 무시되어 왔다. 가령 “독일 아마존 베스트셀러 철학 분야 1위” 등의 요란한 선전과 함께 최근 우리에게 소개된 리하르트 다비트 프레히트(Richard David Precht, 1964~)의 <철학하는 철학사> 1권 <세상을 알라>에서 디오게네스는 고대의 히피로 불리고 그에 대한 이야기가 모두 사실이 아니지만 무욕을 설파한 점만 분명하다고 하면서도, 그 점과 선동은 모순이라고 비판된다.(340쪽) 그리고 그 선동의 전통은 볼테르, 바쿠닌, 니체, 파이어아벤트, 데리다, 들뢰즈, 지젝 등으로 이어졌다고 하는데 그 논조는 상당히 부정적이다. 

디오게네스를 선동가로 보는 점에 대해 시비할 생각은 없지만, 디오게네스가 누구를 선동했다고 하는지 알 수 없다. 프레히트가 사실이 아니라고 하는 이야기 중에서 디오세네스와 알렉산드로스 대왕과의 대화가 있는데 그 대왕에게 햇빛을 가리지 말라고 한 것을 선동이라고 보는 것은 아닐 것이다. 여하튼 프레히트는 디오게네스의 사상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 거의 500쪽에 걸쳐 서양의 고대철학사를 설명하면서 디오게네스에 대해 그렇게도 무심하다니 나로서는 기가 찰뿐이다. 그래도 프레히트의 책은, 오토프리트 회폐가 엮은 <철학의 거장들> 고대 중세편인 1권에서 디오게네스가 아예 언급되지도 않는 것보다는 낫다고 해야 할까? 현대 독일인들에게 디오게네스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일까? 독일인만이 아니다. 다른 나라 철학책을 일일이 들출 필요도 없이 세계 보편적인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키니코스학파와 스토아학파

서양철학사는 키니코스학파의 시조를 소크라테스의 제자인 안티스테네스(Antisthenes, 기원전444?~365?)로 보고, 안티스테네스 이후 사제관계로 디오게네스와 크라테스(Krates, 기원전365년~285)로 ‘견유학파’를 체계화한 뒤 스토아학파의 창시자인 제논을 크라테스의 제자로 본다. 영혼의 덕을 중시한 안티스테네스가 소크라테스의 제자인 점에는 의문이 없다. 그가 항상 지팡이를 짚고 바랑을 매었으며 외투를 두 겹으로 접어 다니는 등, 금욕주의자로서 쾌락을 거부한 점 등은 디오게네스의 스승으로 볼 여지가 있으나, 안티스테네스가 자택을 비롯하여 최소한의 재산을 소유한 반면 디오게네스는 개인의 재산 자체를 부정하였고 거지의 삶을 산 점에서 달랐다. 또 안티스테네스는 정치가 알키비아데스의 방탕함을 고발하면서 그가 근친상간을 했다고 비난했던 반면, 디오게네스는 아내와 가족의 공유를 주장하고 심지어 인육을 먹는 행위도 허용한 점에서도 달랐다.

안티스테네스
안티스테네스

또 크라테스는 스토아학파의 창시자 제논의 스승으로 여겨져 왔으나, 스스로 빈곤의 삶을 살기 위하여 자신의 재산을 아테네의 길거리에 버렸으며, 같은 생각을 지녔던 히파르키아(Hipparchia, 기원전360~280경)와 결혼해 같이 허름한 옷 한 벌을 입고 도시를 돌아 다녔고, 공공연히 거리에서 교접한 점에서 제논과 달리 디오게네스와 유사했다. 히파르키아는 여성의 평등권을 위해 싸우기도 했다. 그밖에 키니코스 학파에는 풍자문학의 창시자인 가다라의 메니포스, 부와 탐욕을 강하게 비판한 메갈로폴리스의 케르케다스 등이 있었다. 디오게네스를 비롯한 키니코스학파는 그리스-로마문화를 사로잡고 있다고 본 욕망체계로부터 자유롭기 위해 그 문명의 전형적 가치들을 은연중에, 또는 노골적으로 비판하면서 오로지 자연을 되찾아 그것에 따라 사는 자족을 추구했다. 따라서 크라테스의 제자가 스토아학파를 세운 제논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다. 

