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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백년 잠자던 거대한 물시계의 심장이 고동치다
오백년 잠자던 거대한 물시계의 심장이 고동치다
  • 교수신문
  • 승인 2019.10.18 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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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격루는 어떻게 되살아날까
박찬희의 박물관 여행
박찬희 박물관 칼럼니스트

 

남문현 교수는 책 속의 자격루가 아니라, 몇몇 장치만 있는 자격루가 아니라 실제로 움직이는 자격루를 만들고 싶었다. 그는 자격루에 사용된 큰 쇠구슬이 달걀과 비슷하다는 기록을 보고 전국의 토종닭을 찾아다니며 크기를 재고 평균값을 구했다. 자격루(복원품),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박찬희
남문현 교수는 책 속의 자격루가 아니라, 몇몇 장치만 있는 자격루가 아니라 실제로 움직이는 자격루를 만들고 싶었다. 그는 자격루에 사용된 큰 쇠구슬이 달걀과 비슷하다는 기록을 보고 전국의 토종닭을 찾아다니며 크기를 재고 평균값을 구했다. 자격루(복원품),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박찬희

우리나라에서 관광객이 가장 많이 찾는 곳 가운데 하나가 경복궁이다. 경복궁은 조선의 첫 번째 궁궐이자 정궁으로 파란만장한 조선의 역사와 함께 했다. 경복궁이 역사의 현장을 걸으며 조선의 역사를 기억하는 곳이라면 바로 곁에 자리 잡은 국립고궁박물관은 전시실을 거닐며 조선 궁궐의 역사와 왕실의 문화를 만나는 곳이다. 이곳에는 순종 황제가 타던 어차를 비롯한 다양한 전시물이 관람객을 기다린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다른 곳에서 보기 어려운 장면이 하루에도 몇 번씩 일어난다.

“또르르륵”

적막한 전시실에서 갑자기 무엇인가 굴러가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곧이어 떨어지는 소리, 기계가 작동하는 소리가 연이어 들린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큰 소리들이 전시실에 울려 퍼진다.

“지이잉, 두우웅, 데에엥.”

문관 복장을 한 인형이 징을 치고 북을 두드리고 종을 때린다. 순간적으로 벌어지는 일에 이 모습을 기다리던 관람객들이나 미처 상황을 알지 못한 관람객들이나 깜짝 놀라 소리가 나는 쪽으로 재빨리 얼굴을 돌린다. 그리고 가벼운 흥분으로 들떠 나지막하게 외친다.

“진짜 작동을 해. 진짜 움직이네.”

관람객들이 놀라는 사이 이 장면을 주의 깊게 바라보던 박물관 직원은 일지에 정상 작동했다는 내용을 기록한다. 대부분의 유물은 진열장 안에서 본래 역할을 마친 채 우아하게 전시되어있지만 이 전시물은 진열장 밖 넓은 전시실 한가운데에서 정해진 시간에 맞춰 작동을 한다. 이 전시물이 2007년에 복원된 자격루다. 원본 자격루는 오랫동안 덕수궁에 있다가 지금은 국립문화재연구소로 옮겨져 보존처리를 받는 중이다.

자격루(국보 제229호), ⓒ박찬희
자격루(국보 제229호), ⓒ박찬희

그런데 덕수궁의 자격루를 기억하거나 알고 있는 관람객들은 국립고궁박물관의 자격루를 보는 순간 의아스러울 수밖에 없다. 덕수궁의 자격루는 항아리 몇 개와 용이 새겨진 원통으로 이루어졌는데 이곳의 자격루는 크기도 집채만 하고 그곳에서는 볼 수 없는 많은 장치가 덧붙여졌다. 특히 자동으로 시간을 알려주는 종, 징, 북, 십이지인형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장치들이다. 덕수궁 자격루에 자동으로 시간을 알려주는 장치가 포함되었을 것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시간을 알려주는 실물 장치는 전하지 않는다. 그동안 봤던 자격루는 본래 모습의 반쪽만 보여주고 있었다.

전해지는 실물도 빈약하고 더구나 물과 구슬의 힘으로 움직이는 복잡하고 세밀한 기계장치가 있는 자격루를 어떻게 복원할 수 있었을까? 자격루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많지만 복원하려는 뜻을 품은 사람은 많지 않았다. 자격루의 복원은 뜬구름 잡기보다 어려워 옛 모습대로 복원하느니 차라리 새로 만드는 편이 편했을지 모른다. 그런데 한 과학자는 오랜 시간 자격루의 복원에 관심을 기울였다. 그가 남문현 교수로 그는 책 속의 자격루가 아니라, 몇몇 장치만 있는 자격루가 아니라 실제로 움직이는 자격루를 만들고 싶었다. 그의 의지는 마침 정부의 자격루 복원 계획을 만나 현실이 되었다.

복원은 근거가 있어야하고 또한 근거의 해석이 합리적이어야 한다. 자격루를 복원하기 위한 근거 자료들은 실물로 전하는 자격루 일부, 보루각기를 비롯한 몇몇 문헌 자료들이 전부였다. 이 자료들로 복원을 하기 위해서는 자료의 합리적인 해석과 더불어 집요한 상상력이 필요했다. 특히 한 눈에 보이는 그림 한 장 전하지 않은 상황에서는 더 그랬을 것이다. 그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현대 과학자의 눈이 아니라 자격루를 만든 장영실의 눈으로 상상하려고 노력했다고 했다. 상상력은 열정을 불러일으켰다. 자격루에 사용된 큰 쇠구슬이 달걀과 비슷하다는 기록을 보고 전국의 토종닭을 찾아다니며 크기를 재고 평균값을 구하였다.