제논
제논

디오게네스

디오게네스는 인간성의 회복을 추구하고 거기에 참된 행복이 있다고 하면서, 그것을 가로막는 최대의 적은 가치의 혼동과 그로 인한 감정의 혼란이라고 보았다. 그는 권력과 부와 명예는 행복과 무관하다고 주장하면서 그것들을 멸시했다. 그러나 참된 행복을 위해서는 마음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본성에 따라 사는 것, 즉 자연적 욕구에 충실한 최소주의적 생활방식을 따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머리와 수염을 깍지 않고 외투, 봇짐, 지팡이라는 차림새에 맨발로 돌아다니며 빈궁하게 살며, 잠은 땅바닥에서나 공중목욕탕이나 공공건물에서 자고, 물과 채소를 먹었으며 흔히 시장에서 만날 수 있었고 항상 구걸을 했다. 그런데 이러한 최소주의적 생활방식에도 정신적 및 육체적 수행이 필요하다고 했음을 주의해야 한다. 특히 이성으로 감성을 이겨야 한다고 하고, 즐거움을 멸시하라고 했다. 

또한 디오게네스가 반사회적인 삶을 택하지 않고 사회 속에서 계몽적인 입장을 취한 점도 주목해야 한다. 조국에서 추방된 그는 평생을 이방인으로 살았지만 스스로 어느 국가에 속하기를 바라지 않고 어디 출신이냐 라는 질문에 세계시민이라고 답했다. 디오게네스는 현실국가는 부정하면서도 이상국가를 추구했다. 그 진위 여부에 대해서는 논쟁이 있는 <국가>라는 글에서 그는 사유재산과 군대가 없고 폴리스의 신분차별이나 성차별이나 빈부 차별이 없는 평등사회로 이상국가로 묘사했다. 남녀의 일이 다르지 않고 오로지 일에 맞는 교육과 훈련이 요구되며, 남녀 모두 소박한 외투를 입으며, 상호합의에 의한 성적 결합 외에 결혼은 존재하지 않고, 플라톤이 수호자 계층에게만 인정한 처자 공유를 모든 사람에게 인정했으며, 동성애와 근친상간을 인정해 완전한 성해방을 주장했다. 나아가 그리스식 매장풍습을 거부하고, 비상시에는 식인을 할 수 있다고 했다. 80세가 넘어 죽기 전 자신을 쓰레기더미에 던지라고 유언했다.

디오게네스는 동성애·근친상간 등 성해방을 지지하며 비상시엔 식인도 가능하다. 내가 죽으면 시신을 쓰레기더미에 던지라고도 했다.
디오게네스는 동성애·근친상간 등 성해방을 지지하며 “비상시엔 식인도 가능하다. 내가 죽으면 시신을 쓰레기더미에 던지라”고도 했다.

‘디오게네스와 동료 시민’을 자처한 크라테스는 디오게네스의 유토피아를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포도주 빛 미망의 바다 한가운데 섬나라 ‘바랑’이 있다. 
아름답고 비옥하되 누추한 무소유의 땅
거기로는 어떤 어리석은 사내도 기식자도 
어떤 욕심쟁이나 육욕에 탐닉하는 자도 배를 타고 가지 않는다. 
다만 백리향과 마을, 대추와 빵이 있을 뿐
이것들에서 나온 것을 두고 사람들은 서로 싸우지 않으며 
돈이나 명예를 위해 무기를 들지 않는다.”

크라테스
크라테스

나는 <디오게네스와 아리스토텔레스>에서 디오게네스는 개 같은 거지=자유·평등=비국가주의·세계시민주의인 반면, 아리스토텔레스는 폴리스의 철학자=예속·불평등=국가주의·제국주의라고 비교했다. 또 디오게네스는 노예=비시민=개 또는 거지인 반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재류외국인=비시민=사립대 총장이라고 비교했다. 나아가 디오게네스는 비권력·비경제=무지배=무계급=자유·평등=노예철폐·인간해방인 반면 아리스토텔레스는 권력·경제=엘리트지배=계급=부자유·불평등=노예억압·인간예속으로 비교한 바 있다. 그런 아리스토텔레스는 그 스승인 플라톤과 소크라테스에서 비롯되었다. 그리고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는 타율주의=반자유·반자치·반자연적이고 화폐주의적인 반면 디오게네스, 노장, 부처, 예수는 자율주의=자유·자치·자연적이고 반화폐주의적이라고 비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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