이러한 노력 끝에 국립고궁박물관에 복원된 자격루가 모습을 드러냈고 지금까지 작동을 하고 있다. 21세기의 자격루는 조선 시대의 자격루와 이름이 같을 뿐 맡은 역할이 다르다. 지금은 시간을 알기 위해 자격루의 종소리를 듣지 않는다. 종, 징, 북소리가 울리면 시계나 핸드폰을 보고 자격루가 울리는 시간이 정확한지 확인한다. 정해진 시간에 울리는 모습에 놀라고 에너지원이 단지 물과 구슬이라는 사실에 다시 놀란다. 그리고 근대 이전의 과학성에 마지막으로 놀란다. 

21세기의 자격루에서 21세기 사람들의 상상력과 관심을 만났다면 조선시대의 자격루에서는 조선 사람들의 무엇을 만나게 될까? 자격루가 처음 만들어진 때는 널리 알려진 대로 세종 때였다. 세종 이전에도 시간을 재는 물시계가 작동하고 있었다. 물시계는 오래전부터 널리 사용하던 것이었으나 세종은 정확한 시간을 제 때 알려주는 시계가 필요하였다. 김화가 아버지를 죽인 사건을 접한 세종이 백성을 교화할 근본적인 시스템의 하나로 훈민정음을 만든 것처럼 세종은 물시계를 담당하는 관리들의 실수를 줄이기 위한 것이 무엇인지 고민했다. 궁궐의 시간은 국가의 표준 시간이며 이 시간을 바탕으로 궁궐과 도성의 생활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관리들이 시간을 정확하게 알려주는 일은 무척 중요하였다. 세종은 자동으로 시간을 알려주는 장치에서 해결책을 찾았다. 

“임금이 또 시간을 알리는 자가 차착(差錯)됨을 면치 못할까 염려하여, 호군 장영실에게 명하여 사신 목인(司辰木人)을 만들어 시간에 따라 스스로 알리게 하고, 사람의 힘을 빌리지 아니하도록 하였으니,”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처럼 세종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합리적인 시스템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좋은 생각과 의지만으로 자격루를 만들 수는 없었다. 다행히 세종에게는 장영실이라는 걸출한 인물이 있었고 장영실은 세종의 뜻을 실현할 능력과 열정과 상상력을 지녔다. 물시계만 개량하는 정도였다면 쉬웠을지 모른다. 문제는 자동으로 시간을 알려주는 장치를 같이 만들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그는 전통적으로 사용하던 물시계와 아라비아에서 개발한 구슬을 이용한 기계 장치를 주목했고 물시계의 아날로그적 방법과 구슬의 디지털적 방법을 결합시켰다. 상상력이 불러일으킨 일종의 혁신이었다. 세종실록의 기록대로 이제는 닭과 사람이 하던 일을 자격루가 대신하였다.

세종 때 만든 자격루는 21년 만에 작동을 멈췄다. 그 후 수리되었고 창덕궁으로 이전하였다. 장영실의 자격루는 100여 년 동안 작동하다 1536년 창덕궁에 새 자격루가 만들어지면서 소임을 다하였다. 이때 만든 자격루가 덕수궁에 있던 자격루이다. 그런데 물을 흘려보내고 담는 항아리들은 남았는데 자동으로 시간을 알려주는 장치들은 왜 남아있지 않을까? 1653년 효종 당시 새롭게 시간을 나눔에 따라 기존의 시간에 맞춰 자동으로 시간을 알려주는 장치는 의미가 사라졌다. 이때 새로운 장치를 만드는 대신 관리가 물시계를 보고 직접 시간을 알리는 방법을 택했다. 자격루에서 자격은 사라지고 루만 남은 셈이었다. 쓸모를 잃어버린 장치는 어느 순간 애물단지가 되어 사라져 버릴 운명에 처했을 것이다.

이후 자격루는 조선말까지 국가 표준 시계 역할을 맡다가 1895년 그 역할을 마감하게 된다. 시계로서의 역할이 끝난 자격루는 전시 대상으로 새롭게 탈바꿈했다. 1908년에는 창경궁에 제실박물관이 생기면서 박물관의 진열품이 되어 야외에 전시되었다. 일제강점기인 1938년 이왕가미술관(제실박물관)이 덕수궁으로 이전하면서 자격루도 덕수궁으로 따라왔다. 자격루는 보존처리를 마치면 복원된 자격루가 있는 국립고궁박물관에 전시될 가능성이 높다.

자격루의 발명과 복원의 역사를 살펴보다보면 뜻밖에 여러 시대 사람들과 만난다. 정확한 표준과 시스템을 만들려고 했던 세종, 발상의 전환으로 문제를 해결한 장영실, 효종 이후 눈을 부릅뜨고 자격루의 시간을 확인하던 관리들, 역사 속 자격루를 재현하려는 의지를 불태운 과학자, 눈앞의 자격루를 보고 놀라워하는 사람들, 자격루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꼼꼼하게 확인하는 박물관 직원이 그들이다. 박물관에서 유물과 복원품을 만난다는 건 그 시대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고 그들의 이야기를 읽어내는 일이다. 그랬을 때 유물은, 복원품은 늘 되살아난다. 

글 박찬희(박물관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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